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상태바
[도서비평]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
  • 승인 2005.12.02 14: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마지막을 기록

지금도 진행 중인 병원의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연구실을 옮긴 지 4개월 여에 접어들었습니다. 진료실과 동떨어진 곳에 혼자만의 독립된 공간이 생긴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졌는데, 이상하게도 침울함은 오히려 배가(倍加)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제 방이 바로 영안실 맞은 편에 위치한 탓이라고 여겨집니다. 힘찬 하루를 다짐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하였건만, 거의 매일 아침 발인(發靷)과 함께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는 음울하게도 ‘도대체 사는 게 뭔지……’라는 자아 성찰을 자꾸 요구했던 것입니다.

제가 그리 흥미로울 것 같지 않은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이별이지는 않게’라는 책을 구독한 것은 이렇게 날마다 ‘삶과 죽음’이라는 난제(難題)의 화두(話頭)와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도 많이 들었지만, 혹 내가 덧없이 흘려보낸 오늘이 어떤 이에게는 그토록 학수고대하는 어제의 내일이라는 글귀 역시 읽은 적 있었기에, 게으름으로 점철된 일상에 무언가 획기적인 변화를 구하려는 방편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전혀 재미있지 않았지만, 적어도 ‘능동(能動)의 삶’을 꾸려야겠다는 아주 당연한 답을 얻고 실천의지를 불태우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인 능행 스님께서 의학적으로 소위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 곁에서 그들이 마지막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10년 넘게 해오시며 겪은 에피소드들을 모은 것에 불과합니다. 불교계 최초의 독립형 호스피스(Hospice)라 할 수 있는 ‘정토마을’을 세워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저승길로 떠나보내며 들었던 구구 절절한 사연들을, 보노라면 사람을 차분해지게 만드는 여러 장의 사진과 함께 엮은 것에 다름 아닌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숙연하게 만드는 힘이 철철 넘칩니다. 언제라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 이웃의 생생한 이야기이고, 감정 이입을 하다보면 어느새 바로 내 이야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잘 먹고 잘 사는 법이 아니라 잘 죽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이 책을 엮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삶은 죽음의 또 다른 이름이어서 그런지 책을 읽고 나면 잘 죽는 법이 아니라 잘 사는 법에 대한 해답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저야 ‘능동’이라는 두 글자밖에 얻지 못했지만, 아마도 많은 분들이 ‘치열하게 사랑하고 나누며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정답을 쉽게 얻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언제 어느 곳에서 마지막 날을 맞이하더라도 여한(餘恨)없이 당당하게 마중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올 여름 무위사(無爲寺)에서 구입하여 책상 위에 걸어놓은 편액(扁額)이 저에게 눈총을 주는 느낌이 듭니다.
탐(貪)·진(嗔)·치(痴)의 삼독(三毒)에서 벗어날 것을 그토록 일러주건만, 왜 매번 저지르고 나서야 후회하느냐고……. <값 9천5백원>

안세영
경희대 한의대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