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기] 제5차(2004년) 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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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 제5차(2004년) 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13)
  • 승인 2005.11.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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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열
대전대 한의대 교수, 대한한의학원전학회장


■ 강수(姜水)의 정확한 위치

보계시는 원래 10개의 현과 2개의 구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최근 보계현을 진창구(陳倉區)로 바꾸어 9개현에 3개의 구가 되었다. 인구는 모두 380만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청강하(淸姜河)가 옛날의 강수(姜水)라고 하였다. 염제 신농이 강수에서 자라 성을 강씨로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현재 중국의 학자들은 강수를 이곳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 수경(水經)의 위수주(渭水注)에 “기수(岐水)는 또 동쪽으로 강씨성의 남쪽을 지나면서 강수(姜水)가 된다(岐水는 又東逕姜氏城南하야 爲姜水라)”고 하였다.

대청일통지(大淸一統志)에 “강씨성(姜氏城)은 섬서성 서쪽 기산현(岐山縣)의 남쪽에 있다”고 하여 지금의 위하(위河)가 그중에서도 지금 기산현의 서가하(徐家河) 동쪽의 강을 강수라고 하였다. 그리고 신농을 제사지내던 오산(吳山)의 하치(下치)가 위수(渭水)의 북쪽에 있고 후직의 어머니 강원(姜嫄)의 친정인 태(邰)가 강수의 하류에 있는 것등을 이유로 결코 위수의 남쪽에는 강수가 있을수 없다고 한다.

지금의 연구가들은 강씨성(姜氏城)을 기산(岐山)현의 익점(益店), 부풍(扶風)현의 신점(新店)일대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이곳 보계시 사람들은 섬서통지(陝西通志), 보계현지(寶鷄縣志)의 기록에 의해 강수는 보계시의 남쪽에 있는 청강하(淸姜河)로, 강씨성은 청강하 옆에 있는 강성보(姜城堡)로 보고 있으며 강염족(姜炎族)이 보계시 일대에서 활동을 하다가 점차 동쪽으로 진출하여 기산(岐山) 부풍(扶風) 경내에도 강염문화(姜炎文化)의 유지가 출현하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곳의 거리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므로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 몰래 진창을 넘어 진격한 한신장군

이 청강하(淸姜河)의 가에는 대산관(大散關)이 있다. 이 일대는 서주시대 때 산국(散國)이 있었다고 하며 역사적으로 유명했던 진창고도(陳倉故道)도 이를 통해 지나가야 한다. B.C. 206년 한신(韓信)은 대장군이 되어 “남이 알게는 잔도를 수리하고 몰래 진창을 넘는(明脩棧道 暗渡陳倉)” 계책으로 군사행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한신은 번쾌, 주발 등으로 하여금 한중(漢中)으로 들어갈 때 불살라 버렸던 포사잔도(褒斜棧道, 岐山縣 五文原鎭 石斗河의 골짜기 입구, 고대 관중에서 한중으로 통하던 중요도로)를 수리하는 척하게 하여 적의 눈을 속인 다음 대군을 거느리고 이곳 진창길로 나와 삼진(三秦)을 평정했는데 이 때 이 대산관을 통과했던 것이다. 제갈량도 228년 대산관을 통해 북상하여 진창(陳倉)을 포위했던 적이 있다. 대산관은 관중 4관의 하나로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관문이었던 것이다.

■ 강태공이 낚시하며 문왕을 기다렸던 조어대

이야기를 들으며 들길을 달리는데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큰 조형물이 보인다. 문왕이 강태공을 만나 모셔가는 모습을 조성해 놓은 것이라 한다. 조어대(釣魚臺)는 이곳에서 1km를 더 가야 한다고 한다. 조금 가니 왼쪽에 조어대 영화 촬영지가 있다. 1993년에 완성된 서북 최대의 촬영장으로 이곳에서 이미 수십 편의 영화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산문 앞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널찍하고 강자아(姜子牙) 조어대라는 표지판이 있다. 조어대는 강태공이 이곳에 은거하여 낚시를 하다가 문왕을 만난 곳으로 유비와 제갈량의 만남에 못지않은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던 유서 깊은 곳이다.

■ 병법과 정치로 후세에 큰 은혜를 내려준 강태공

강태공은 염제 신농씨의 후손이다. 그의 선조 백이(伯夷)는 오산(吳山 ; 보계현 서북부의 新街鎭)사람이고 우임금이 치수(治水)할 때 그를 보좌하여 공이 있어서 여(呂), 신(申)의 땅(지금의 河南省 南陽市)에 봉해졌다. 상(商)나라 때 이르러 강씨의 후예는 크게 벼슬을 한 사람도 있고 서민이 된 사람도 많았다. 현재 강태공의 고향은 동해설(산동성 日照市), 하남성 급현(汲縣) 설, 허주(許州)설 등이 있어 확정하기 어렵다. 그는 B.C. 1211년에 태어나서 B.C. 1072년까지 140세를 살았다고 하고 또 160세, 180세를 살았다는 설이 있다.

