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학캠페인] 한약 문화를 바꾸자(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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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학캠페인] 한약 문화를 바꾸자(14)
  • 승인 2005.03.25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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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검사 의무화만이 해결책

■ 이제 소비자가 나서야 할 때 ■

지난해 한의계는 한약 때문에 두 차례의 곤욕을 치렀다. 가뜩이나 불경기로 한의원이 어려운데 언론에서 터져 나온 사건으로 망연자실한 한의사는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한의원 경기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한여름을 제외하고 가장 비수기라고 할 수 있는 설날 무렵에도 지난달보다 경기가 나았던 한의원이 다수였다.
한의계를 곤혹스럽게 했던 한약재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인가, 아니면 잊혀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무관심한 것인가?

◇ 한약재 시장의 전갈

방송에서 소금기가 문제됐던 전갈을 다시 찾아보았다. 鎭痙에 쓰이는 약이어서 소금기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어 언론 보도 이후 어떻게 바뀌었나를 보기 위해서였다.
서울 강북의 잘 아는 한의원 한곳에 들어갔다. 요즘은 어떤 전갈을 사용하고 있냐고 물으니 “방송이 나간 후 약을 주문할 때 소금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먼저 다짐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후 전갈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맛을 볼 자신은 없고, 눈으로 보니 소금기가 있어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약업사에서도 요즘 한의원에 전갈을 납품할 때 소금기가 남아있으면 반품돼 오기 일쑤여서 먼저 물에 불려 소금기를 빼 낸 다음 건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의사들이 한약재에 얼마나 관심을 보이고 있는지를 잘 나타내는 부분이다. 문제가 폭로 됐는데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환자에게 그대로 투약할 수 있는 간 큰(?) 한의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한다고 아무런 문제가 없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전갈의 수입량은 10톤에 이른다. 업계에서는 이중 염장하지 않고 국내에 들어온 양은 약 600kg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머지는 기존과 같은 형태, 소금물에 절인 다음 말려 조금 끈끈한 상태로 수입돼 들어온 것이다.
다행히 한의사들의 지적으로 무게를 늘리기 위해 수입돼 온 약재를 다시 재처리(소금물이나 설탕물 등에 여러 차례 담갔다가 건조 하는 것)하는 것은 어느 정도 근절된 느낌이다.

그러나 수침했다고 해서 소금기가 완전히 빠져 나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또 이 과정에서 약리물질의 손실은 없을 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신경통 환자에게 기준 보다 높은 염도를 지닌 약을 투약했다고 했을 때 한의계는 언제나 구설수에 오를 수밖에 없고, 그때도 그저 빨리 잊혀지기만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한의사들이 전갈을 수침해서 말리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인지, 안다면 왜 수입단계부터 조금에 절이지 않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지 의문일 수밖에 없다.

◇ 사문화된 규정에 책임 전가만

전갈은 한약규격집에 시험 방법이 염분 3.0%, 건조감량 8.0%, 회분 2.5% 이하로 규정돼 있다. 그러나 적용시험은 관능검사와 중금속·잔류농약 검사만 하도록 돼 있다. 정밀검사가 면제 되는 것이다. 그럼 이 기준은 어디서 검사해야하는가?

전갈은 제조업소에서만 취급할 수 있는 품목이 아니고, 정밀 검사 품목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제조업체에서는 일부러 비용을 들여 품목허가를 내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이 수입업자에서 약업사, 그리고 한방의료기관으로 가는 형식이다.

전갈이 문제가 됐을 때 어디에 책임을 추궁할 것인가?
한의원은 약업사에, 약업사는 수입회사에서 구입한 것이라며 책임 회피를 할 것이다. 수입상은 통관시 검수를 담당한 기관을 붙잡고 늘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현행 약사법 상 이 경우 수입업자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약사법의 수입의약품 관리규정에 수입업자는 공정서의 품질기준에 합격한 제품만을 판매하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약재에는 이 규정이 거의 무의미하다. 사실상 사문화 되다시피 한 조항이다.
지난해 전갈과 함께 문제가 됐던 백강잠의 경우 행정당국은 고심 끝에 수입업체에 해당품목 취급 3개월 금지의 행정처분을 취했다. 언론에 문제가 돼 어떤 조치라도 내려야 하기 때문에 행정처분으로 종결지은 것이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백강잠 역시 그때와 비슷한 수준의 약재다.

◇ 518종 중 410종은 눈으로만 검사

현재 한약 공정서에는 518종의 한약재가 수재돼 있다. 이중 제조업소에서만 제조가 가능한 한약재가 69종이다. 또 공정서에 정밀검사를 하도록 규정된 것은 95종이다. 중복된 한약재를 빼면 108종의 한약재가 제조업소의 책임 하에 제조가 이루어지거나 정밀검사를 받는다. 물론 국산한약재에 대해서는 경과 규정을 두어 이나마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나머지 410종은 그저 눈으로만 보고 진품인지 아닌지를 가려낸다.

당귀 값이 오르면 강활을 섞고, 반대면 강활에 당귀를, 사인에 백두구, 반하에 남성 섞기…. 과연 눈으로 얼마나 가려질 수 있을까?
문방구에서 파는 장남감도 최소한의 품질 검사를 받아야 판매가 가능하다. 그런데 근 4/5가 품질 검사 없이 원료의약품으로 유통되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업계에서는 모든 한약재의 최소한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품질 검사를 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면 대부분 “장사도 안 되는데 무슨 소리냐”라는 반응부터 나온다.
이제는 소비자가 나서야 할 차례다. 국산·수입을 떠나, 사용량이 많고 적음을 떠나 품질 검사를 마친 한약재만 유통되게 해 달라고 한의사가 나서야 한다. <계속>

이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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