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제5차(2004년) 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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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 제5차(2004년) 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16)
  • 승인 2005.11.25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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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희씨와 문명창조 □

복희씨는 인류문명의 조종(祖宗)이 되시는 분이다. 그렇지만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복희씨의 공덕을 망각하고 있다. 복희씨가 인류문명사에 끼친 영향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하도(河圖)를 그려서 우주변화원리를 밝혔다. (受河圖)
하도는 천지의 구성 원리와 사시의 변화법칙을 숫자로 압축해서 그려놓은 그림이다. 여기에는 태극과 음양, 오행의 원리가 제시되어 있어 이를 통해 우주의 질서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둘째, 처음으로 팔괘를 그려 천지의 변화를 취상(取象) 하였다. (始劃八卦)
상(象)은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나 천지의 법도가 징조와 기미로 드리워진 것을 말한다. 우리는 8괘나 64괘를 통해 천지의 법칙을 파악하고 미래의 사실을 미리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였다. 이곳의 전설에는 복희씨가 이곳 괘태산(卦台山)에서 용마가 그림을 지고 위수에 떠서오는 것을 보고 깊이 연구하여 8괘를 그렸다고 한다.

셋째, 그물을 만들어 물고기와 짐승을 잡았다. (結網고 敎佃漁) 編註 [고=그물 고]
주역·계사전에 “복희씨는 노를 꼬아 그물을 만들어 사냥을 하고 고기를 잡았다”고 하였고 이곳의 전설에서는 복희씨가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데서 힌트를 얻어 그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세본(世本)에서는 복희씨의 신하 망(芒) 이라는 사람이 그물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넷째, 잡은 짐승을 기르고 희생에 제공했다. (養犧牲)
대부분의 학자들은 복희씨가 야생의 짐승을 잡아 가정에서 길들이고 잘 복종시켜(馴伏) 희생(犧牲)에 제공했기 때문에 포희(포犧)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노사후기(路史后記)에서 “복희씨가 희생을 기르고 소를 길들여 무거운 짐을 운반하고 말을 타고 먼 곳에 이르렀다(환育犧牲하고 伏牛乘馬라)”고 하였고 예기·월령(禮記·月令)에서도 “복희씨가 희생을 잡아 길들였다(執伏犧牲)”고 하였다. 編註 [포=부엌 포] [환=기를 환]

다섯째, 결혼의 제도를 만들었다. (制嫁聚)
이것은 군혼(群婚)에서 일부일처(一夫一妻)의 대우혼(對偶婚)으로 바뀌어 가정을 이루는 혁명적인 변화 과정이다. 결혼의 예물은 2장의 사슴가죽으로 대신했는데 후세의 납폐(納幣)가 여기서 기원했다고 한다.

여섯째, 서계(書契)를 만들었다. (造書契)
이전에는 노끈을 매어서 정치를 했는데 이를 결승지정(結繩之政)이라 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에 한계가 있어 복희씨께서 특정한 부호를 어떤 물건위에 새기거나 그려서 기억에 편리하게 하였는데 팔괘부호가 서계로서 활용되었을 것이다. 후세의 학자들은 팔괘가 문자는 아니지만 문자의 기원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일곱째, 역법을 창시하고 절기를 확정했다. (創曆法 定節氣)
춘추내사(春秋內事)에 “복희씨는 8절을 세우고 효로써 절기에 응하게 하니 모두 24라(建分八節하고 以爻應氣하니 凡二十四라)”고 하여 팔괘로써 팔절(2분, 2지, 4립)을 확정하고 총 24효(8×3=24)효로 24절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여덟째, 나무를 뚫어 불을 취했다. (鑽木取火)
청나라 때 마숙(馬숙)은 역사(繹史)에서 하도정보좌(河圖廷輔佐)의 글을 인용하여 “복희씨가 백우에게 선양을 하고 나무에 구멍을 뚫고 비비어 불을 만들었다(伏羲禪于伯牛하고 鑽木作火라)고 하였는데 불은 수인씨 시대 때 발견 되었지만 복희씨가 취화(取火法)을 개선했다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編註 [숙=말이름 숙]

아홉째, 백약을 맛보고 구침을 만들었다. (嘗百藥 制九針)
이 기록은 황보밀의 제왕세기에 나오는 말인데 여기서 그는 “복희씨께서 팔괘를 그리시고 …… 백병의 이치가 분류가 있었고 이에 백약을 맛보고 구침을 만들어 일찍 죽는 사람들을 구원하였다(伏羲劃卦 …… 百病之理가 得以有類오 乃嘗百藥而制九針하야 以拯夭枉焉이라)고 하였다. 編註 [嘗=맛볼 상] [拯=건질 증]

열째, 금슬을 만들고 악곡을 지었다. (制琴瑟 作樂曲)
허신(許愼)은 슬(瑟)에 대해 복희씨가 만들었다고 했고, 예기곡례의 정의(正義)에서는 “복희씨가 금슬을 만들어 음악을 만들었다”고 하였으며 왕가(王嘉)의 습유기(拾遺記)에서는 “복희씨가 흙을 구워 훈(壎)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編註 [壎=질나팔 훈]

□ 복희의 진정한 의미는 밝은 해 □

필자는 앞에서 중국 사람들의 기록에 있는대로 희생을 길들여 순종하게 하여 복희씨라고 불렀다(馴伏犧牲故로 號伏羲氏也라). 희생을 길러서 푸주간과 주방을 채웠으므로 포희라고 한다(養犧牲하야 以充포廚故로 曰포犧라)라는 설을 소개했는데 복희의 명칭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밝혀 보고자 한다.
복희씨는 중국 사람이 아닌 정통 우리 민족이다. 중국에서 출판된 중국역대 제왕록(1989년, 上海文化出版社)에서도 태호(太호) 복희씨는 고대 동이족(東夷族)의 저명한 수령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우리 민족은 광명의 뿌리는 태양이므로 태양을 숭배하는 사상이 있었다. 태호(太昊) 또는 태호(太호)는 모두 “크게 밝다”는 뜻이다. “복”은 밝다, 광명하다, 환하다의 뜻이고, “희”는 해, 태양을 나타내는 말로써 “복희”는 밝은 태양의 의미라고 생각된다. 중국의 문헌에 복희(伏羲), 포희(포犧), 복희(宓羲), 복희(복羲) 등 여러 가지로 표기되는 것은 우리의 발음을 차용(借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후에 요(堯)임금때 희씨(羲氏)에게 명하여 책력을 만들게 했는데 이 희(羲)도 태양(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며 희(羲)를 희아(羲俄) 등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도 “해”의 음(音)을 기록한 것임에 의심이 없다. <계속>

윤창열
대전대 한의대 교수, 대한한의학원전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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