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의사회의 패권주의와 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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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의사회의 패권주의와 오만
  • 승인 2005.03.1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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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정연성 규칙성 지닌 증치의학
서양의학이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실용성과 생명력 보유 … ‘오류’ 속단은 금물
‘차이’ 인정, 선의의 비판·교류 통한 토론 아쉬워


유 기 덕
한의협 전 수석부회장, 서울 양천구 유한의원장


이 글은 최근 AKOM 꼬마마당에 게재된 글로서 일독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필자의 양해를 얻어 특별기고 형식으로 요약 게재한다.
지난호 이충열 교수의 ‘한의학은 과연 정체된 학문인가?’ 라는 글이 근대의학사적 관점의 서술이라면 이 글은 과학철학적인 측면에서 한의학의 학문적 가치와 존재 의미를 통찰했다.
아울러 이 글은 최근에 전개되고 있는 의료일원화론에 대한 확실한 답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편집자 주>


작금에 한의학에 대한 적대심을 갖고 있는 양의사들이 내 뿜는 말들과 이론들을 보면 과연 이들이 최고 학부를 나온 지성인 인가, 과연 과학하는 사람들인가 싶을 정도로 난폭하고 야만적이고 불합리하다.
“과학”이라는 용어가 서양의 고전 물리학에 토대한 것일 때, 그 누가 과연 한의학을 “과학적” 이라고 우기겠는가?
그러므로 한의학이 과학이냐, 비과학이냐에 대한 논쟁은 정말로 부질없는 짓이다.
과학이기 때문에 인류에게 유익하고, 비과학이기 때문에 인류에게 무익할 것이라는 논쟁은 이미 다른 학문과 영역에서도 끝났다고 본다.
한의학이 인류에게 기여를 해 왔는가, 현재도 유용한가, 앞으로도 필요한가를 두고 토론을 한다면 뭔가 끝장이 날 법도 하다.
작금의 양의들을 보면 인간과 자기 바깥의 것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가 너무나 부족하다.
양의사들은 한의사들이 없어지면 민간요법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는가 보다. 나아가서 한의사와 한의학 없는 민간요법, 경험요법은 양의 제도로서 쉽고 철저하게 관리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 한의학이 없는 유럽 국가에서 끊이지 않고 이어져 가는 자연요법, 대체요법, 호메오파씨(Homeopathy) 등을 보듯이 세계의 모든 국가에서 양의들이 백해무익으로 생각하는 민간요법 경험요법을 없앨 수 없는 것은 한 마디로 “필요해서” 이다!

왜 필요한가? 주류의학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며 완전무결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절대적 진리란, ‘주류의학에서 고치지 못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외의 것을 찾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어느 학문과 방법론만이 유일 진리이고 그것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유일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맞고, 부분적으로 틀리며, 부분을 전체로 보는 오류는 학문하는 사람이 제일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그런데도 일본의 경우를 들어서 일원화를 내 세우는 것은 “국민 계도” 를 앞세운 무지막지한 폭력이고 숭일 사대주의로밖에 볼 수 없다. 일본만 해도 한의대는 없어도 한의학에 우호적이고 개방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양의가 얼마나 많으며 일본 한의학이 얼마나 깊은 경지에 있는지도 모른다.
설사 양의사가 한의학을 배워 한의학적 치료 방법을 사용할 때에도 얼마나 진지하고 겸손한지 모를 지경이다.

