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나이가 든다는 것과 그러나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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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나이가 든다는 것과 그러나 아직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
  • 승인 2024.03.08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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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김재범

mjmedi@mjmedi.com


영화읽기┃시
감독: 이창동출연: 윤정희 등
감독: 이창동
출연: 윤정희 등

난 개인적으로 이창동 감독님을 좋아한다. 그가 보여주는 장면들은 그럴듯한 장면들이 많다.

언젠가 봤던 것들, 언젠가 느꼈던 감정, 언젠가 누군가에게 보았던 표정, 그런 상황들. 내가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아왔는지 아님 영화감독으로서의 탁월한 관찰력으로 그런 순간들을 잘 기억해두었다가 필름에 옮기는 건지는 알 수 없으나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들은 정말 한 씬도 허투루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밥 먹으면서, 치킨 뜯으면서 볼 수 없다. 손으로 턱을 괴고 정말 집중해서 보고싶다.

이창동의 영화는 각 씬들이 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 속으로 장면들을 곱씹어 해석해 보게 된다.

서론이 길었다. 시는 윤정희라고 하는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긋고 영화판을 떠난 지 꽤 오래되신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다. 찾아보니 쇼팽녹턴을 정말 절제된 듯 애틋하게 연주하시던 백건우 피아니스트 선생님과 결혼한 사이였다. 이렇게 두 사람 다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데 최고라고 불릴만한 분들의 결혼생활은 어떨지 그들의 일상대화는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이것도 어쩌면 또 하나 서론이다. 영화는 미자(윤정희 분), 60대가 된지 꽤 넘어갔지만 혼자서 중학생이 된 외손자를 키우는, 단어가 하나씩 생각나지 않지만 여전히 멋쟁이 옷을 입고 기품 있는 말투로 말하는, 그녀를 계속 지켜보게 하는 구조이다.

영화 속 미자는 외로운 사람이다. 그녀가 유일하게 통화하는 사람은 아들을 낳아놓고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 딸이다. 슈퍼 계산대에서 동네사람들에게 자기가 오늘 들었던 동네소식을 늘어놓아도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어서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알아서 혼자 인사하며 슈퍼문을 나선다.

그녀는 밝다. 활동보조를 해주는 할아버지에게 늘 감정기복 없이 대한다. 손자가 버릇없게 굴어도 손자를 혼내는 일 없다. 손자를 늘 신경 쓰고 손자에게 늘 밥을 먹이고 있다. 그녀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활동보조 장애인 할아버지 말고는. 미자를 보면서 서울에서 진료할 때 뵀었던 어머님들이 생각났다. 그때부터 6-80대를 할머니라고 부르는 게 어색해졌다. 우리 엄마가 10년 20년 30년 뒤면 저 나이가 되겠구나.

엄마가 그 나이가 된다고 뭐가 달라질까. 몸이 아파지고 주름이 생기는 거 말고 나에 대한 기억이 달라질까. 세상에 대한 태도가 달라질까. 달라질건 없을 것 같아서 그분들이 나에게 정말 단어그대로 어머님들로 다가왔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게 있고 여전히 본인이 뭘 할 때 재밌는지 어떤 사람이랑 함께 할 때 즐거운지를 알고 있는 어쩌면 더 정확하고 섬세하게 알고 있을 그분들을 보면서 늙어감에 대해 생각했다.

미자는 어쩌면 본인에게 치매가 왔음이 어느 날 달라진 밤공기로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온 것을 아는 것처럼 갑작스러우나 그렇다고 어찌할 수 없는 일로 느껴질 것이다. 예전과 같지 않은 본인의 행동들, 예전과 같지 않은 판단력에 당황할 것이다. 슬프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무서움이 찾아올 것 같다.

합의금을 마련한건 딸을 잃은 어미에 대한 한없는 죄스러움과 안쓰러움에서였을 것이다. 손주의 일을 결국 고발한 것은 어쩌면 영화에서 계속 말하는 삶의 아름다움의 측면에서 그게 맞는 일이니까 그러했을 것 같다. 자연스러워야 아름다움이 보이고 아름다움을 시로 쓸 수 있다는 말처럼 그렇게 손자가 돈500으로 있던 잘못을 없던 것으로 하고 살아가는 것보다 죗값을 치루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인간은 죽기 전까지 관심이 필요하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게 생을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니까.

 

김재범 /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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