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달팽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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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달팽이 뿔
  • 승인 2024.03.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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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속담과 체질 ④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다.’는 속담이 있다. 사전의 풀이1)를 보니 아주 옹졸하게2) 행동한다는 뜻으로 빗대는 말이라고 한다. 유래를 찾았더니 중국 자료가 있었다. 우리말 속담은 한자 구절인 蝸牛角上爭(와우각상쟁)’을 그대로 직역한 것이다.

원 출전은 장자(莊子)인데, 칙양(則陽)편에 나온다. 전국시대에 위()나라 혜왕(惠王)과 제()나라 위왕(威王)이 맹약을 맺었는데, 위왕이 배신하자 혜왕이 자객을 보내서 위왕을 죽이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공손연(公孫衍), 계자(季子), 화자(華子) 등이 각각 다른 의견을 내면서 논쟁만 이어질 뿐 결론이 나지 않았는데, 혜시(惠施)가 현인 대진인(戴晉人)을 천거하여 혜왕을 만나게 되었다. 대진인은 달팽이의 뿔에 비유하여 말했다.3)

달팽이의 왼쪽 뿔에 있는 나라는 촉씨라 하고, 오른쪽 뿔에 있는 나라는 만씨라고 합니다. 이들이 서로 영토를 놓고 싸우던 때에, 주검이 수만이나 되었고 도망가는 군대를 쫓아갔다가 십오 일이 지난 뒤에야 돌아왔습니다.”4)

혜왕이 그런 허황된 이야기가 어디 있느냐고 하자, 대진인은 마음으로는 끝이 없는 무한한 공간에서 노닐게 할 줄 알면서, 이 유한한 땅을 돌이켜본다면 이 정도 따위는 있을까 말까 한 하찮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되짚어 준다. 그러면서 위나라나 제나라도 겨우 촉씨와 만씨처럼 별 볼 일 없는 그런 미미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쐐기를 박았다.5)

장자칙양에 나온 것은 달팽이의 왼쪽 뿔과 오른쪽 뿔(蝸之左角 蝸之右角)이다. 거기에 있는 촉씨라는 나라와 만씨라는 나라가 싸웠다는 것이니 왼쪽 뿔과 오른쪽 뿔이 다툰 셈이다.

당나라 때의 시인 백낙천(白樂天)6)대주(對酒)라는 시에서, 장자의 고사에서 달팽이 뿔 이야기를 가져와서 자기 방식으로 약간 비틀었다. 그렇다고 원 출전의 의미를 크게 훼손한 것은 아니다. 그 다툼이 공연(空然)한 싸움질이란 뜻은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로 싸우는가(蝸牛角上爭何事)

부싯돌 불빛 같은 세월에 맡긴 몸(石火光中寄此身)

부유하든 가난하든 그대로 즐기리(隨富隨貧且歡樂)

입을 열고 웃지 못하면 그가 바로 바보라네(不開口笑是痴人)

그러니까 원문은 와우각상쟁하사(蝸牛角上爭何事)’ 일곱 글자로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로 싸우는가?’이다. 여기에서 앞의 다섯 글자가 한반도로 건너와서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다.’로 된 것이다. 그런데 출전을 바탕으로 풀어보면 하찮은 일로 벌이는 싸움이라는 뜻에 가까우니, 정종진 선생이 사전에 넣은 옹졸한 행동과는 그닥 어울리지 않는다.

