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 야부리와 야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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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 야부리와 야부이
  • 승인 2024.03.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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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속담과 체질3

달팽이박사

체질과 관련한 속담이 생각처럼 잘 찾아지지 않는다. 주말에 연달아 송파도서관에 갔다. 속담으로 검색한 책을 보다가 달팽이박사(Dr. snail)를 발견했다. 강원대학교 명예교수인 생물학자 권오길1) 선생이다. 우리나라에서 과학으로 대중적인 글쓰기를 시도한 1세대 지식인으로 불리고 있으며 과학 에세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1994년에 꿈꾸는 달팽이를 시작으로 괴짜생물 이야기를 쓰던 선생은 어느 날 우리 말 속에서 사람과 동식물을 발견하게 된다. 속담에 생물의 생태적 특징이 한껏 묻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속담과 생물을 연결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20년이 넘었다고 한다.2) 생물학 관련 대중 저술가가 속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과, 체질론을 공부하고 그와 관련한 글을 쓰던 내가 속담을 떠올리게 된 것이, 같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라서 아주 반가웠다.

선생은 때깔 고운 된똥을 보는 것은 기적이라고 썼다.3) 그것이 정녕 기적임을 경험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다. “글을 쓸 때만 살아 있다고 느낀다는 선생, 꾸준함과 끈기 의리 고집 등으로 함께 추리해 보면 분명 목음체질일 것이다. 가르치는 일에 열정적이고, 감투 같은 명예욕구는 많지 않은 것 같고, 어떤 때는 철부지처럼 행동하고 말한다4)고 하니, 내 판단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달팽이

나는 순발력이 아주 부족한 사람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그렇다. 먼저 배를 탄 사람이 노()를 고른다.”는 속담이 있다. ‘먼저 온 사람이 룰을 정한다.’는 뜻이다. 세태는 이렇듯 속도경쟁의 시대5)인데 나는 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선착순!’하고 명령을 듣는 일은 몹시 고역이었다. 19882월의 끝에 영천에 있는 육군제3사관학교에 입교했던 날도 군용 보급품은 받지도 못한 채로 선착순부터 했다. 물론 나는 꼴찌를 했고 남이 쓰던 더블백과 발에 맞지도 않는 워커를 받았다.

2000년대에 삼성동에 살 때이다. 매일 아내와 함께, 저녁을 먹고 난 후 집에서 잠실나루가 있는 한강공원까지 운동을 다녔다. 그때는 자전거와 사람 다니는 길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는 않았다. 하루는 걷다가 신발 끈을 다시 매느라 쭈그려 앉았는데, 포장된 바닥에 길보다 짙은 색으로 찍힌 점들이 많이 보였다. 무언가 궁금해서 자세히 살폈더니 달팽이들의 로드킬이었다. 아하, 로드킬은 고양이나 너구리 고라니 같은 동물만의 문제는 아니었구나. 그간 내 발걸음 아래서도 무심결에 수많은 달팽이가 희생되었을 거라는 깨달음이 생겼다.

달팽이에겐 점프가 없다. 묵묵히 바닥을 밀면서(미끄러지면서) 전진한다. 사실 그는 바닥을 밀지만 그 순간 자신의 온 몸으로 세상을 밀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나의 삶도 달팽이와 닮았다는 걸 알았다. 특히 공부(功扶)하는 방면에서 그랬다. 그 날 이후로 아이디를 달팽이로 정했다.

 

야부리

나는 말주변이 없다. 숫기도 없어서 어릴 때 아버지가 손님에게 인사를 시키면 문 뒤에 숨어서 목만 내밀곤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일,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서 일어나 발표하는 일, 회의 같은 것을 진행하는 일은 아주 어렵고 서툴러서, 반장을 맡았던 몇 년간 학급회의는 매우 곤혹스러운 임무였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나아지고 발전하기는 했지만 내가 말을 잘 하게 되리라는 기대는 회갑을 넘긴 지금에도 전혀 없다.

