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게임의 법칙 - 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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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게임의 법칙 - 채한
  • 승인 2005.06.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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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한 박사의 American Report II-⑦

정책·제도는 전례와 판례 만들어가는 꾸준한 연구의 소산
집단갈등에 절대 승자 없어 … 절묘한 ‘빅딜’만 있을 뿐


며칠 전 교회 벽에 붙어 있던 풍자만화를 보면서 웃은 적이 있었다.
만화의 내용은 이렇다. 장소는 올림픽 수영경기장. 결승전에서 참가 선수들은 100분의 1초를 줄이기 위한 역주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누군가 이들 위에서 물위를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우승은 따놓은 당상. 물 속을 헤쳐 나가는 선수들보다 물 위를 뛰어가는 ‘예수’가 금메달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눈길을 멈추게 하는 한마디, ‘그러나 수영 규칙상 자격 박탈로 금메달을 딸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는 사실, 그 누구보다도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을 현실 상황 속에서 유머로 표현한 것이리라. 그러나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온 신의 대리자인 예수도 그 단순한 ‘수영’에서 금메달을 딸 수 없다는 것은, 세상일에는 항상 규칙(rule)이 있다는 현실을 역설하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게임에는 규칙이 있다, 아니 법칙이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일이다. 죽도록 서로 치고 싸우는 권투에도 3분이 지나면 벨은 울리고, 총탄에 살점이 찢기는 살육의 전쟁에서도 ‘교전 수칙’과 ‘제네바 협정’이 존재하니 말이다.

■ 게임의 법칙 안 통하는 한의계

최근의 한의계 전반의 상황은 속된말로 ‘죽어라, 죽어라’ 하는 것 같다. 장기 불황으로 인한 경기 침체 속에서 뭔가 돌파구를 찾는 사회 각 분야는 ‘남의 잔치’에서 뭔가 얻을 것이 없는가 기웃거리고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실감할 만큼.

굳이 예를 들지 않더라도 최근 수년간의 보건 행정은 정말 많은 이슈들을 쏟아 내 놓았다. 상반되는 이익집단에 의한 행정적인 이슈가 발생하고, 이에 대한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유관 협회들에 의한 몇 통의 성명서가 읽혀진 뒤에, 학생들과 개원의들에 의한 반대집회가 이루어진다.

물론 힘의 균형을 따라가는 행정의 특성상 절대 승자와 절대 패자는 존재하지 않고, 항상 절묘한 소위 ‘빅딜’만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작금의 상황을 보면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한의계는 과연 이런 끊임없는 보건 행정의 악순환 속에서 ‘게임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는가하는 점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목메는 단세포 사고방식이나, 항상 일이 터져버린 뒤에야 뭔가 이야기가 시작되는 소위 ‘뒷북치는 대책’이 지겹지도 않은가?
분쟁의 소지가 있음을 떠드는 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보내다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서는 쓸만한 전문가 하나 없음에 장탄식을 늘어놓는 상황에 질리지도 않은가 말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 ‘한약 분쟁’을 몸으로 겪은 세대다. 본인뿐 아니라 부모님들을 시위대속으로 내 몰면서 ‘한의학 사수’를 외쳤고, 초라한 협회 지하실과 지방을 오가면서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는 각오를 다졌던 수많은 청년들의 하나였다.

그때를 기억하는 선배들과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거리에서 외치던 요구 사항들 - 국립 한의학 연구기관/교육 기관의 설립, 공중 보건의/군의관의 확대 등을 최근 10년간 한의계의 성과로 기억하는 일부 정치가와는 달리, 아무런 논리도 없이 무작정 떼쓰는 아이에 불과했다는 부끄러움에 아직도 얼굴이 후끈거린다는 것이라고나 할까.

■ 사전 담론 없는 한의 관련 제도

구호 속의 ‘한의 군의관’이 무엇이고, 한국 군대에 어떤 도움이 되며, 과연 군대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전무했다.
한의 공중보건의는 그나마 기존 임상과 큰 차이가 없어 음지에서 준비해 온 재야 선배들에 의해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 한국한의학연구원은 기존 대학들과 다른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사전 담론 없는 졸속 행정의 결과물이었고, 국립 한의과대학은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 필요성과 역할에 대한 담론이 형성되고 있다.

90년대의 한의계는, 멀쩡한 청년의 허우대로 엄마에게 떼쓰는 세 살배기 아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되돌아본다면 지난 십여 년 간의 그 많은 분쟁의 경험 위에서도, ‘정책이나 제도는 십년 앞을 내다보는 전망 위에서 차분한 연구 결과를 통해서 전례와 제도 그리고 판례들을 만들어가는 꾸준한 투자의 소산이라는 것’을 왜 아직도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그토록 목마르게 찾는 근거 자료들 혹은 한의학의 미래를 든든하게 지켜줄 음지에서의 그 연구를 위해, 전문가들이 먹고 살만한 제반 여건은 마련해주고 있는가?
IMS를 한방에 K.O.시킬 그런 연구, 미국의 대체 의학을 한의계의 새로운 무기로 바꾸어 줄 그런 정책을 만들어 주었을 그 영웅을 존재할 수 없게 하는 것이 지금의 한의계가 아닌가 한다.

■ 빛바랜 게임의 법칙

그냥 일이 터진 후에야 길바닥을 점거해 구호를 외치고, 뭔가 정치적 로비로 모든 것을 만회할 수 있다는 흘러가버린 구세대의 ‘빛바랜’ 게임의 법칙에 안주하는 것이 아닐까?
약사회 이외에는 아무도 찬성하지 않는 ‘약대 6년제’도 게임의 법칙을 알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제도화’를 앞두고 있다. 누구는 멀쩡히 눈뜨고도 한순간 침이나 한약을 빼앗기는 현실인데 말이다.

게임의 법칙대로, 한번 제대로 싸워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게임의 법칙을, 다만 게으르고, 무식하고, 먹고 살만 해서 못하는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
침과 한약에 이어서, 골목쟁이 한의사가 휘두르는 전가의 보도인 ‘체질’마저도 이제 남의 손으로 넘어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수천 년간 이 땅을 지켜온 ‘한의학’이 이제는 미국 코쟁이들의 ‘대체의학’에 먹힐 판국이다. 당신이 애써 외면하는 현실이 곧 당신을 잡아먹을 것이다, 아니 당신이 그토록 아끼는 당신의 아이들, 한의대 학생들의 목을 조여 올 것이다.
당신은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이 땅의 아이들을 경제적 이익과 의료기술의 발전을 끊임없이 찾아서 흡수하고 있는 제국주의적 성향의 서양의학계에게 던져줄 것인가.

■ 필자약력
칼럼니스트, 한의학 박사
현 : CIM, Cleveland Clinic Foundation
전 : Harvard Medical School, 한국 한의학연구원
연락처 : www.chaela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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