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천국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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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천국에 가다
  • 승인 2005.11.1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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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판타지에 빠진 소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시간은 동등하게 24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 시간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너무 빠르게 지나갈 수도 있고, 너무 느리게 지나갈 수도 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대다수의 사람들이 빨리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상상을 할 정도로 시간은 이상하게도 더디게 지나간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은 다시 그 때로 되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은데 말이다.

<소년, 천국에 가다>는 어느 날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13세 소년의 눈물겨운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처럼 어린 아이가 갑작스런 신체적 변화 또는 정신적 변화로 어른이 되면서 일어나는 내용들을 다룬 영화들은 많은 편으로 대다수 주인공들은 시간을 넘어선 다양한 경험 끝에 값진 깨달음을 얻고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지만 <소년, 천국에 가다>는 특이하게도 어린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은 채 90대 할아버지가 되어 버린다.

미혼모의 아들인 13살 네모(박해일)는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엄마가 운영하던 시계방 자리에 이사 온 만화방 주인 미혼모 부자(염정아)를 보고 자신의 운명적인 상대라고 느껴 부자에게 청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네모는 극장에 불이 나자 부자의 아들인 기철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가 행방불명이 된다. 20일 후, 집에서 눈을 뜬 네모는 33살 어른이 되어있었고, 하루를 일년처럼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되어 버린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의 주인공 이름은 ‘네모’인데 이는 둥글둥글 살기 바라는 세상에서 모나게 살라고 지어진 것이다. 또한 네모의 아버지(오광록)는 ‘10·26과 12·12를 지나 12월 24일에 죽는다’라면서 네모의 죽음을 설명하고, 부자는 아예 대놓고 ‘저도 전두환이 싫어요.’라고 말하는 등 이 영화는 은근히 1980년대의 우울했던 시대를 풍자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복고풍의 키치(kitsch)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리얼리즘과 판타지 사이에 놓여있는 묘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성은 오히려 아쉽게도 영화가 진행되면서 점차 극적 감정이입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면서 관객들을 의아스럽게 만든다.

시계방과 만화방이라는 특이한 공간을 통해 시간성을 독특한 표현하려고 한 <소년, 천국에 가다>는 박찬욱, 이무영, 최동훈 감독들이 각본 작업에 참여하여 그들만의 스타일을 나름대로 표현하였고, 다양한 연령대의 역할을 소화한 박해일과 염정아의 연기가 눈에 띈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많은 욕심을 낸 것은 아닌지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상영 중>

황보성진(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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