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51] 川流不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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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51] 川流不息
  • 승인 2005.07.0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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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쉼 없이

한권의 필사본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임상의원이 스스로 간추려 엮은 편집본 의방서이다. 겉표지의 제목이 의학적인 의미와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책 속에 담겨져 있는 내용을 쉽사리 짐작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이 말은 『千字文』의 67번째 시구로 등장하는 ‘川流不息, 淵澄取映’이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냇물은 흘러서 쉬지 않고 깊은 못의 물은 맑디맑아서 속까지 비쳐 보인다는 뜻이다. 즉, 높은 덕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정진할 것을 다짐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바꿔 말해서 名醫의 길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의술을 연마하여 높은 경지에 이르기를 당부하는 말로 ‘自彊不息’과 비슷한 뜻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序跋이나 목차 없이 곧바로 본문이 이어지는데, 처음 등장하는 것은 朱純하의 『痘疹定論』(1713간) 권4 麻疹의 내용이다. 命門包과陰陽五行論, 正疹分別論, 四方疹名各別, 出疹之家有四大忌, 看疹醫家三大忌, 孟介石施藥治疹方, 各別各疹各樣調治定論까지의 내용을 발췌하여 수록해 놓았다. 원래 이 책은 모두 4권으로 권1에서 3까지는 두창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으며, 여기서는 권4에서 마진의 치료요점만을 뽑아놓은 것이다. 『痘疹定論』에는 당시 淸國에서 유행하던 人痘種法이 채록되어 있어 조선에서 널리 호응을 얻었으며, 1808년(순조 8) 조선판이 간행되었다.

후반부는 『麻疹彙編』이 수록되어 있는데, 『痘科彙編』에 붙어있는 마진에 관련한 내용만을 간추린 것으로 보인다. 아시다시피 『두과휘편』은 1807년에 嶺營에서 尹光顔이 청판을 飜刻하여 간행한 것으로 조선에서 널리 읽혀졌던 유명한 책이다. 편집자도 이 책의 명성을 인정했던지 아예 서문부터 초록해 놓았다. 이 책은 淸의 馬之驥 원작을 翟良이 개정한 책으로 원서명은 『痘科類編釋意』이다. 茶山 丁若鏞이 이 책을 애독해서 萬全과 함께 위의 두 사람에게 후한 평가를 내렸으며, 『마과회통』 등에도 인용하였다.

수록내용을 대략 살펴보면 麻疹通論으로부터 麻疹症治大略, 麻疹潮熱症治, 麻疹出沒傷風, 麻疹汗渴飮水와 함께 煩燥, 섬語, 喘嗽, 喉痛失音, 嘔吐腹脹, 泄瀉, 痢疾, 出血便血, 飮食瘡毒, 痘瘡後盖痘疹, 疫病發斑夾斑, 傷寒發斑은疹, 孕婦麻疹發斑, 水痘症治, 麻疹效方까지 들어 있다.

마진에 쓰는 유효처방으로는 升麻葛根湯, 參蘇飮, 內托散으로부터 麥湯散에 이르기까지 79개 처방이 수재되어 있다. 별도의 부가처방은 편집자가 추가한 처방으로 보이는데, 截학丹, 治瘡方, 保命丹 등이 기재되어 있다. 간혹 처방명칭은 동일하지만 효용이 다른 경우가 있는데 적응증을 잘 살펴서 써야한다고 밝혀 놓았다. 15번째 生地黃散, 35번째 麥門冬淸肺飮, 49번째 化蟲丸, 57번째 瀉心散, 74번째 漏蘆湯 등이 두 조문씩 들어 있다.

痘疹論을 읽어보면, 두진은 모두 胎毒에서 비롯된 것으로 부모의 精血이 胚胎되기 전에 이미 凝聚된 것으로 한번 증상이 나타난 뒤에는 다시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태독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논지를 펼치고 있다. 또 古來의 痘는 五臟에서 비롯된 것이고 疹은 六腑에 나오는 것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으로 痘와 疹은 모두 命門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새로운 주장을 펼쳐 학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채록자는 본문의 여백 상단에 직접 주석을 달거나 본문 중의 요지를 재빨리 파악할 수 있도록 주요 증상이나 병발 증상에 대해 군데군데 핵심어를 뽑아 별도로 표기해 두었기 때문에 색인어 역할을 하고 있다. 처방편에는 용량의 기준을 표기해 둔 곳도 있는데, ‘撮’이란 3손가락으로 한줌 집는 것이고 ‘字’는 2푼5리 가량이며, ‘方寸匕’는 1돈의 무게라고 적어두어 약을 쓰는 사람이 혼동하지 않도록 배려해 두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청나라로부터 새로 도입한 두창치료서 중에서 마진에 유용한 골자만을 채록하여 엮은 마진치방서이다. 이로 보아 종래의 痘疹이라는 명칭으로 서로 뒤섞여 취급하던 두창과 마진을 따로 분리하여 별개의 질환으로 다루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상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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