유독 한국의 양의사들만이 한의학에 대해 증오하고 경멸하고 적대시 한다. 한국의 양의사들은 한의학과 한의사들을 제대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니,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알아 볼 필요도 없이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쪽이다.
지성인으로서 갖춰야 할 깬 정신, ‘차이’에 대한 관용이나 이해, 폭 넓은 사고와 민주 시민에 요구되는 상대방 존중심이란 게 거의 없어 보인다.
이 책 저 책 뒤져 가며 여러 말로 논리적으로 꾸며서 선진 의료 제도의 확립을 위한다고 의료 일원화를 부르짖지만, 한의학 폐해론, 한의학 검증론, 국민 계도론을 거치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한의학 폐지, 한의사 제도 철폐론”으로 귀결된다.
이렇게 논의의 자세가 불성실하면서도 계속 외쳐대는 것은 자신의 힘이 제일이라는 데서 오는 힘 만능 사고와 자신은 상처받을 게 없다는 난폭성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한의학을 미신으로, 한의사를 혹세무민하는 사이비 의료인쯤으로 여기는 양의사들에게 존중받아야 할 “다름”에 대해 한 번 쯤 간단히 이야기하려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 많은 학자들은 진리를 찾으려고 애썼다. 이 세계는 무엇인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참으로 무수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토론해왔다. 또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방법’을 세우려 하였다.
그렇게 보면 모든 학문은 철학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서양은 地水火風의 사원소 설로 시작하여 고전물리학의 설명 방법이 확립되면서 사물을 쪼개면서 추구해 가는 방법 즉 분석적, 연역적으로 발전하였다. 그에 따라 생물학 화학 의학 부문도 구조를 탐색하는 쪽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동양은 천체와 지구현상, 생명 현상을 태극 음양오행 등의 현상 자체로 인식하고, 또 설명하는 방법이 확립되었다. 자연과 인간을 같은 것으로 관찰하고 해석하다 보니 통합적 관찰, 귀납적인 측면이 두드러졌다. 그에 따라 사물에 대한 관찰 설명이 기능적, 현상적으로 치중하게 되었다.
동양의 복잡다단한 철학과 천문학, 지리, 역법, 농법 등이 하나하나 따로 떨어져서 생겨나거나 확립되지 않았다. 철학과 천문에서 표현하는 태극 음양이 역법과 농법과 의학에도 적용이 된 것이다. 즉, 용어가 놀랄만할 정도로 일치하며 나름의 정연성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서 한의학 불신자들은 “현대에 와서 동양의 천문학, 산법, 농법이란 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느냐” 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학문의 변천성과 연결성을 모르고 하는 견해이기도 하며 문화라는 것은 나름대로 중심성과 주변성을 갖고 있음을 지나친 것이다.
결국 살아 남을만한 실용성과 생명력이 있으면 살아남는 것이다. 주류에서 멀어졌다고 해서 “오류” 라고 심판해서는 안 된다.

동양 역사를 지배해 오던 천문 지리 유학 산법 농법을 현대 과학에 견주어서 비과학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처럼 동양철학에 기초한 의학을 비과학이라고 매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잣대가 다른 것으로 재 봤자 늘 다르게 나오기 때문이다.
동양철학과 한의학의 정연성과 규칙성이 현대과학의 말과 논리로는 설명은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하거나 “오류”로 결론 내린다면 동양학문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한의학의 대표 이론인 상대이론과 전체론을 잠깐 설명하겠다. 이 이론은 사물에 대한 인식 관찰 설명 방법으로 이해하면 간단하다.
상대이론은 생물학적으로 “항진과 억제”의 개념과 비슷하다. 이는 모든 사물들이 독립적이라기보다는 서로 상호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뜻이 되며 한의학의 방법론에 불가결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론이란 것은 어느 한 개체는 모든 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고 발현된다는 것이다.
즉, 바로 전에 예를 든 “항진과 억제”의 요소와 속성을 어느 개체에든 다 갖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 상대와 전체를 같이 인식하고 관찰하는 것이 한의학의 방법론 중의 하나로 보면 된다.

두 번째로, 한의학은 증치의학 임을 설명하겠다.
서양의 고전물리학과 의학은 사물의 물적 토대와 구조를 알아내는 것으로써 발전하여 왔지만 한의학은 사물이 나타내는 겉모습과 현상, 기능을 분류하고 해석하는 쪽으로 형성되었다.
물론 설명용어와 방법은 태극 음양오행 등으로써 이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음의 분류, 양의 속성, 오행의 편차 등에 의해서 복잡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들과 기능들을 이 보따리, 저 보따리쯤으로 묶는 방법으로 변천해 온 것이다.
이러한 방법론은 보다 유연하고 다양해서 그 반대의 방법론인 구조주의 분석주의 기계주의가 갖는 단점을 보완해 줄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구조이상, 물질적인 속성을 발견하려 노력하고, 발견되지 않아도 “정상” 이라는 판정을 내릴 수 없고 치료방법도 세우기 힘든 현대의학이 갖고 있는 부족점들을 훌륭하게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집대성된 증치의학” 이라고 자신한다.
이 증치의학을 대표하는 것이 “감기 치료”이다. 감기만 해도 한의학에서는 아주 치밀하고 자세하게 정립되었다.

