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한의사 신영호의 한의학 새로보기(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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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의사 신영호의 한의학 새로보기(10)
  • 승인 2005.03.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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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의 功能(2)

공능이란 것을 아주 소박하게 말해보자.
아주 간단하게 예를 들어 보자면, 전날 대포 한잔하고 신나게 놀고 와서 진료할 때와 책이라도 보고 고민한 이후에 진료할 때는 현저히 다르다는 것 정도는 우리가 체감하는 바다.
환자를 보는 자세가 다르고 치료효과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체감한다.
실제, 의원은 그런 소박한 차원에서 공능이라는 문제를 감지할 수 있다.

의원의 공능은 무공을 수련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무공은 힘을 응축해서 순간적으로 폭발력이나 파괴력을 내는 그런 쪽의 훈련이고 의원의 공능이라는 것은 한의학적인 표현으로 하게 되면 사물의 변화에 대해 밝아야 된다는 것이다.
사물의 변화를 역(易)이라 하는데 역에 대해 밝아야 된다는 것이고 그 다음에 옛사람들의 표현으로는 선도(仙道) 이런 표현을 쓰는데 그 내용인즉 상응의 의미다.

자신의 생리기전과 외부 환경의 변화, 이 둘 간의 상응, 이를 달리 자타(自他), 주객(主客) 으로 볼 수 도 있는데 이 내외 간의, 의원과 환자의 조화, 내경(內經) 표현으로 하게되면 운기, 운기적 조화(運氣的 造化)가 이루어져서 그게 환자의 병리상태와 같이 이빨이 맞아서 돌아가 주어야 이게 상응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능이다.

이런 상응의 공능이 의원에게 있어서 상당히 고민되어져야 하는 숙제다.
그런 면이 지금 현재 안 되고 있다는 것, 다시 생각해야 한다.
공능에 대해서 일부 관심을 갖는 층도 시류의 잡기나 이상한 형태로 접근하고 있는데 그것이 요행히 맞아 들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위험한 경우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것은 의원이 취할 의학적 공능은 아니다.

공능이라는 것의 요체는 간명하게 얼마만큼 무사무욕하게 관계하고 있느냐에 달린 문제다.
의도는 선도와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 그 의미도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예를 들어보자. 환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귓병이 단단히 들어있다. 그래서 예단을 해 버린다. 의사 자신의 잘못된 주관에 맞추어 예단하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운전학원에서도 예측운전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실제는 전부 예측 운전이다.

우리가 환자를 보게 될 때도 그렇다.
내가 비어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생각이 차있는 내 모습으로 환자를 본다는 것이다.
내가 비어있지 않고 머리 속이 차있다는 것은 차 있는 만큼 내 머리 속에 먹물이 튀고 오염이 되고 내가 병이 들었다는 이야긴데 그런 눈으로 환자를 본다는 것이다.
환자를 딱 보는 순간, 형태가 이렇고 저렇고, 보고 듣고 외우고 배운 것은 많으니까 ‘아 저사람은 여기가 아플 것이다’ 예단을 하고 들어간다. 그런 잘못된 전제 위에서 진료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의사 방식대로 관계한다. 내 아는 걸로 관계하고 내가 봤던 걸로 관계하고...
이걸 떨치고 무사무욕의 관계방식, 이게 공능이다. 공능의 첫 출발이다. 그게 선도라는 표현이다. 공능이라고 하니까 상당히 관념적으로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충분한 지식과 충분한 경험과 그런 것을 다 갖고 있되 일단 환자를 볼 때는 비워두고 있는 그대로 본다.
병을 치료하겠다라고 할 때 어떤 선입감도 고정관념도 없이 있는 대로 보고 듣고 묻고 확인해서 치료하라. 이게 의도(醫道)는 선도(仙道)와 다르지 않다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공능이라는 것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자꾸 형이상학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흔들림 없이 어떤 경우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그렇게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을, “공능을 배양한다”, “의원의 공능이다” 이런 표현을 쓴다.

필자 : 충남 천안 차서메디칼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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