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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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6
  • 승인 2005.06.0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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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속에 얽혀진 기억들

1990년 12월, 서울의 한 극장에서 <아비정전>이라는 영화가 상영되었다. 감독은 왕가위, 출연하는 배우들은 장국영, 장만옥, 유덕화, 장학우, 유가령, 양조위였다.
88 서울 올림픽이 시작되던 1980년대 말, 집집마다 VCR이 보급화 되면서 가장 인기 있던 장르는 홍콩의 일명 ‘느와르’ 영화들이었다. 물론 극장에서도 흥행에 성공했지만 비디오 대여 순위에서도 늘 1위를 차지했고, 그 이후 우리들은 <영웅본색>, <첩혈쌍웅>, <첩혈가두> 등의 홍콩 느와르 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지내곤 했었다.

그러던 차에 <아비정전>은 당시 인기 최고의 배우들이 총집합한 종합선물세트적인 영화였다. 그러나 영화의 내용은 우리네들이 생각했던 것과 180도 다른 영화였고, 당연히 관객들은 ‘속았다’라는 생각에 극장은 곧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스크린 위에 무엇인가가 던져졌고, 관객들은 환불을 요청하기 시작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14년이 지난 2004년에 개봉되었던 <2046>의 큰 모티브가 되는 영화로 자리매김한다. 역시 출연하는 배우들의 이름만 보면 뭔가 있어 보일 듯한 영화 같지만 이미 감독이 왕가위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가 어떤 것인지는 대략 알 수 있게 되었고, 오히려 마니아들의 열광 속에서 개봉된다. 왜냐하면 이제 우리에겐 다른 배우들보다 왕가위 감독의 인기가 더 높고, 유명하기 때문이다.

<2046>에서 왕가위 감독은 <아비정전>과 <화양연화>에 이어 1960년대에 집착한다. 아마 그가 중국에서 홍콩으로 넘어 온 시기이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시기였기에 그는 당시의 모습을 영화 속에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이 영화들은 그의 다른 작품과 달리 상당히 정적이라는 특징이 있다. 아마 그가 경험한 1960년대는 매우 더딘 시간이었나 보다.

왕가위 감독의 여타의 작품처럼 이 영화는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캐릭터들의 과거와 현재가 혼재되어 있고, 소설 속의 미래 세계까지 표현되고 있기에 시간 순서대로 이야기들을 엮어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또한 그의 전작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이 영화부터 본다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그 시절을 추억하면서 이렇게 힘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려고 한다.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듯한 모습이 역력하게 드러나 아쉬운 면이 없지 않지만 독특한 왕가위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해야할 것 같다. 굉장히 의미 있어 보이는 제목 <2046>이 호텔 방 번호라는 것과 이 제목을 의미하는 장면이 이미 <화양연화>에 나온다는 것을 알고 본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에 꼭 <아비정전>과 <화양연화>를 보길 바란다.

황보성진(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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