한의학에서는 사람이 병이 드는 원인을 內 外 不內外로 분류하여 內는 장부에서 생기는 병, 外는 기후나 환경에 대한 적응 잘못으로 생기는 병, 不內外는 내도 외도 아닌 것, 즉 칠정상(스트레스)이나 외상 같은 것으로 설명하는데 그 중 감기는 외인으로 분류하는 것의 대표다.
그래서 四時의 정상 기후와 날씨, 이상 기후와 날씨와 인체를 동시에 관찰하여 경과나 예후 치료를 설명한 책이 중국 한나라 때의 상한졸병론집이다.
이 책을 비롯한 수많은 한의서에서 감기를 육대분류(육경)하였으며, 태양 양명 소양 태음 소음 궐음 이라는 용어를 써서 그 전변과 합병증을 해설하였다.
감기가 백병의 원인이 된다는 말은 웬만한 병은 감기 증상을 공통적으로 갖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감기 증상을 관찰하는 방법으로 내상병을 해석하는 방법도 상당히 의미가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 하겠다.

증치의학에 능한 한의학의 또 하나의 예를 들겠다.
현대에 와서 누구를 막론하고 입에 올리기 쉬운 말이 스트레스이다. 이 스트레스도 만병의 원인이 된다고 흔히 말한다. 우리는 그냥 신경 많이 쓰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한의학에서는 크게 일곱 가지 정서의 편중으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喜怒憂思悲驚恐의 일곱 가지 정서의 편중을 칠정상이라고 일컫는데, 그 영향은 각기가 소속된 장기와 기관으로 파급된다. 예를 들어 화를 많이 내는 일이 생겨서 이것이 축적되면, 간을 상한다고 하여, 간이 연관된 또 다른 부분, 예를 들면 쓸개 눈 관절 힘줄 등을 주로 나쁘게 한다고 한다.
여기서 간이란, 간장이라는 장기만의 의미를 넘어 간이라는 낱말과 범위와 관련한 모든 기관과 기능까지를 의미한다.
이렇게 상세하고 체계적으로 분류 설명하고 있는데 많은 양의사들은 눈부시게 발전하는 검사와 수술법, 전염병 예방과 퇴치, 신약의 개발을 자랑하면서 한의사들은 21세기에 와서도 수 백 년 전의 동의보감으로 병을 고치려 한다고 비꼰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한의학이 증을 분류하고 연구 해석 하면서 그에 맞춰서 치료방법을 결정 시행하는 증치의학임을 간과하는 소치다.
아무리 시대와 역사가 바뀌어도 겉으로 나타나는 “증”을 체계적으로 분류 연구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는다. 수 천 년을 다만 반복 순환 할 뿐이다. “증”의 분류 해석 방법을 규명하는 일에서 양의사들이 “발전”을 추궁하거나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하는 일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려는 일일 뿐이다.
양의사들도 대증요법이란 용어로써 구조적 이상이나 세균에 대한 규명 없이 단순하게 치료한다. 고열과 통증이 발작하여 환자가 괴로워 할 때, 어떤 균인지 알아야 하고 어느 곳에 이상 구조가 생겼는지 알고서야 치료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에서는 열형에 있어서도 전술한 육경체계를 대입하여 태양병 형의 “바깥 열”인지, 소양병 형의 “바깥 반, 속 반 열”인지, 양명병 형의 “속 열” 인지 등을 추적 진단하여 치료법을 맞추기도 한다.
이런 치료법을 집대성하고 체계화한 의학이 결코 병인론적 의학에 뒤진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환자의 상태에 따라 장단점이 드러날 뿐이다.
증치의학의 효용성은 인류 사회에서 꼭 필요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한의학의 치료의학적 효용이 지금 시대에 와서 퇴보하고 있는 것은 보험 제도에서 “기회”가 제한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의사 누구도 한의학이 완벽하다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리고 양의사 누구도 현대의학이 완벽하다고 고집하지 않는다면 한의학이 갖고 있는 장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한의학이 보이고 있는 부족한 부분을 선의로써 비판 검증하고 학술 교류를 통하여 서로 토론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서양의학이 자기진화를 위해서라도 “다름”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유전자 생명공학과 기계들의 발달 등을 맹신한다면 필연적으로 퇴행할 것이다. 이 세계의 주인은 양의와 유전자 공학과 복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없애겠다”라는 생각으로 일원화를 주장하고, “폐지”를 목표로 하면서 독성 운운하여 한의학의 쓰임새를 자꾸 떨어뜨리는 일은 결국은 역풍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공부를 많이 하고 좋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일수로 더욱 겸허하고 예의 바른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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