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채한 박사의 American Report II-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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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 채한 박사의 American Report II-9
  • 승인 2005.09.1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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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에 근거한 미래 의학으로서의 한의학

□ 스즈끼, Made In Korea □

병원 주차장에서 일본 스즈끼(Suzuki)社에서 나온 Verona를 보았습니다. 이름과 디자인이 너무도 낯익어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았고, 일본차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산 타이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인터넷을 검색했습니다. 놀랍게도 Verona는 한국 부평공장에서 만들어져 미국의 GM에 의해 수입된 것이더군요. 한국 공장에서 한국 노동자가 만든 차량이 미국에서는 ‘스즈끼 Verona’가 되고, 서유럽에서는 ‘CHEVROLET’, 멕시코에서는 ‘PONTIAC’ 이름을 달게 되었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속았다는 생각에 한참을 웃다가 문득 이 Verona가 스즈끼 상표의 일본차, GM 자본에 의한 미국차, 생산자(과거 대우)에 의한 한국차 중 어디에 속해야 할지 의문스러워지더군요. 과연 조립 공장과 노동자의 국적, 회사를 운영하는 자본과 CEO의 국적, 브랜드와 상표의 국적, 개발/설계팀의 국적, 엔진과 트랜스미션의 국적 등 중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요.
생산된 위치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일본차로 분류되는 도요다(Toyota) 대부분은 미국 현지에서 만들어집니다. 기실 이름이나 분류만 일본차이지 실제적으로 미국 공장과 미국인 노동자에 의한 ‘Made in USA’인 셈입니다.

앨라배마(Alabama) 공장에서 만들어진 한국차 현대(Hyundai)와 오하이오(Ohio) 공장에서 만들어진 일본차 혼다(Honda)는 ‘Made in USA’인 반면, 미국 Jeep과 Ford의 일부는 ‘Made in Canada’입니다. 메르세데스 벤츠를 만들던 독일 회사는 이제 미국의 크라이슬러를 합병함으로써 다임러-크라이슬러(daimlerchrysler)라는 다국적 회사가 되었습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3만여 부품을 놓고 본다면 자동차의 국적을 따지는 것이 더더욱 모호해집니다. 30여 년 전이라고 한다면 부품의 100%가 하나의 국적을 가질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상점에 넘쳐나는 수많은 ‘Made in China’도 공장의 위치만을 이야기 하고 있을 뿐, 중심 기술/자본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 “좋은 의학을 위한 변신은 무죄”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Hyundai를 한국차로, Toyota를 일본차로, Ford를 미국차로 분류하는데 있어서 무언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는 듯 합니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리적 현상을 넘어서서 이것과 저것을 다르다고 말할 수 있는, 마치 생명체의 유전정보와 같은 중요한 그 무엇 - ‘정체성(Identity)’이 바로 그것입니다. 미국 GM과 일본 스즈끼라는 자본과 상표를 붙이고 있음에도 한국 차만의 낯익은 느낌을 주는 ‘Verona’는 자신의 정체성(Identity)으로 인해 ‘한국차’라 해야 하겠습니다.

