학회·협회 무관심이 녹용 비리 원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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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협회 무관심이 녹용 비리 원인 제공
  • 승인 2005.12.0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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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의 의미, 30년 전과 많이 달라져
생육 기간·가공 방법 무시가 더 큰 문제

이제까지 한의계가 가지고 있던 녹용에 대한 개념을 다시 정리해야 할 때가 왔다는 지적이다. 특히 녹용과 관련한 사안에 대한 부정확한 이해로 각종 비리가 저질러지고 있었는데도 학회나 협회 모두 방관하고 있다가 결국 곪아 터지고 말았다는 주장이다.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 공식적으로 수입되는 러시아산 녹용은 20톤 정도지만 수요는 배가 넘는다는 것이 업계의 추정이다. 결국 나머지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제품일 가능성도 크고, 좀 더 약성이 우수한 녹용을 투약하기 위해 이를 구입한 한의사들만 피해를 본 꼴이 된 것이다.

임상가에서 말하는 대로 일명 ‘원용’의 약성이 우수하다면 학회는 이를 연구하고, 다른 녹용과 구별할 수 있는 지침을 내려주었어야 했다. 그리고 한의협은 허위 표기나 혼입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한의사들이 주위를 기울이도록 공지했어야 했는데 이제까지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는 게 일선한의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최근 녹용 문제로 한의계가 홍역을 치르고 있는 원인도 ‘원용’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빚어진 것으로 문제 해결과 재발 방지 그리고 양질의 녹용을 환자에게 투약하기 위해서는 한방의료에서 녹용을 구분하는 기준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원대 한의대 이영종 교수(본초학)는 “녹용은 산지나 종에 따라 약효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이보다는 생육 기간이나 가공방법이 더 중요한데 이는 무시되고 있다”며 “부정확한 고정관념 때문에 산지나 품종을 속여 파는 등 불법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삼의 생육 연수와 마찬가지로 녹용도 사슴의 힘이 가장 강한 5~10년생 때 절각된 것이 가장 우수할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개념은 거의 없고 녹용으로 유통할 수 없는 어린 사슴뿔은 물론 스펀지처럼 푸석한 늙은 사슴의 뿔도 녹용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식물성 약재와 달리 가공방법이 까다롭고 약성도 크게 차이가 날 것이 분명한데 이에 대한 관심은 극히 미약하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품종이나 지역을 정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같은 지역, 같은 품종이라도 다각도에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현재 한의계에서 지칭하는 ‘원용’의 개념은 30여년 전과 달라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원용’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원용’은 동물학적 분류기준이나 과학적 개념은 아니지만 현재 한의계에 통용되고 있는 녹용의 기준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거에 ‘원용’은 ‘러시아산 마록’이나 ‘생산지’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중국·구소련과 국교 정상화 이전에는 ‘원용’의 개념은 꽃사슴(화용)이나 시베리아의 ‘순록’과 구별하기 위한 개념으로 캐나다산 엘크도 이에 포함됐었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즉, 크기가 큰 것을 의미하지 마록이나 엘크와 같은 구체적인 종의 개념이나 지역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60년대 말 국내로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산 녹용은 ‘마록’은 분명한데 크기도 ‘원용’보다 작고 털은 까칠까칠해 ‘깔깔이’라고 지칭했고, 뉴질랜드산 녹용도 수입되기 시작해 다른 녹용과 구별하기 위해 ‘뉴자’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뉴질랜드에는 적록과 엘크가 생육되고 있으나 국내에서 종의 구분 없이 지금까지 ‘뉴자’로 유통되고 있고, 중국산 역시 엘크나 마록에 상관없이 ‘깔깔이’로 유통된다. 그리고 캐나다산 녹용은 ‘엘크’로 지칭해 자연히 지역을 구분하는 것처럼 인식됐고, 이후 러시아 녹용 값이 비싸지면서 종의 개념도 끼어들게 됐다는 설명이다.

한 관계자는 “80년대 초에는 러시아산 녹용은 홍콩을 거쳐 국내로 들여와야 했기 때문에 한 냥에 10만원에 거래되기도 해 러시아 산은 비싼 것, 좋은 것으로 인식돼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 일 수도 있다”며 “이로 인해 큰 것은 모두 원용으로 둔갑해 팔리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산 ‘원용’으로 판매되는 녹용과 다른 제품의 한의원 공급가는 1.5배에서 2배까지 차이가 난다.

결국 한방의료에서 녹용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추어 변화하는 녹용에 대한 개념을 표준화해 일선 한의계에 알리는 일에 학계가 무관심했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좀 더 우수한 녹용을 투약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녹용의 기형적 유통을 부추기고 있는데도 그동안 협회나 학회가 무관심하는 사이 녹용 유통이 수요자 중심이 아니라 공급자 중심으로 형성돼 각종 부정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일부 한의대에서 이러한 문제를 본초학 강의시간에 교육했다고 하지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시장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녹용에 대한 개념의 혼란과 가격 차, 소비자의 선호도 차이가 있는데도 관련 연구와 지침이 없었다는 것은 협회나 학회의 무신경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또한 이번 녹용사태와 관련해 러시아에 대한 현지 실태조사를 통해 품종이나 유통 등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실시된다고 해도 사실 확인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편, 한의협은 녹용의 유통 개선을 위해 녹용 구입시 DNA 검사를 통한 품종확인과 원산지를 동시에 표기하도록 추진하고, 관계 당국에 이를 의무화하도록 건의할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사슴의 종간 DNA 차이에 대한 검사기준이 수립돼 있지 않아 조만간 시행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녹용과 관련해 식약청이 연구용역을 의뢰해 공식적으로 인정한 기준은 유전자증폭반응을 통한 DNA 검사로 순록과 사슴을 구별해 내는 수준이며 이나마도 일부 학계에서는 시료 수 등을 이유로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상태다.

이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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