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 중인 과제가 하루 아침에 80% 삭감…“한의계 표적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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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 중인 과제가 하루 아침에 80% 삭감…“한의계 표적 됐나”
  • 승인 2024.02.13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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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한의디지털융합기술개발사업 삭감 통보에 연구진 “기초 자재조차 구매 불가한 금액”

주무부처 “예산편성 상 불가피”…“단기 성과에 급급하게 되는 범연구계 트라우마”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한의계 최초의 다부처사업으로 각광받던 한의디지털융합기술개발사업 연구 예산이 80% 삭감되면서 일부 연구가 중단됐다. 연구진들은 “이미 협약이 완료된 과제가 명확한 이유 없이 변경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보건복지부는 한의디지털융합기술개발사업을 신규로 착수한다고 지난해 1월 17일 밝혔다. 이 사업은 한의계 최초의 다부처 사업으로, 한의기술 기반의 디지털 등 첨단과학기술·지식 등을 융합하는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향후 5년간 35개 과제에 440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7월 10일 신규과제 선정결과를 공고했고, 선정된 연구실에서는 과제를 진행 중이었다.

상황이 반전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 경이었다. 과기정통부가 33년 만에 2024년도 국가 연구개발(R&D)예산을 3.4조 삭감하겠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달, 한의디지털융합기술개발사업 과제를 수행하던 연구진들은 과기정통부의 모과제 연구 예산이 80% 삭감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갑작스레 예산이 삭감된 가운데 연구진은 2월 1일까지 2단계 연구를 진행할 것인지 확정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에 연구진은 기초적인 연구자재도 사용할 수 없는 액수로는 연구 진행이 불가능하다며 일방적인 예산삭감 탓에 함께 과제를 수행하기로 한 타 연구실에 협조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고 밝혔다.

연구개발비가 총 4억 원에서 1억 1200만 원으로 72% 삭감됐다는 연구실에서 박사과정 재학 중인 A씨는 지난해에 수행한 1차 연도 연구만 마무리하고, 올해부터는 전체 과제를 포기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미 과제가 어느 정도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예산의 일부를 이미 사용하고 있던 상태였는데, 불과 2주 전(1월 31일 인터뷰)쯤 일방적으로 예산 삭감을 통보받은 상태라 업무에도 영향을 많이 미친 상태”라고 전했다.

역시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B씨는 “시약이나 실험동물 같이 기초적인 연구자재를 구입하는 일 조차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확실한 것은 이러한 예산으로는 처음 계획대로 5년 간 연구를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연구비가 5억 원에서 1억 원으로 삭감 됐다는 연구실의 C 교수는 “3책 5공의 개념이 있다. 연구자가 과제를 수행할 경우 책임자 당 3개, 공동과제 5개까지만 최대로 수행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에 연구진은 과제를 무한정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과제 하나를 참여하는데도 신중해야 한다”며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연구비가 줄어들면, 우리 연구실도 문제지만, 우리 연구를 서브로 도와주는 연구실에서도 연구를 함께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만약 올해 예산은 줄어들더라도 내년에는 다시 예산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을지 문의했는데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다. 이미 진행 중인 연구의 지원을 이렇게 삭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연구원들은 이 연구가 아니라 다른 연구를 할 수도 있고, 여러 가지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잃은 셈”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예산편성을 그렇게 받아서 어쩔 수 없었다”며 뚜렷한 이유를 대지 못했다고 했다

한의디지털융합기술개발사업 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은 과기정통부 주무부처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지난달 26일 간담회를 가졌다. 이 간담회에 참석한 D 교수는 “간담회에 가서 제일 먼저 한 질문이 바로 ‘이 사업만 유독 80%까지 삭감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명확한 답을 주지 못했다. 그저 예산 편성을 그렇게 받아서 어쩔 수 없었다고만 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한의계 사업이 유독 제대로 된 이유도 없이 연구비를 80% 삭감된 것은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한의계 첫 다부처사업이라고 홍보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된 것이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관계자들은 “전에 없던 초유의 사태에 참담함을 이루 표현할 수 없다”며 “한의계가 표적처럼 삭감되는 일은 불합리하고 납득할 수 없다. 이는 한의계 뿐 아니라 범연구계에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며, 단기성과를 우선시하게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D 교수는 “연구계에 큰 트라우마로 남을 일이라 생각한다”며 “이전에는 예산이 없어서 신규과제가 없어지거나 선정 과제를 선정하지 않는 일은 있었지만, 이미 협약이 끝난 과제가 변경될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이미 평가받고, 과제계획서를 쓰고, 연구 진행 중인 과제를 중간에 변경한 일은 사상 유례가 없다. 이 일 이후로 연구자들은 장기 집단 연구는 언제 중단될지 모르니 할 수가 없고, 개인 단기성과에 집착하는 과제만 우선순위로 두려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A 씨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담한 심경”이라며 “비용이 줄어든 문제를 떠나 연구 환경이 이렇게까지 열악해지면 어떤 연구자가 자유롭게 연구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생기고 갑갑하다”고 전했다.

B 씨는 “평균적으로 R&D가 20~30% 삭감 되는 수준은 납득할 수 있지만, 특정 과제만 80%~90% 수준으로 삭감 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특히 한의학분야 개발과제가 현재 상황으로 비정상적인 삭감이 이뤄지면 이 여파가 학문후속세대에도 분명히 영향을 줄 것이다. 이렇게 한의학분야가 표적처럼 삭감되면 다른 공동연구기관이 한의학연구기관과 연구를 같이 하려고 할 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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