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인류학하기](19) 황망한 부고에 부쳐: 죽고 다치는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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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인류학하기](19) 황망한 부고에 부쳐: 죽고 다치는 농촌
  • 승인 2024.02.0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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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유정

신유정

mjmedi@mjmedi.com


갑작스런 전화가 걸려왔다. 아랫마을 한우 축사하시는 K 씨의 발인이 바로 전날이었다는 것이다. K 씨는 아픈 데도 없이 부지런하게 일만 하는 사람인데 대체 무슨 발인이냐 멍청하게 되물었다. 그는 아들 둘을 장가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첫 손주가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뗐다. 객관적으로도 부고를 전하기에 젊은 나이지만 특히 농촌 마을에서는 한창 일할 청년이나 다름없는 이였고,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이웃이었다. 그는 지난 여름 남편을 불러내 장어를 사 먹이기도 했고, 우리집 처마를 달아내는 공사를 할 때에도 대부분의 작업을 도맡아 해주었다. 수박 하우스 네 동을 했었는데, 모종 정식 후 우리 가족 이름 각각이 적힌 표를 붙이고선 수확 무렵 그 수박들을 (공판장이 아니라) 우리집에 들려 보내기도 했었다. 어른 머리통보다 더 큰 잘생긴 수박들을 아까운 마음 없이 선물로 주었던 소중한 이웃이 그였다.

사고 예방이 가능하려면 이런 작업환경 – 안전모, 생명줄, 안전대 등을 갖춘 - 이어야 한다고 한다(출처: 고용노동부).

 

황망한 사고였다. 옆집 축사 지붕을 손봐준다고 올라갔다가 추락하면서 사고가 났다. 누구에게나 사고는 일어나지만 그에게 그런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마을에 있는 하우스들이나 집들을 종종 손봐주거나 직접 지어줄 만큼 워낙 재주가 좋은 사람이었고, 웬만한 높이의 구조물에 올라가서도 날렵하게 일을 마칠 만큼 지붕 수선을 익숙하게 해내는 사람이었다. 소식을 전하자 남편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을 초입을 지나다가, 그날 K 씨가 축사 지붕에 올라가 있는 모습을 봤다는 것이었다. 지붕 마감이 그리 튼튼하지 않은데 너무 높고 위험하다고만 생각하며 안부 인사 없이 그냥 지나쳤다고 했다. 그게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조우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던 것이다.

K 씨의 사례는 드물지 않다. 축사나 하우스 지붕 위에 꽤 연세드신 분들이 안전 장비없이 올라가 있는 모습은 오늘도 대한민국 농촌 어딘가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농사지어 먹고 사는 일이 대단히 이문을 많이 남기는 일이 아니다 보니, 농촌에서는 대부분의 일들을 DIY(Do It Yourself)로 해내야 한다. 축사든 하우스든 인건비 주고 인부를 사서 손보면 깔끔하고 편하겠지만, 그만큼 농가소득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일정한 규모 이상이 아닌 절대 다수의 가족농, 소농들의 경우 각 개인들이 몸으로 얼마나 때울 수 있느냐에 따라 소득 규모가 달라진다. 하지만 단신으로라도 보도되는 공장 노동자들의 사고 소식과는 달리, 농촌 주민들의 사고는 “내 불찰”이며 당사자들의 부주의 때문으로 치부되기 십상이고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농촌에서 일하다 다치고 작업 중 사망하는 사고들 (산업재해) 중 K 씨처럼 추락으로 인한 사고는 전체의 11.6%를 차지할 정도로 잦은 유형이다(농촌진흥청 2019 농업인 업무상 손상조사). 2020년 6월 16일에도 구례군의 한 농장에서 22세 청년이 축사 지붕에 올라가 노후된 지붕마감재 제거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그는 작업 중 밟았던 지붕재 일부가 파손되면서 5.2m 아래 축사 바닥으로 추락한 뒤 숨졌다.

물론 대한민국은 좋은 나라이므로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여러 가지 법안을 구비해 두고 있다. 예를 들어, 산업안전보건법은 사용자에게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부여하고 사용자가 이 의무를 다하는지 정부가 관리·감독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농업인 대부분은 노동자가 아니라 소규모 자영농이라 산업안전보건법이 보호할 수 있는 대상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경운기나 트랙터에 끼어서 다리를 절단하거나 골반이 부서지는 농기계 사고, 혹은 낙상, 감전이나 추락 등이 농촌에선 일상이다. 국제노동기구(ILO) 역시 농업을 광업, 건설업과 함께 3대 위험 산업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국내 산업재해 통계에서는 농업이 다른 산업보다 재해율이 1.5~2배 높다. 산재 적용을 받는 농업인이 전체의 3.3%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해 소규모 자영 농업인들을 포함해서 본다면, 전체산업보다 10배 정도 높은 비율이라고 한다.1)

이 글을 쓰면서 몇몇 자료를 살펴보다가 스스로도 문득 놀라고 부끄러워졌다. 당장 작년 봄에, 그간 우리 마을 예초해 주시던 분이 작업 중 튄 돌에 눈이 상해 더이상 작업해주실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소식 들으며 안타까운 마음은 있었지만, 농촌에서야 예초기 돌리다 눈 다치는 게 어제오늘 일인가 싶었고, 보안경이라도 잘 챙겨 쓰고 작업을 하셨어야지 생각했었다. 경운기 타고 다니시다 기계가 뒤집어져 어깨가 골절되었다던 할머니, 할아버지들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도, 그거야 농촌에서는 비일비재한 일 아닌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듣고 넘겼던 기억들도 있다. 이곳에 살면서도 이토록 무감하니, 함께 공간을 공유하지도 않는 이들에게 공감과 이해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신유정 / 인류학 박사, 한의사

 

각주

1)경향신문 2020.09.08. “사각지대에 방치된 ‘농업인 재해’ - 하루 1명꼴 사망, 산안법도 외면하는 ‘죽음의 일터’ 농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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