야부리 깐다.’ 혹은 야부리 턴다.’ 이런 말이 있다. “, 야부리 털지 마!” 하고 친구한테 외치듯이 말이다. ‘야부리1982년에 대학에 가서 서울에 살면서 처음 들은 말인 걸 보면 그 이전에 내가 살았던 충청북도나 경상북도 그리고 대구에서는 잘 쓰이지 않았던 말인 듯하다. 야부리는 터무니없는 말, 거짓말 등을 뜻하는 속어라고 한다. 여기에서 뜻이 확장되어 격의(隔意) 없는 이야기 자체를 뜻하는 말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격의 없는 이야기란 상대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는다는 뜻인데, ‘별 부담 없이 아무렇게나 하는 말이라는 쪽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카타르 도하 탁구사건을 두고서 손흥민이 이강인의 목을 졸랐대.’하면서 야부리를 턴다면 이 말은 터무니없기 때문이다.

야부리의 어원을 캐는 자료에 보면, 우리말인 야불거리다 야불대다6)의 축약형이라는 의견, 또 인천사투리 설이 있고, 깨다 찢다 등을 표현하는 일본말 (yaburu)의 명사형인 (yaburi)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일본말의 원래 의미는 약속이나 규율 기록 등을 깨는 것이라니, 일본말이 어원이라면 무엇인가 격식 같은 것을 없애고 하는 말이라는 뜻일 것이다. 서울에 올라와서 겪어보니 아무래도 야부리 잘 까는 친구주위에는 늘 사람들이 꼬이는데 물론 그의 말이 흥미를 끌기도 하고, 평소 언어습관이 늘 그래서 그의 캐릭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내게는 그런 캐릭터가 별로 없다.

 

야부이

지난 1411에서 돌팔이 의원 입으로 먹고 산다.”는 속담을 소개했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 “박 선생도 수가 늘었소이다.” “돌팔이 의원, 입으로 먹고 산다는 얘기도 못 들으셨소?” “아닌게 아니라 서울서 온 내 처제가 야부이샤라 하긴 하더구먼.” 이런 대화가 나온다. 이 소설 내용으로 보면 야부이샤가 돌팔이 의원인데, 입으로 먹고 산다는 것이다. ‘입으로 먹고 산다.’가 핵심이다. 먹고 사는 일은 생계활동이고, 그 일이 바로 돌팔이란 것이다.

일본말에서 야부이샤(藪醫者)의 변화는 이렇다. 처음에 주술을 의약과 함께 사용하는 자를 야부(野巫)라고 했다. 그런 다음에 같은 발음인 야부() 야부(野夫)로 쓰면서 시골의사라는 뜻으로 낮춰서 불렀다. 그것이 야부이(藪醫) 야부이샤(藪醫者)로 변했고 실력이 형편없는 의사를 지칭했다.

일본 역사에서 에도시대7)에는 의사에 대한 나라의 자격제도가 없었으므로, 약간의 한문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생계의 목적으로 의사의 길을 택했던 것이 에도시대의 분위기였다.8) 여러 다양한 이름의 돌팔이의사가 존재했고 돌팔이의사가 횡행했다. 이런 사람들 중에 의업을 행하는 집의 외관을 화려하게 꾸미는 사람들이 있었다. 의학적인 지식이나 실력이 부족했으므로 밖으로 비치는 표면적인 모습에만 신경을 쓰는 의사들이었다. 그래서 돌팔이의 화려하게 단장된 현관(化粧造玄關構)’9)이란 말이 유행했다. 그들은 머리와 복장, 주거와 현관을 화려하게 꾸미고 뛰어난 말솜씨로 무장했다.