작금의 의료 현실에 비추어 본다면, 한의학과 서양 의학의 충돌 또한 「정체성」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잘 달리고 잔 고장 없는’ 차를 「좋은 차」라고 한다면, 「좋은 의학」은 ‘잘 고치고 부작용 없는’ 치료라 할 것입니다.
좋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저렴하면서도 우수한 품질의 부속을 사용하며 개선된 재정운영과 최신 공장을 도입하는 것처럼, 인류는 ‘좋은 의학’을 만들기 위해서 가능한 모든 주변 요소들을 끊임없이 응용해가면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 왔습니다. 외부에서 도입된 물리적 요소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예전의 모습은 찾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의학사적으로 본다면, 서양의학과 한의학은 자신의 발전적 진화를 위해 서로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기계적 환원주의(reductionism) 의학은 인본주의적(humanistic) 의학이 되고자 하며 한의학은 과거의 전통 위에서 새로운 기술들을 응용하고 있습니다. 과거 수백 년 전에는 물리적, 철학적으로 명백한 분류가 가능했지만, 이제는 모호해져가는 물리적 경계로 인해 정체성에 입각한 분류가 현실적으로 타당할 것입니다.
법적으로 볼 때 한의약을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 행위’라고 규정한 한의약육성법 2조는, 이처럼 물리적 요소를 넘어선 정체성(正體性)에 입각한 규정[필자주], 좋은 의학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변용(變容)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론적 측면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에 근거한다는 것은 한의학이 시간의 제약을 떠나 항상 새로워진다는 의미이지 수백 년 전에 죽은 의학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전통’은 백년 혹은 오백년 전의 것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2005년의 당신이 30년 혹은 60년 후에는 ‘선조’ 혹은 ‘전통’이 된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의료 행위에 있어서 ‘한의학을 기초로 한 의료 행위’라는 것은, 기술과 재료라는 물리적 제약이 아닌 한의학 이론이라는 정체성에 따르는 모든 의료 행위는 전부 ‘한의약 의료 행위’가 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필자의 첨단 생명과학 연구도 냉(온)장고, 컴퓨터, 영상 기기가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순수한 ‘의학 연구’가 100% 주도한 의료 발전은 손꼽아 몇 가지나 될까요. 도리어 X-ray, CT, MRI와 같은 ‘영상 기기’ 등이 선도해왔으며, 이제는 네트워크와 데이터 가공 기술과 같은 ‘전산기기’의 발전이 미래의 의료 발전을 이끌고 있습니다.
백여 년 전 기법들만을 한의약이라고 하면서 ‘디지털 카메라’와 ‘인터넷’은 서양 의학만이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논리가 아닐까요.

■ “韓·洋간 획일적 구분은 모호해 질 것”

한의학적 정체성에 근간한다면 X-ray Image나 초음파, 병리검사, 청진기 등의 도구는 한의학의 일부인 것입니다.
법적인 제약에 마지못해 양보해 왔던, 이미 임상적으로 널리 활용되어 온 한약에서 단순 추출해 낸 유효성분도, 이제는 ‘한약’ 혹은 ‘성분 한약’, ‘추출 한약’, ‘분획 한약’이 되어야 합니다.

酒水各半煎 혹은 煎湯보다 더 우수한, 더 좋은 유효 성분 추출과 안정적 보관이 가능한 방법을 사용한다는데, 추출된 성분이 1개이든 100개이든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좋은 의학」이 되고자 함에 자신의 정체성에 근거한 변신은 무죄입니다.
또한 이를 바꾸어 놓고 볼 때, IMS를 한의약의 ‘경근 침자 요법’으로 분류하는 이유는 서양 의학적 전통과 정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수천 여 년간 이미 임상적으로 활용되어 온 361여개의 경락 운용을 비슷한 이론 몇 개로 포장하고 영어로 떠든다고 하여 서양의학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어로 번역해 몇몇 이론을 덧붙여 서양의학이 된다면, 음양오행, 장부론과 변증론을 곁들인 한글판 ‘Textbook of Medical Physiology (Guyton & Hall)’, ‘Harrison’s Principles of Internal Medicine’, ‘Cecil Essentials of Medicine’과 ‘Gray’s Anatomy’는 한의학 서적일 것입니다.
‘좋은 의학’이라는 확고한 목적을 위해 기존의 물리적 요소에 따른 획일적 구분은 모호해 질 것입니다. ‘잘 고치고, 부작용 없는’ 미래 의학(한의학 혹은 서양의학)을 만들기 위해서, 인류가 찾아낼 모든 지식들은 경계를 아울러 응용될 것입니다. 끊임없는 진화와 변용을 모토로 하는 한의학, 한의약, 한방 의료의 30년 이후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

[필자주] 한의약 의료행위에 대한 실정법, 판례 및 유권 해석의 간략한 이해를 위해서는 이경권씨의 ‘의-한 의료행위 구별기준에 대한 소고’(메디게이트뉴스 칼럼, 2005. 4. 4)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필자 : 칼럼니스트, 한의학 박사
現 : CIM, Cleveland Clinic Foundation
연락처 : www.chaela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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