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1099> - 『濟衆要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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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1099> - 『濟衆要方』
  • 승인 2024.04.06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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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answer@kiom.re.kr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날짜를 손꼽아 낫기를 바라며

조선 후기에 엮어진 전형적인 처방서 하나를 살펴보기로 하자. 저자 미상이며, 표제에 그저 ‘제중요방’이라고만 되어 있어 특별히 개성 있는 면모는 보이지 않는다. 본문에 수록된 처방들도 대개 『동의보감』이나 『제중신편』에 수재된 처방들이어서 독자적인 경험이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한눈에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 『제중요방』

 

이면 한쪽에 丁巳 12월18일로 적은 필서기가 기재되어 있다. 어느 해인지를 특정하기는 쉽지 않으나 지질이나 필치로 보아 대략 1800년대 전후로 추정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작성 시기는 1797년 혹은 1857년경으로 보인다. 서발이나 목록도 구비되지 않았기에 저자에 관한 정보를 추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첫 머리부터 줄곧 처방만 열거되어 있는데, 중간에 병증항목별로 대목을 갈라 조금 큰 글씨로 적어두고 朱點을 찍어두었을 뿐이다. 기재방식은 상단에 방제명을 적고 그 아래 주치증이나 효능, 그리고 처방내역, 복용법 등을 소자쌍행으로 기재하였다. 처방내역에 있어서도 약재분량과 수치법 등을 그보다 더 작은 글씨로 적어 놓음으로써 각 항목을 한눈에 구분하기 쉽게 배열하였다.

병증은 중풍으로부터 시작하여 상한, 중서, 중습, 조, 화문에 이르기까지 육음질환에 대한 치료방이 먼저 열거되어 있다. 뒤이어 내상문이 이어지고 울, 담, 그리고 해수, 이질, 설, 번위, 해역, 조잡, 탄산, 제기, 비만, 수종, 고창, 적취, 육울, 황달 등 잡병질환이 등장한다. 또 斑疹及麻疹에 열성감염병, 그리고 보혈, 제혈, 한과 현훈, 마목의 차례로 유효방이 수록되어 있으나 체계적이진 않다.

또한 이 책의 표지에 권차가 ‘乾’으로 표기되어 있기에 곤권이 망실된 영본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앞 권에 수록된 내용만으로 전반적인 체계를 논하기에 무리가 있다. 다만 아래 권에는 아마도 건권에 보이지 않는 부인문과 소아문에 해당하는 질병항목에 대한 치료처방이 수재되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본문에 수록된 각종 유효 처방과 별개로 본문의 앞뒤에 적지 않은 경험처방이 기재되어 있는데, 본문과는 사뭇 다른 필치여서 후일에 탁월한 치료효험을 보였던 경험방을 추록해 놓은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는 痔病靈神 곧 치질에 신기하고 영험한 효과를 보인 合口收功散이나, 또 ‘聯珠用神’(연주창 신방으로 보임.)하다는 蟹漿 부첩약, 그리고 상한병이나 온역에 쓴 것으로 보이는 柴葛正氣散, 復元湯, 神稧散, 正氣五行湯 같은 처방이 적혀 있다.

그러나 이 처방서에서 전문을 통틀어 가장 특이한 면모는 뜻밖에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 있다. 그것은 바로 다름 아닌 특이한 중량표기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전통적인 척관법에 따라 기입한 것이지만, 냥, 돈, 푼 등 약재 중량을 표기함에 있어서 색다른 축약어를 채택하여 기재방식을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곧 望, 念, 念五, 旬, 旬二 등과 같은 중량단위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錢, 分 등도 함께 사용하지만 흔히 볼 수 없는 이 책의 특이점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望은 ‘보름날(望日)’에서 유추하여 1돈5푼을 가리키고, 念은 이십념(〹)에서 2돈, 이를 바탕으로 念五는 2돈5푼, 旬은 열흘 순에서 유추해 1돈, 旬二는 1돈2푼을 뜻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약재중량 표기법과 관련해서는 지난 호에서 일본 에도시대 임상가에서 적용한 사례를 언급한 바 있으니 함께 대비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1096회 축약어가 난무하는 醫門名家 경험방, 『丹波家方的』, 2024.3.14.) 어째서 날짜 세는 용어를 중량단위에 원용했을까, 어서 낫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동의보감사업단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의보감사업단에서는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고 이를 홍보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해왔다. 최근기고: 고의서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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