 

달팽이 뿔

달팽이박사(Dr. snail)인 권오길 선생도 이 속담의 풀이가 미심쩍었나 보다. 대중은 파브르7)가 아니지만 생물학자라면 저마다 파브르가 아닐까. 달팽이는 큰 더듬이 두 개와 작은 더듬이 두 개 모두 네 개가 있는데, 큰 더듬이에는 눈알이 있고 작은 더듬이로는 온도 냄새 바람 등을 감지한다. 이 더듬이를 흔히 달팽이 뿔(蝸牛角)이라고 불렀다. 달팽이는 더듬이로 세상을 살펴야 하는데 사람들이 보면, 치켜세운 더듬이 넷이 제 맘대로 엇갈려 더듬듯 이리저리 한들거리는 모양이 참 괴이하다는 생각이 들 거란 말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더듬이들이 내처 서로 째려보고 다투는 것으로 알고 와우각상쟁(蝸牛角上爭) 또는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고 썼을 거라고 속담을 새롭게 해석했다.8)

장자에서 대진인은 달팽이의 왼쪽 뿔과 오른쪽 뿔에 있는 나라가 서로 싸웠다.’고 했고, 백낙천 시인은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로 싸우냐.’고 물었으며, 이 말이 중국에서 건너와 한반도에서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운다.’는 속담이 되었는데, 권오길 선생의 해석은 절묘하게 장자로 돌아갔다.

나는 겨울이면 발뒤꿈치 굳은살이 자주 갈라진다. 양말 부스러기가 끼고 발을 디딜 때마다 무척 아프기도 해서 종종 일회용 밴드로 임시방편을 한다. 이런 내 모습이 아내는 영 못마땅한데, 내가 게을러 발 관리를 제때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지청구를 놓는다. 한 달 전에도 내가 출근 준비를 하며 약상자를 여는 낌새를 알고서 소리를 질렀다. “당신 이제 절대루 밴드 쓰지 마!” 예전 같으면 나도 따라 소리를 지르면서 기세 싸움이 되었겠지만 근본은 내 탓이니 그냥 넘겼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뜨거운 물에 불려 발바닥을 밀고 매일 풋크림을 열심히 발랐다. 내가 한번에 쓰는 풋크림이나 밴드 한 장의 값어치가 아마 거기에 거기일 것이다. 나는 태음인(목음체질)이고 아내는 소음인(수양체질)이다.

 

평소 아내의 성향과 태도로 보면 이 속담은 소음인(少陰人)에게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소음인은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자신의 근거지(腎定居處)9)를 소중하게 여긴다. 그래서 다른 체질에 비해서 세계관이 상대적으로 좁다고 할 수 있다.

 

새삼(ː)

권오길 선생은 발칙한 생물들에서 기생식물인 새삼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글의 제목을 그림과 같이 새삼스러운 기생식물의 한살이, 새삼이라고 달았다.10) 선생은 식물이면서 다른 식물에 빈대 붙어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별난 녀석이 있으니 새삼이나 실새삼 같은 완전 기생식물이 바로 그놈들이다. ‘새삼스럽게라는 말이 어울리는 새삼(Cuscuta japonica)이렇게 글을 시작했고, “새삼의 덩굴과 씨는 당뇨병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기생식물인 새삼이 놀라울 정도로 기력과 정력을 새롭게 하니 정말 새삼스러운일이다.” 이렇게 마무리했다.

이 말들의 관계를 자세히 살피지 않는다면, 언뜻 형용사인 새삼스럽다가 기생식물인 새삼과 연관되어 있다고 알아먹을 수도 있다. 나 역시 처음에 그랬다. 그래서 좀 찾아보았다.

 

외롭다11)는 말이 있다. 신비롭다 슬기롭다처럼 외의 형편을 닮았다.’는 뜻이다. 이때 외는 오이이다. 한자는 과()인데 오이나 참외 같은 박과식물 열매의 총칭이다. 그런데 과()자는 외로울 고()와 통한다. 참외(甛瓜)라는 이름은 단맛 나는 오이라는 뜻인데, 영어로는 멜론(melon)이고 이는 melone이 합쳐진 글자라고 한다.12) lone은 혼자라는 뜻이니 멜론은 나 혼자라는 의미이다. 한글에서 외도 외따로 외톨이처럼 혼자인의 뜻이다. 한자의 과는 외로움과 통하고, 참외는 영어로 나 혼자이다. 나 혼자이면 당연히 외롭다. 오이는 왜 혼자라서 외로운이름을 갖게 된 것일까.

