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60, 창간 16주년 특집] 청산돼야 할 의료의 불평등(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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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60, 창간 16주년 특집] 청산돼야 할 의료의 불평등(5)
  • 승인 2005.10.2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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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적 제약으로 국민 접근 기회 차단
정책당국자의 한의학마인드 취약

□ 법과 제도 □

조선시대까지 국가의료로서 민족의 건강을 수호해왔던 한의학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비공식의학으로 전락했다. 한의학의 낮은 지위는 해방이후에도 그대로 지속됐다. 의료법과 약사법이 조선의료령을 그대로 답습한 결과다.
해방은 비단 한의학만 소외시킨 것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건국이 미국에 의해 주도된 결과 거의 모든 사회부문의 설계가 미국식 제도를 이식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이 깃든 문화와 가치는 다시 한 번 부정되었다. 우리 것에 대한 부정은 자연스럽게 제도와 교육의 부정으로 나타났다. 한의학 등 전통학문은 주요한 부정의 대상이었다. 이들 분야는 제도권은 물론 민간영역에서도 푸대접을 받았다.
해방 후 한의학은 척박한 상황에서 출발했지만 여전히 저력을 갖고 있었다. 해방직후 한의학은 수술과 전염성질환 등 일부 분야를 빼고는 서양의학에 비해 우위를 나타냈다.

특히 내과분야에서는 서양의학을 압도했다. 그러나 항생제 등 치료효과가 뛰어난 의약품이 쏟아지고, 정밀 진단기기가 개발되면서 서양의학의 주도는 대세가 됐다.
국가 또한 전염성질환의 퇴치가 시급한 국가적 과제였던 만큼 서양의학이 행정과 예산지원의 우선순위를 차지하면서 한의학에 대한 서양의학의 우월적 지위가 고착되었다.

■ 한의학에 대한 서양의학의 우월적 지위 고착화

한의학이 제도권의료의 밖에서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사이 서양의학은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나날이 발전했다. 양방의료인은 의료법의 보호를, 양약사는 약사법의 보호를 받았다.
그 결과 양의사는 의사로서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을 포함한 모든 의료행위의 주체가 됐고, 양약사도 양방의약품과 한약, 한약제제를 포함한 모든 의약품 관리의 주체가 됐다.
한의사와 한약사의 존재는 법률의 한켠에서 부분적이고 제한적인 권리를 인정받았을 뿐이었다.

이런 법률적 기득권으로 인해 양의사는 한방의료와 한약제제를 써도 법적인 제제를 받지 않았다. 일방적인 권리는 양약사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현대의료장비의 사용권도 물론 양방의 전유물이었다. ‘의료기사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한의사는 현대의료기기에 접근할 수 없게 됐다.
표면상으로는 의료기기에 한방과 양방의 구별이 없다고 보아 의료인이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리면서도 한의학적인 근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하면서 빗장을 꽁꽁 걸어 잠그고 있다.

의약분야에서의 한·양방 의료에 대한 차별은 교육의 불평등에서도 확인된다. 서양의학은 10개의 국립대와 31개의 사립대에 의과대를 설치하고 있지만 한의학은 한의대가 11개에 불과하며 그것도 전부 사립대 소속이다.
1962년에는 한의사 배출기관인 한의대 폐쇄를 겨냥한 의료법개정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한의사제도가 폐지될 위기를 맞았을 정도로 한의학은 교육의 사각지대에 있다.
법률과 행정, 교육 등 제반분야에서 한의학은 잠재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불평등 조금씩 개선은 되는데…

다행히 한의학은 지난 88년 국민건강심의위원회 개최를 기점으로 제도권 의료로 편입돼왔다.
한방의료보험 급여를 포함해 국립의료원내 한방진료부 신설, 한국한의학연구원 설립, 복지부내 한방정책관실 신설, 병역법 개정으로 인한 한방군의관제도와 공중보건한의사제도 실시, 대통령 한방주치의 임명 등으로 발전돼 왔다.
아울러 보건산업진흥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청에도 한의사가 배치 됐다. 나아가서는 각종 법률과 제도, 정책, 유권해석 등 여러 측면에서 개선이 이루어져왔다.

이렇듯 한의학에 대한 정부의 배려와 관심은 이전에 비해 큰 폭으로 진전됐지만 예산과 정부조직, 정부당국자의 인식 측면에서 미흡한 것으로 평가된다.
가령 한의학의 감기치료효과가 뛰어나다는 게 일반적 인식인데 이를 보건경제학적으로 평가해서 정부정책에 반영할 전문가가 전무한 형편이다.
비단 이런 문제는 감기뿐만 아니다. 노령화사회에서의 한의학의 활용문제, 국민식생활 개선문제, 건강보험 개선,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국립한의대 신설문제 등에 있어서 한의학은 진지한 고민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평상시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문제가 곪아 터져 사회문제화 될 때에야 비로소 허겁지겁 대책을 마련하기 일쑤였다.
급기야는 해당 정책을 추진했던 공무원조차 세월이 지난 뒤 ‘내가 생각해도 문제가 있다’고 실토할 정도로 한의학은 정책에서 소외되어 있다.

한의학의 소외현상은 한방전담부서가 설치된 지금도 여전하다. 한방의료를 어떻게 쓸 것인지 논의하는 자리에 한의계 인사가 없고 일반직공무원이 들어간다 해도 한의학의 필요성을 제대로 대변하는 인사가 없다는 것이다.
한의협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의학은 양의학과 다른 역할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정책이 결정되는 현장에 참여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 정부, 한의계 함께 노력해야

임상적 효과를 지닌 한의학을 제도적으로 반영하는 일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 정부의 당연한 과제다.
그렇다고 해서 정부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한의학에 대한 공직사회의 인식이 낮고 제도화의 근거가 부족한 데는 정부의 책임 못지않게 한의계의 책임도 크다.

민간 차원에서 정책의 필요성과 시행으로 인해 국민건강에 미치는 효과와 투입되는 예산 대비 정책의 효율성까지 고려하거나 일련의 프로토콜을 제시하지 않으면 정책의 추진을 기대할 수조차 없다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따라서 양방에 비한 한의학의 불평등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먼저 국민건강을 증진시키는 수단으로써 한의학의 가치를 재인식하는 사고의 전환이 필수적이며, 동시에 한의계 차원의 노력이 수반될 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끝>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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