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독일서 만나 본 정통 한의학 ‘하이델베르그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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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 독일서 만나 본 정통 한의학 ‘하이델베르그 모델’
  • 승인 2005.11.1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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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WFAS(세계침구학회·11.4~6) 일정을 마치고, 경희대 침구경락과학연구센터장인 이혜정 교수님, 경희대 한의대 경혈학교실의 박히준 교수님과 김윤주 연구원,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창현 선임연구원과 함께 15만명의 의사 중 3만여명의 의사가 침을 사용한다는 독일 한의학의 현주소를 살펴보고자 하이델베르그를 3박4일간의 일정으로 방문했다. 독일에서 한의학을 연구하는 4개의 부류 중에서 가장 한의학의 정통성을 고집하는 ‘하이델베르그 모델’을 탐방하고자 했다.

■ 동양 향취 물씬한 병원 인상적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공항버스를 이용하여 한 시간 정도 떨어진 하이델베르그의 호텔에 짐을 풀고, 마중 나온 전통중의학 하이델베르그 분교의 교수인 헨리 그레텐(Henry J. Greten) 박사의 차를 타고 하이델베르그대학가를 둘러보았다.

둘째 날, 하이델베르그 고성을 둘러보며 너무나 고풍스러운 대학도시와 점점 깊어져 가는 가을 정취에 취해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그 가운데에도, 하이델베르그 성안에 작은 약재박물관이 있었는데, 유럽 근대의 천연물을 추출하여 약물을 얻어내는 과정을 엿볼 수 있었고, 현대 제약기술이 정립되기 전 천연약재를 이용한 치료 방법이 동양의 한약재를 이용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저녁때 그레텐 교수의 병원과 강의실을 잠시 방문했다. 잘 설비된 한의원 정도 규모의 작은 병원으로 의사 2명에 총 12명의 직원이 근무한다는데, 각 진료실마다 동양적 향취가 물씬 풍겨나게 전시되어 인상적이었다.

■ ‘動的平衡상태’로 음양설명

셋째 날 아침 그레텐 박사가 우리를 위해 한의학원론에 대해 2시간 정도의 강의를 했다. 물론 기본적인 내용은 한의대 예과 1학년 때 배운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벽안의 의사에게 듣는 내용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음양의 속성을 사물의 두 가지 양면성으로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Water Bath에서 물의 온도를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게 하는 원리로 설명했다. 설정해 둔 온도가 될 때까지 Heater가 가열되다가 그 온도가 되면 가열이 멈추지만, 실제 물의 온도는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다시 점차 떨어지고, 다시 온도가 떨어지면 Heater가 가열하기 시작하지만, 실제 물의 온도는 점진적으로 감소하다가 다시 점차 증가하여 정해 둔 온도가 되게 하는 ‘동적평형상태(動的平衡狀態)’로 이를 설명하면서 음양과 오행의 속성까지 함께 언급하였다. 음양오행의 이론을 서구인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간략하게 설명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의 태극기를 예로 들며, 음양과 오행의 역동성의 의미가 담겨 있는 태극을 국기로 한 한국에 대한 관심도 표명했다.

이상에서 보다시피, 하이델베르그 모델에 대한 큰 특징은 첫째, 한의학적 용어를 서구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용어로 명확하게 정의, 설명하고자 하는 것과 둘째, 여러 증상의 종합인 證을 변별하여 한의학적으로 치료하는 변증시치를 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이나 기타 유럽에서 시도하고 있는 최근 대체의학의 흐름에서 결코 찾지 못했던 정통한의학적 원리에 입각한 접근이여서 고무적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극도 받았다. 하이델베르그 연구집단에서는 Visual analogue scale (VAS) 등의 주관적인 지표는 최대한 배제하고, algometer와 nerve conductivity velocity (신경전도속도) 등의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침의 치료효과를 평가하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 하이델베르그 모델에 입각한 치료군에 대한 평가를 하기 위해 일반적인 치료를 위해 사용하는 Standard 대조군과 비교하여 미리 해당 경혈에 붉은색, 푸른색 등의 점을 표시해 두는 방식을 통해, 환자뿐 아니라 시술자까지 맹검을 실시하는 이중맹검방법을 통해 임상시험을 실시한다고 했다.

하이델베르그 의과대학 부인과병원 대체통합의학교실의 코닐리아 폰하겐(Cornelia von Hagens)을 만나 병원의 불임클리닉 및 신생아실 등의 설비들을 간략히 살펴보고, 산모들의 정신적인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Music Therapy의 아름다운 선율에 온몸이 편안해짐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말로 겨우살이로 알려진 렉틴과 비스코톡신이 주성분으로 암 세포의 성장을 억제하고 면역력을 자극하는 미슬토(mistletoe)의 유방암 발병율에 대한 전향적 연구와 유방암 환자의 화학요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한 대체의학요법의 연구 등을 설명했고, 독일에서 진행되는 대체의학관련 임상시험이 시스템적으로 잘 진행되어 있는 것이 많이 부러웠다. 또한, 그레텐 박사의 절친한 동료인 생화학심장연구실의 주임교수인 앤드류 렘피스(Andrew Remppis) 박사를 만나 하이델베르그 병원에서 환자를 대상으로 Microarray, SNP 등의 다양한 방법을 응용하여 한의학의 접근을 시도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 장부·경락 원리로 파고드는 서양한의학

마지막날 저녁에는 그레텐 박사가 하이델베르그 교외의 작은 농장으로 초대하여 그 곳에서 만든 돼지와 와인으로 저녁을 대접하여 주었다. 장기간의 여정으로 피곤하여 입안이 헐어 음식을 먹기가 곤란하다고 하니 그레텐 박사가 발을 내밀라고 하여 지압을 하면서 아픈 부위가 어떻게 변했는지 계속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태충혈(太衝穴) 주위를 누르는 줄 알아 간열(肝熱)을 내리려고 하는 것이냐 물어보니 아니라고 하였다. 별 차도를 못 느끼겠다고 하니, 이번에는 양말을 벗으라 하고 작은 침으로 내정혈(內庭穴) 주위를 단자법(單刺法)으로 마구 자침한 후, 실제로 많은 차도가 있었다. 어떤 원리로 치료를 한 것이냐 물어보니, 이를 치료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위열(胃熱)을 내리는 방법을 사용하여 구창(口瘡)을 치료하고자 하였다고 하며 바로 호전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며 임상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고, 실제 효험도 있었다. 기존의 단순한 자극요법으로서 침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한의학의 장부 및 경락의 원리에 입각한 치료방법을 택하는 그들이 한편으로 두렵게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한의학이 우리만의 것이 아니라 세계가 관심을 갖고 실제 임상의사들이 손쉽게 사용하는 의학으로 발전되어 나가고 있는 현실이 실감됐다.

蔡胤秉
▲경희대 한의대 졸
▲현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의과학 박사과정, 동교 침구경락과학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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