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김홍균의 도서비평] 역사의 영웅으로 가공된 신화 속의 중국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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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김홍균의 도서비평] 역사의 영웅으로 가공된 신화 속의 중국 황제
  • 승인 2024.03.08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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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균

김홍균

naiching@naver.com

대구한의과대학에서 학부과정을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내경한의원장과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 및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있으며, 의사학전공으로 논문은 '의림촬요의 의사학적 연구' 외에 다수가 있다. 최근기고: 도서비평


도서비평┃만들어진 민족주의 황제신화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황제(黃帝)는 익숙한 단어이다. 『내경(內經)』에 등장하는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공부하자면 만날 수밖에 없는 책이 『내경』인데, 그 『내경』의 첫머리에서부터 황제는 알 수 없는 신화로 꾸며져 있다. “옛날에 황제가 있었으니, 태어날 때부터 신령했는데, 갓난아이가 말을 할 수 있었으며, 어려서는 거느리고 다스렸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도탑고 총명했으며, 다 이루고서는 하늘로 올랐다(昔在黃帝, 生而神靈, 弱而能言, 幼而徇齊, 長而敦敏, 成而登天).”라고 하는 대목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하는 이 말은 해석하기도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래서 주석가마다 해석이 틀리고 신비한 인물로 각인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처음 접할 때부터 질리게 만든다.

김선자 지음, 책세상 펴냄

황제에 대해 이해될만한 뚜렷한 설명도 없으면서 그가 한 말은 금과옥조로 여겨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머릿속에 박히도록 교육받는다. 어차피 교과과정을 통해서 다 이해할 수도 없고, 졸업 후에 따로 공부하지 않는 한 제대로 읽어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가공인물이 중심이 되는 『내경』은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원전의 핵심인 이 서적은 이후 거의 먼지만 쌓이게 마련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중국 역사에서 황제는 몇 차례 되살아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 따르면, 최초의 황제는 신농씨(神農氏)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인물이며, 치우(蚩尤)와의 교전을 통해 천하를 얻은 인물이다. 이것이 중국 최초의 국가인 하(夏)나라가 등장하기 이전의 황제에 대한 기록이다.

이 황제가 전국시대(戰國時代) 말 제(齊; 기원전 1046~221년)나라의 추연(鄒衍)에 의해 다시 소환된다. 무려 천 년이 훌쩍 넘어서다. 황제는 땅을 넓히고 넓힌 그 땅을 차지했기 때문에, 땅의 색깔인 누런 색(黃)의 황제(黃帝)라는 뜻이다. 그런데 진(秦)나라 황제(皇帝)가 천하를 통일하여 땅을 차지했으므로 추연은 그를 진정한 땅의 주인인 황제(黃帝)로 보았다. 그러나 그 황제가 불과 15년 만에 망했다. 그러자 그 진나라의 땅을 한(漢)나라가 차지하게 되니 오행(五行)의 중심인 토(土)의 주인이 한나라가 되었다. 말하자면 한나라의 황제(皇帝)는 이제 모두 황제(黃帝)가 되었다. 그래서 『황제내경(黃帝內經)』은 이 한나라 황제를 중심으로 한 황실 의학인 셈이다. 이리하여 『내경』은 기존의 음양에 오행이 덧씌워져 『황제내경』이 된다.

우리 한의사들에게는 음양으로 이루어진 『내경』에서 오행이 덧붙여진 『황제내경』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저자에게 있어서 황제는 권력의 야욕으로 중국을 통일하고 나아가 세계를 지배하려 나아가는 정치 사상적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대의 중국은 대만을 통합하고, 동북공정을 완수하여, 세계를 마음대로 쥐고 흔드는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 속에, 동남아시아는 물론 호주, 뉴질랜드, 중동, 아프리카까지 손을 뻗고 있다. 저자는 ‘큰 나라가 일어서다’라는 뜻의 ‘대국굴기(大國崛起)’을 앞세우는 그 바탕에 죽은 황제가 있다는 것에 경고하고 있다. 중국 민족 통합의 뿌리로서 황제를 다시 살리고 있는 중국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면밀히 살펴서 미래에 대응해야 할 것이다.

 

김홍균 金洪均 / 서울시 광진구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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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한의과대학에서 학부과정을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현재는 내경한의원장과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 및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외래교수로 있으며, 의사학전공으로 논문은 '의림촬요의 의사학적 연구' 외에 다수가 있다. 최근기고: 도서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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