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먹거리가 던지는 문제적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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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안세영의 도서비평] 먹거리가 던지는 문제적 물음표
  • 승인 2024.01.26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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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안세영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죽음의 밥상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가입한 OTT 서비스 이용 시간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습니다. 편파왜곡 보도를 일삼는 뉴스에 신물이 나 채널을 돌리다보면 종국에는 넷플릭스를 검색하게 되던데,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같은 드라마를 잘못(?!) 선택하면 끝장을 볼 때까지 몰아보게 하거든요. 좀 자제해야지 하면서도 주말이 되면 영락없이 뭐 재미있는 게 없을까 소파에 앉아 리모콘을 집어 들곤 하니…. 물론 얼마 전 시청한 다큐멘터리 「음식이 나를 만든다; 쌍둥이 실험(You are what you eat; a twin experiment)」처럼 투자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유전적 정보가 거의 동일한 21쌍의 일란성 쌍둥이 각각에게 8주간 잡식성 식단과 비건 식단을 섭취하게 한 뒤 인지기능·성기능·내장지방 등을 비교 검토한 실험! 표면적으로는 유전과 환경, 아니 우리 식대로 표현해서 선천품부(先天稟賦)와 후천섭생(後天攝生)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것이지만, 기실은 윤리적 식습관의 절실함을 각성시키는….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산책자 펴냄
피터 싱어‧짐 메이슨 지음,
함규진 옮김, 산책자 펴냄

『죽음의 밥상(The Ethics of What we Eat)』은 다큐멘터리 시청 후 서가에서 뒤져 다시 읽은 책입니다. 완전한 채식주의자로의 전향 의지를 더욱 불태우고 싶었거든요. 지은이는 『동물해방(Animal Liberation Now)』으로 전 세계에 동물해방 운동의 불꽃을 지핀 실천주의 윤리학자 피터 싱어(Peter Singer)와 농부 변호사 짐 메이슨(Jim Mason) 두 분입니다. 「농장에서 식탁까지, 그 길고 잔인한 여정에 대한 논쟁적 탐험」이라는 우리말 부제에서 짐작하듯이, 저자들은 우리들이 매일 먹는 고기(닭·돼지·소·오리 등은 물론 각종 생선들까지)가 식탁에 올라오기까지 얼마나 끔찍한 과정을 거치는지, 게다가 생태환경에는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실상이 이럴진대 그래도 고기를 먹을 거니? 고기는 물론 동물성 식품을 아예 먹지 않는 것이 최고의 윤리적 먹을거리 선택이지 않겠니? 반문하면서….

책은 각기 다른 입맛·식습관·식품구입 방식을 가진 세 가족의 먹을거리가 식탁 위에 올려 지기까지의 거의 전 과정을 추적·관찰·분석한 뒤 어떻게 하면 생태환경까지 고려한 보다 윤리적인 먹을거리 쇼핑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하는 방식입니다. 1부의 힐러드-니어스티머 가족은 전형적인 마트 쇼핑과 육가공식품 애호파이고, 2부의 매서렉-모타밸리 가족은 건강에 관심이 많아 유기농 식품과 해산물을 주로 먹는 선택적 잡식주의파이며, 3부의 파브 가족은 완전 채식주의 실천파인데, 이들의 식단에 따른 긍정적·부정적 측면을 철저히 파헤치지요. 책장을 넘겨가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는데, 저는 무신론자이면서도 교황 베네딕트 16세의 “주님의 피조물의 산업적 이용을 단죄한다”는 선언과, 슬로푸드(slow food)의 제창자 카를로 페트리니(Carlo Petrini)의 “어떤 음식을 사시사철 먹을 수 없는 것이 고역이라면 그것은 표준화되고 맛대가리 없는 산업형 농업생산물, 방부제와 인공감미료로 떡을 친 생산물, 식품산업의 목적에만 맞아떨어지고 사람의 기호에는 전혀 맞지 않는 채소와 과일종자를 먹어야만 하는 고역보다는 훨씬 덜한 고역이다”는 웅변이 제일 가슴에 와 닿더군요.

삼시세끼 먹는 음식 하나를 고를 때에도 윤리적 자세가 필요하건만…(입이 근질근질하지만 해코지 당할까봐 참으렵니다).

 

안세영 /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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