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32] 세계를 보는 두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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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32] 세계를 보는 두개의 눈
  • 승인 2005.04.15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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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가건물 안에서 방위, 풍수 적용은 무리

인테리어 의뢰를 받아 한의원을 방문하게 되면 드물지만 한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토속적이지만 왠지 어색한 느낌의 한의원을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한옥의 공간적 특징인 전통건축의 구성요소와 원리에 대한 인식이 결여된 채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는 국수주의적 사고가 스며있습니다. 아마도 그대로 옮겨놓으면 좋은 인테리어가 될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서양식 건축물인 상가건물에 한옥을 그대로 옮겨놓는다고 한국적 디자인의 한의원다운 인테리어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또는 이곳에 수맥이 지나가니 수기를 피해달라거나 북향건물이니 진료실이 동향이나 남향을 보게 해달라는 얘기를 듣곤 합니다. 나와 공간(자연)의 합일, 상호관계라는 풍수가 갖는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린 채 이처럼 기계적인 해석으로 동선을 무시한 공간구성을 주문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기계론적 사고의 방위, 풍수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종묘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종묘는 역대 임금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드리는 국가의 신전으로 한 나라의 국가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최고의 상징건축입니다.

이러한 상징건물의 좌향이 불규칙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정전의 좌향은 정남향이 아니라 서쪽으로 20도 정도 치우친 서남향이고 영녕전은 더 서쪽으로 틀어져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명목적으로는 고대 예법에 따라 정남향하고 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종묘의궤’에 그려진 배치도와 실제 지형배치도를 비교해 보면, 이 두 그림이 동일한 대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심합니다.

의궤도의 건물들은 모두 반듯하게 직교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의궤도가 허위나 가상의 도면은 아닙니다. 지형도 상에서 비틀리고 불규칙해 보이는 건물들의 배치는 도면상의 기하학을 배치계획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지형과 땅의 생김새를 기준으로 능선에 따라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지형을 깎고 잘라서 직각좌표의 배치법을 썼다면 그것은 불규칙이요 억지일 것입니다. 이렇듯 방위, 풍수는 자연과 순응하는 관계에서 의미가 부여되는 것으로 상가건물내의 한의원 공간에서 방위와 풍수를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릅니다.

■ 동양의 공간론과 서양의 공간론

‘공간을 어떻게 의미 규정하느냐’는 디자인의 시작입니다.
동서양은 각기 다른 시각으로 공간(자연)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동서양의 차이는 상이한 주거방식으로 나타납니다. 로마인은 귀족의 경우 산등성이에 집을 짓고 평민은 평지에 집을 짓습니다. 신분이 높을수록 신전 밑 산 정상에 가깝게 짓습니다. 반면 조선시대 양반은 평지에 집을 짓고 공동체에서 벗어난 화전민이나 하층계급은 산등성이에 집을 짓습니다.

서양인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았고 동양인은 자연을 자신과 하나 되는 합일의 공간으로 보았습니다. 서양은 건축물을 절대적인 공간형태로 본 것에 반해 한국의 공간사상은 건축을 인간과 자연간의 중재환경으로 보아 인간-주거환경-자연을 하나의 통일체로 이루어냅니다.
서양의 공간론은 일찍이 사물을 통해 설명되어 왔으며 공간을 독립된 대상으로 파악한 반면, 동양의 공간론은 공간과 시간적 형태를 일원론적 이원으로 보며 시와 공을 상통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왔습니다.

서양적 관점에서 공간이란 void -‘물체와 물체의 사이’ 또는 ‘물체의 주위’ 사이의 비어있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지만, 동양적 관점에서 공(空)간(間)이란 하늘과 땅 사이와 같이 비어 있으면서 계속 퍼져나가는 성질의 것으로, 감촉할 수도 측정할 수도 없는 것인 동시에 꽉 차있는 물질의 본질적 형식을 말합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는 “천지가 시작될 때는 물체도 형상도 없었다. 이 상태를 가리켜 ‘무’라 한다. ‘무’란 즉 ‘도’의 본체로서 우주의 본원이다. 그러므로 천지가 본래 무라는 것을 알면 도의 본체가 순수 오묘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만물의 근원이 유라는 것을 알면 도의 작용이 광대무변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가 창생의 작용을 하면 만물은 잇달아 생겨나고 이를 ‘유’라 한다. 유는 즉 도의 작용이다. 무와 유란 하나는 도의 본체요 또 하나는 도의 작용이니 결국 한 몸에서 나와 이름만 달리한 것뿐이다”라고 합니다. 우주의 빅뱅과 우주공간의 질서를 그리고 공간이 기실 물질임을 말해줍니다.

또한 기(氣)철학에서는 시공을 조정하는 행위를 ‘기를 배열하는 일’로 봅니다. 그 배열의 구체성을 결정하는 형식을 이(理)라 하며, 기 배열의 가장 기본적인 형식을 허실(虛實)로 보고 있습니다. 실로 구획되어지는 허를 보통 공간이라 표현하지만 공간은 기하학적 무의 상태가 아니라 기의 충만상태로 보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모든 공간은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기의 동태일 뿐입니다.

■ 삶을 지배하는 공간의 법칙

프리초프 카프라는 동양적인 공간과 시간의 융합, 자연의 여러 부분은 모두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의존관계에 있다는 생각이, 상대성이론을 출발점으로 한 현대물리학과 유사하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상대론은 결과적으로 동양의 연속적 세계관과 유사한 개념이 됩니다.

더 나아가 이론물리학자 데이비드 보옴은 “이 세계에는 우리들이 직접 볼 수 없는 내장된 질서(implicate order)가 존재하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본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내장된 질서’안에는 방대한 에너지가 존재하며 이 에너지가 물질뿐 아니라 정신까지 만들어 간다고 보옴은 말합니다.

인테리어를 의뢰받으며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어떤 카페나 클리닉이 인테리어가 잘 되었으니 거기처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과 내 건물이 아닌 임대공간이니 최저비용으로 대충 분위기만 비슷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 그리고 집이라면 모를까 한의원 인테리어에 투자할 생각이 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시간과 공간과 물체는 상호 의존관계에 있다는 상대성이론이 말해주듯 자기 삶의 유기행위와 다름없습니다. 자신의 거주하는 공간은 삶이며 생명의 행위공간입니다. 이것을 사상(捨象)한 다른 어떠한 다른 삶도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거니와 자신을 소외시킨 그 공간과 시간 속에서 보낸 삶은 죽은 삶과 마찬가지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를 지속시키는 것은 공간의 힘이며 그 공간의 법칙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결국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주거공간은 우리의 삶 자체이며 우리의 존재입니다. <계속>

김 도 환
(주)아반프러스 대표
02)323-5592

□ 참고문헌 □
권영걸, 공간디자인16강
김봉렬, 시대를 담는 그릇
김봉렬, 앎과 삶의 공간
임석재, 우리 옛 건축과 서양 건축의 만남
카프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이시카와 미츠오, 동양적 사고로 돌아오는 현대과학
승효상, 사유의 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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