다른 식물은 대개 쌍()으로 꽃이 피어 열매도 쌍으로 달리는데, 외는 마디 하나에 꽃이 하나씩만 핀다고 한다. 박과식물만은 꽃이 홀로 피니 열매도 하나뿐이다. 꽃이 홀로 피어야 그 열매가 둥글게 자랄 수 있고, 다른 열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마음껏 몸이 굵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식물의 꽃이 쌍이 아니고 홀로라고 가 된 것이다. 외라는 이름을 처음 지었던 한글을 쓰던 조상과 한자를 사용했던 사람들 그리고 melon이라고 명명한 유럽인의 인식이 모두 동일했다는 말이다.

()에서 외롭다가 된 것처럼, 기생식물인 새삼(菟絲)으로부터 새삼스럽다가 나온 것은 아니다. 새삼스럽다는 부사인 새삼의 형용사이다. 명사로서 새삼은 새ː삼으로 새를 길게 발음해야 한다. ː삼과 새삼스럽다는 전혀 연관이 없는 말이다. 그러니 권오길 선생도 두 말을 좀 엉성하게 이어붙였던 것이다.

 

소양인

토사자(菟絲子)는 기생식물인 새삼의 씨다. 동무 이제마 공은 자신의 저작에서 토사자를 소양인약에 넣지 않았는데, 1929년에 나온 동의사상신편에 보면 소양인약으로 들어가 있다. 그리고 토사자가 들어간 가미지황탕이란 처방도 있다. 이 처방은 작고한 김주 선생이 많이 썼다고 류주열 원장이 전했고, 자신도 토사자가 들어간 처방을 추가로 많이 만들었다.

동무유고에 들어 있는 사상인식물류에서 소양인에 맞는 음식의 제일 앞에 오이종류(瓜屬)가 나온다. ()와 새삼(菟絲)은 소양인을 매개로 연결된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1) 정종진, 『한국의 속담 대사전』 태학사 2006. 10. 30. p.493

2) 옹졸하다 : 성품이 너그럽지 못하고 생각이 좁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3) 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71〉와각지쟁, 『동아일보』 2012. 7. 9. 

4) 有國於蝸之左角者日觸氏 有國於蝸之右角者日蠻氏 時相與爭地而戰 伏屍數萬 逐北旬有五日而後反

5) 君曰 噫其虛言與 曰臣請為君實之 君以意在四方上下有窮乎 君曰無窮 曰知游心於無窮 而反在通達之國 若存若亡乎 君曰然 曰通達之中有魏 於魏中有梁 於梁中有王 王與蠻氏有辯乎 君曰無辯 客出而君惝然若有亡也

6) 白居易(772~846)

7)  Jean-Henri Fabre(1823.12.22.~1915.8.11.) 
  : 프랑스의 교수이자 시인, 생물학자이다. 《파브르 곤충기》의 저자로 유명하다.

8) [생물이야기·369]달팽이(1), 『강원일보』 2001. 10. 15.  
   [생물이야기·370]달팽이(2), 『강원일보』 2001. 10. 22.  
   [생물이야기·371]달팽이(3), 『강원일보』 2001. 10. 29. 
   권오길,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 티격태격, 와우각상쟁』 지성사 2013. 9. 1.
   권오길, 『과학비빔밥2』 지성사 2021. 4. 4.

9)  《壽世保元》 「性命論」 1-3 
   耳聽天時 目視世會 鼻嗅人倫 口味地方 
   「性命論」 1-5 
   肺達事務 脾合交遇 肝立黨與 腎定居處  

10) 권오길, 『발칙한 생물들』 을유문화사 2015. 7. 25. p.213 

11) 홀로 되거나 의지할 데가 없어서 쓸쓸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2) 김서령.[삶의 향기]참외는 참 외롭다, 『중앙일보』 2002.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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