물론 천황이나 황족의 의약을 담당하는 높은 지위를 가진 의사도 있었다. 그들은 덴야쿠노가미(典藥頭)라고 불렀다. 그 외에도 오쿠이샤(奧醫者), 마치이샤(町醫者), 무라이샤(村醫者) 등이 지위가 높은 의사들이었다. 그 역할은 세습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학통(學統)을 중요하게 여겼다. 의사의 실력에 관한 공식적인 기준이 없었으므로 누구에게서 배웠는가가 중요하게 여겨졌다.10)

 

돌팔이 못 고치는 병이 없다

영어권에서는 돌팔이를 quackery라고 한다. quackeryquacksalver11)에서 유래했다. 사전에서는 의학적 기술을 가진 체 하는 사람이거나 토론되는 주제에 대한 건전한 지식이 없이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12)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는 돌팔이 행위의 주장은 의도적인 사기(詐欺)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돌팔이는 애초에 상대방을 속이려는 의도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사실 20세기가 되기 전까지 서양의학의 수준은, 지금의 시점으로 보면 엉터리 돌팔이 수준의 치료술이 많았다. 얼토당토않은 치료법들이 버젓이 사람들에게 제공되었다. 이런 것만 주로 다룬 책도 있다. 돌팔이 의학의 역사13)에는 엉터리 만병통치약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무식한 사람이 용감하다.”무식한 놈이 먼저 나선다.”는 속담이 있다. 그리고 말을 잘 하는 자는 거짓말도 잘 한다.”는 독일 속담이 있다. 돌팔이는 무식과 거짓말이 결합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말로는 못할 말이 없다.실지 행동이나 책임이 뒤따르지 아니하는 말은 무슨 말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속담이다. 오지랖14)이 넓고 성질이 급해서 말이 행동보다 늘 앞서는 성향인 토양체질은, 전혀 없는 것을 있는 사실인 양 지어내고 또 그것을 상대가 믿도록 만드는 현란한 언변을 지녔다. 이것은 분명히 토양체질의 재능이다. 거짓말은 도둑질의 시작”, 거짓말 하는 데는 참기름 쳤다.”,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이 한다.”, “거짓말을 오지랖에 싸고 다닌다.” 이런 속담이 있다. 거짓말은 참말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속담도 있다. 보통은, ‘거짓말로 꾸미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므로 거짓말을 잘 하는 것은 재능임이 분명하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雲峰 權伍吉(1940~ )

2) 우리말에 깃든 생물이야기 시리즈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 티격태격, 와우각 상쟁』(2013), 『소라는 까먹어도 한 바구니 안 까먹어도 한 바구니』(2013),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한다지?』(2015), 『명태가 노가리를 까니, 북어냐 동태냐』(2016),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도 어우렁더우렁』(2016), 『눈 내리면 대구요, 비 내리면 청어란다』(2017)

3)  [생물이야기] <1179> 때깔 고운 대변을 보는 것도 기적, 『강원일보』 2021. 7. 21. 

4)  부인의 지적이라고 한다. 

5)  특허, 저작권, 오픈런 등

6)  입을 자주 놀려 잇따라 말하다. =야불거리다.

7)  에도(江戶)시대(1603~1867)

8)  그래서 중국에서 유입된 의서의 영향력이 컸다. 

9)  ‘화려하게 단장된 현관’이라는 말을 보다가 삼성동 덕림빌딩에 들어가 있던 소람한방병원이 갑자기 떠올랐다. 강남 한복판에 있는 이 빌딩은 지하 1층 지상 9층의 최신식 건물이다. 물론 화려하게 단장된 그 건물 안에는 현란한 말솜씨와 두둑한 배짱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10)  이충호, 「에도(江戶)시대 ‘돌팔이의사(藪醫者)’의 이미지 형상화 과정에 대한 고찰」 『일본연구』 〈33집〉 2019.

11)  그의 바르는 약을 자랑하는 사람

12)  charlatan : 가짜 의사, 사이비 학자

13)  리디아 강. 네이트 페더슨 저 / 부희령 역, 『돌팔이 의학의 역사』 더봄 2020. 9. 3. 
    원서 : 『Quackery: A Brief History of the Worst Ways to Cure Everything』

14)  오지랖은 ‘겉옷의 앞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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