강태공의 이름은 상(尙), 자는 자아(子牙), 호는 비웅(飛熊)이다. 그는 주무왕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고 제(齊)나라에 봉해졌기 때문에 제태공(齊太公)이라고도 한다. 그를 부르는 명칭은 대단히 많은데 문왕이 그를 만났을 때 “나의 아버지(즉 季歷) 태공(太公)께서 마땅히 성인께서 우리 주나라에 와서 주나라가 이로써 흥기하게 된다 하셨는데 그대가 진실로 이 사람인가? 우리 태공(太公)께서 그대를 기다린(望)지가 오래되었다”라고 하여 호를 태공망(太公望)이라 했고 그 뒤 무왕이 그를 스승처럼 받들어 사상보(師尙父)라고도 불렀다. 또 그의 조상 백이(伯夷)가 대우(大禹)를 도와 치수를 한 공으로 여(呂)에 봉해져 여상(呂尙)이라고도 하며 당나라 숙종이 그를 무성왕(武成王)에 봉해 무성왕이라고도 하고 자(子)는 고대에 남자에 대한 존칭, 미칭(美稱)이라 민간에서는 강자아(姜子牙)라고 많이 부른다.

강태공의 특기할만한 사항은 병법(兵法)의 시조라는 것이다. 그는 육도삼략(六韜三略)의 저자로써 병법과 정치로써 후대에 큰 은혜를 내려 주신 분이다. 그는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하여 남의 집 데릴사위가 되어 학대를 참아가면서 죽도록 일했지만 돈을 많이 못 벌어온다고 쫓겨나기도 하고 그 이후 식당에서 잡역부 노릇도 하고 장사도 하고 백정 노릇도 하고 물장사도 했다 한다.
수십 년간 떠돌이 생활을 해온 그가 마침내 동해가에 은둔을 하였다가 문왕의 선정소식을 듣고 이곳 반계(磻溪)에 은거한 것은 그의 나이 71세였다고 한다. 그는 문왕을 만나 그의 비범한 군사적인 역량과 정치역량을 발휘하여 서주(西周)의 건립에 뛰어난 공적을 남겼다. 문왕 사후에 그는 그의 딸 읍강(邑姜)을 희발(姬發, 즉 무왕)에게 시집보냈고 드디어 89세에 제후들과 연합하여 은나라를 멸망시켰는데 역사서에서는 “강태공의 계책이 제일 많았다(師尙父謀居多)”라고 하였다.

■ 무성왕 강태공

산문을 지나 들어가니 가운데 강태공의 석상을 세워 놓고 좌우로 각 5명씩 10명의 군사전략가들의 석상을 조상(造像)해 놓았다. 왼쪽에는 장량, 전양저(즉 사마양저), 제갈량, 당 위국공 이정(李靖) 당 영국공 이적(李勣)의 상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백기, 한신, 손무, 위 서하태수 오기, 연 창국군(昌國君) 낙의(樂毅)의 상이 서 있었다.
강자아 조어대는 중국 역사상 군인을 옹호하고 무(武)를 숭상하는 기운이 뿌리박힌 곳이므로 특별히 이들 10인의 군사전략가를 배치하여 함께 제사를 지내 문선왕(文宣王) 공자(孔子)에 비겨서 문무이성(文武二聖) 중의 한분으로 삼은 것인데 이는 “나라에 군인이 없으면 나라가 견고해지지 않는다는 이치(國無軍不固之理)”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강태공이 중국에서 무신(武神), 무성(武聖), 무성왕(武成王)으로 받들어져 문선왕(文宣王) 공자와 쌍벽을 이루는 그의 위치를 살펴볼 수 있었다. 석상도 희고 수염도 희고 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는데 신선들을 다스리는 채찍이라고 한다. 눈매를 자애롭게 조각을 잘해 놓았다.
이 석상의 뒤에는 봉신궁(封神宮)으로 봉신연의의 내용을 중심으로 만들어 논 오락궁인듯한데 시간이 없어 잠간 스치듯 보고는 지나쳐서 계곡을 따라 올라 갔다. 주위를 돌아보니 좌우가 모두 돌산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돌이 많은 곳에는 나무가 많고 흙이 있는 곳에는 나무가 적다.

조금 더 올라가니 오른쪽에 조어대의 경점(景點)을 그림으로 그려놓았는데 ‘조어대의 경치가 구채구(九寨溝)에 못지않다’는 글을 써 놓았다. 이를 지나니 오른쪽 돌벽에 ‘조운 등지 둔병처(趙雲鄧芝屯兵處) 제갈무후(諸葛武侯) 일출기산(一出祈山)’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제갈량이 이곳에 군사를 주둔시켜 사마의의 군사를 견제한 곳이라 한다.
조금 더 가니 반계(磻溪, 이곳을 흐르는 시내의 이름)의 가운데 주위와는 달리 큰 돌 하나가 놓여져 있다. 그리고 그 돌에는 잉황유박(孕璜遺璞)이라고 새겨져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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