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눈이 오면 떠오르는 ‘사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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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눈이 오면 떠오르는 ‘사랑 이야기’
  • 승인 2024.01.26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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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러브스토리

아련한 사랑 이야기 하면 떠오르는 전설적인 영화 이야기해보자. 그 분야의 바이블이라고 할 만한 영화 말이다. 여러 영화가 있겠지만 필자는 1970년(한국 기준 1971년)에 개봉한 아더 힐러 감독의 러브스토리를 말하곤 한다. 제목부터가 원조의 향기가 난다. 가타부타할 것 없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제목이라는 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 아마 러브스토리를 실제로 본 사람은 드물지라도 다들 그 명대사는 들어봤을 것이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거야.(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

감독: 아더 힐러​​​​​​​출연: 알리 맥그로우, 라이언 오닐 등
감독: 아더 힐러
출연: 알리 맥그로우, 라이언 오닐 등

이 영화는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바이블이라 할 만 하다. 일단 당시 영화 흥행이며 수상기록이 엄청나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눈이 오면 ‘러브스토리’는 몰라도 한 번쯤 눈밭에 누워서 뒹구는 연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상징성이 있지 않나. 그 장면이 러브스토리에서 나온 장면인 줄은 모르더라도 아주 클래식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유명해서 바이블이 되었다고 표현하기는 미안하다. 일단 생각보다 재밌고, 잔잔하고 단순한 연출이 인상적이다. 진한 멸치육수로 우려낸 잔치국수 같은 영화랄까.

줄거리는 굉장히 단순하고 신파적이다. 영화읽기에는 이야기의 일부만 소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오래됐고 진부한 이야기다보니 결말까지 전부 공개해보겠다. 줄거리는 이렇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난 하버드생 올리버가 가난한 레드클리프 여대생 제니와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이들은 올리버의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해 사랑을 이어간다. 부모의 도움 없이 어렵게 로스쿨을 다니며 사랑을 키워가던 올리버는 결국 뉴욕 유명 로펌에 취업하게 되지만, 제니는 불치병에 걸려 죽게 된다.

어디서 많이 본 이야기라 지루할 법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가 나올 때를 기준으로도 이런 시놉시스가 새롭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실 이런 류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제인 오스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니 그럴 법 하다. 보통 이렇게 오래된 영화는 현대 관점에서는 흔하고 진부해서 흥미가 떨어지기도 하는데, 온갖 아침드라마와 막장드라마에서 수많은 자극적인 버전으로 변형돼서 뇌리에 각인시키는 21세기 시청자 기준으로도 볼만하다. 그 이유는 일단 배우들의 연기가 과하지 않게 자연스럽고, 연출도 잔잔하고 섬세해서 몰입감이 좋기 때문이다. 신파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어느 연인이 이런저런 역경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을 이뤄가는 모습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킨 달까. 부모의 원조가 끊긴 뒤로 열심히 살아가는 연인의 모습을 보면 응원하고 싶어진다. 일평생을 부자로 살아온 부잣집 도련님이 갑자기 가난을 겪게 된 것도 그렇고, 남편의 로스쿨생활을 위해 자신의 꿈을 뒤로 미뤄놓고 학교 교사로 일하던 아내의 이야기도 그렇다.

오래된 영화라서 어설프지만 현대적 관점에서 역으로 신선한 요소도 있었다. 러브스토리라고 하면 다들 떠올리는 ‘그’ OST다. 모두가 그 OST를 떠올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눈밭을 뒹구는 그 명장면에 흘러나왔기 때문이 아니라 OST가 그 곡 하나 뿐이기 때문이다.(필자의 착각이라면 정정 바란다.) 심지어 심심하면 ‘그 곡’을 틀어주니, 뇌리에 각인되지 않는 것이 신기할 수준이다.

게다가 필자의 경우 결말을 몰랐기 때문에, “이제야 좀 살만해졌는데......거짓말!”하고 광분하기까지 했다. 반전이라면 반전이었달까. 너무 잔잔한 이야기라 이런 자극적인(?)결말이 나올 줄 예상 못했다. 슴슴한 연출이라 더 충격이 크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

여러모로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섬세하게 버무린 교과서 같은 영화다. 교과서는 교과서의 이유가 있는 법. 눈이 오는 계절에 감상해보길 권한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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