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학캠페인] 한약 문화를 바꾸자(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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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학캠페인] 한약 문화를 바꾸자(13)
  • 승인 2005.02.1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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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투자·연구노력 인정해 줄 때 발전

□ 가치를 알아주는 사회돼야 □

얼마 전 서울 제기동에서 한약유통업에 종사하는 김모씨로부터 한의원을 한곳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현역 국회의원인 자신의 은사가 한의원을 소개해 달라고 하는데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 모 국회의원이 찾는 한의원

한약재 유통업에 종사한지 10년이 넘는 사람이고 아는 한의사도 많을 텐데 한의원을 소개해달라니 의아했다. 그래서 속으로 꽤나 어려운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있는가보구나 하고 미루어 짐작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국회의원이 찾는 한의원은 약재를 제대로 관리하는 곳, 방부제나 기타 오염물질이 붙어있지 않은 깨끗한 한약재를 사용하는 곳이었다. 거기에다 약을 달이기 전에 꼭 물로 세척하는 곳이라는 단서까지 덧붙였다.

모 의원은 오래 동안 알러지성 비염을 앓고 있었다. 질환을 고치기 위해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은 주기적으로 한약을 복용하며 생활을 유지해 왔다. 한약을 먹으면 의정활동을 하는 데 큰 문제가 없어 한의학에 대해서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TV에서 한약재 오염문제가 보도되면서부터 무게 중심을 ‘얼마나 깨끗한가’하는 쪽으로 옮긴 것이다.

■ 변화하는 한약제조 시장

한약재 제조업이나 유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약재는 옛날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좋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수차례 약재 파동에 한의사들이 민감해져있고, 약재가 지저분하거나 이상한 향이 나면 곧바로 반품 처리되기 때문에 업체에서는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업계에서는 잘못된 약재를 납품했다가 거래가 끊길 수 있어 신경이 보통 쓰이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제조업체 스스로도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제조해 파는 상행위라는 차원을 넘어 환자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약품을 생산하는 한 과정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장비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천만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검사장비, 고압 살수기에 청결을 유지하기 위한 자동화 시설, 실내 정화를 위한 환기시설 그리고 저온·냉동 창고까지 들어섰다. 거기에 약재의 독성을 없애거나 증가시키기 위한 포제를 좀 더 과학적으로 하기 위해 연구 및 첨단제조시설을 갖춘 곳도 늘어나고 있다.

한약재 제조 시장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약제조 목적 이외에 다른 이득을 위한 편법으로 아무런 시설을 갖추어 놓지 않은 제조업체가 우후죽순 식으로 늘어나고 있다. 한약시장에 현대와 과거가 겉포장만을 똑같이 한 채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 냄새와 먼지에 뒤덮인 시골집, 한약제조현장

지난해 말 전남의 한 한약재 재배 농가에서 택사를 한약제조업자나 수집상에게 판매하기 위해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큰 원통으로 된 기구 안에 택사를 집어넣고 돌리는 중이었다. 굉음에 집이 흔들렸고, 마당에 놓인 장독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지가 진동했다. 또 냄새도 심해 금방 목이 메이는 것 같았다.

농민들은 밭에서 택사를 수확한 후 진흙이 그대로 붙어 있는 채 열풍 건조기에 넣어 말린다. 그리고 업자에게 팔거나 자신이 직접 절단작업을 할 때 기계에 넣어 흙이나 이물질을 털어낸다. 그리고 썰 때 이를 다시 물에 불린다.
업자들의 말에 의하면 흙을 털어낸 택사 100근을 구입해 절단 작업을 하면 3근 이상 감량이 난다고 한다. 물에 불려 절단하는 과정에서 흙이나 돌이 빠져 나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물에서 건져진 택사는 절단된 후 다시 말려져 한약제조업소나 도·소매상에 팔려간다. 시골집, 한약제조의 현장이다.
뿌리가 가는 세신이나 시호 같은 약재도 이와 유사한 방법으로 제조돼 판매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그 의원이 깨끗한 것을 찾는 이유를 알 듯하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모든 약재는 수확하면서 바로 세척된 후 건조돼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물질과 범벅이 돼 건조하고 이를 다시 물에 불려 절단·건조하면서 맛과 향에 아무런 변화가 없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또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중금속이나 잔류농약 문제도 주 요인이 이러한 잘못된 관행 때문이라는 실험결과까지 나와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관행에 실로 기가 막힐 뿐이다.

■ 제 대접 못 받는 한약시장

서울 제기동이나 대구 약령시 어디서나 한약재를 볶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상회 앞에는 자루를 깔아 놓고 뜨거워진 약재를 식히고 있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자동차나 오토바이와 함께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얼마나 볶아야 하며, 어느 정도의 불세기로 해야 할지는 약업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경험에 맡길 수밖에 없다.

시설을 갖추고 검사를 해가며 생산된 한약재와 농민이나 외국에서 제조해 업체에서는 포장만하는 한약재, 또 신식 설비에 연구를 거친 후 생산한 한약재와 길거리에서 포제한 한약재는 약성이 얼마나 차이가 날까? 내용의 차이는 모르지만 한약재 시장에서 대접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모 제조업체 사장은 “좋은 한약재를 만들기 위해 연구를 하고, 시설을 갖춰 생산한 제품이 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빨리 오는 게 제 바램 입니다”라고 호소한다.
제 대접을 받지 못하고 혼재돼 있는 상황에서는 모 국회의원의 한의원 찾기는 금방 끝나기 어려울 것이다. <계속>

이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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