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영의 제주한 이야기](16) 한의원 운영축의 하나 - 건강보험체계라는 국가제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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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영의 제주한 이야기](16) 한의원 운영축의 하나 - 건강보험체계라는 국가제도 (3)
  • 승인 2024.01.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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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영

남지영

mjmedi@mjmedi.com


필자는 2007년부터 3년간 서울에서 한의원을 하다가 2010년 말에는 제주로 이전을 하게 됐다.

서울에서 했던 첫 한의원에서는 초진이 매우 적었다. 재진률은 비교적 높았는데 그래도 하루에 방문하는 환자의 숫자는 적은 편이었다. 그 덕에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이 굉장히 여유 있었고, 환자들은 나에게 건강보험으로 치료 가능한 영역 이외의 것들을 상의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건강보험치료의 비중은 15% 남짓이었다.

반면 제주에서 운영하고 있는 현재의 한의원은 매출은 물론 내원환자 구조가 완전히 반대이다. 비보험치료의 비중이 15% 남짓이고 내원하는 환자숫자는 상당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매우 바쁜 일과가 이어진다. 처음에는 나조차도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필자가 경영적으로 상세한 분석을 해서 이런 위치를 선택하고 이전한 것은 아니었기에 더더욱 버겁고 힘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정보를 조합해서 “효율”적인 치료방향을 도출하는 방식을 익히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장단점에 대해 몸으로 정말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환자들에게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검증된 치료법을 제공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지만, 너무나 제한적인 부분들 때문에 충분한 치료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나쁜 점도 존재한다. 그 중 최고봉이 노인외래정액제가 아닐까 한다.

노인외래정액제는 2001년에 처음 생긴 제도이다. 만 65세 이상 경로환자의 본인부담금(이하 본부금)은 진료비 총액 15000원까지는 1500원만 부담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2001년 당시에는 나도 학생이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진료비총액 15000원이 그렇게 크게 불합리한 금액은 아니지 않았을까 한다. 그러나 그 뒤 10년 이상 진료비총액은 15000원은 고정이었다. 그 동안 물가와 인건비는 가파르게 올랐다.

15000원이 10원이라도 넘어가는 순간 본인부담금은 30%이므로 1500원 내던 사람이 갑자기 4500원 이상을 내야 한다. 환자에게 이게 국가정책이라고 설명을 해도 이해하기 어려울뿐더러, 어렵게 납득은 했다 하더라도 이미 마음은 상해 있다. 그래서 수많은 개원의들은 환자에게 몇몇 치료는 청구없이 무료봉사를 해 주고 15000원 이내로만 청구를 했을 것이다.

2011년에 보험제제를 처방하면 진료비총액 2만원까지는 본부금을 2100원만 내면 되도록 하는 제도가 신설되었지만, 1500/15000(본부금/진료비총액)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어르신들은 치료에 드는 품이 많다. 아픈 곳이 많으셔서 치료해 드릴 곳도 많고, 거동이 불편하신 경우도 있어서 직원들 도움이 수시로 필요한 경우도 상당하다. 그래도 청구를 더할 수가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청구를 더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청구를 더 안 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계속 1500원 내고 치료를 받던 환자에게 “올해부터는 5천원 내셔야 해요”라던지 “물리치료 하나 더 하셔서 6500원 나오셨어요”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환자입장에서는 진료비가 3-4배 이상 나오는 것이다.

만 65세 환자에게 진료비총액 허들 없이 본부금을 무조건 10%만 내라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만 건강보험재정이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다. 국가에서 의료인에게 강제적으로 무료 치료적 부분을 명시하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의료인들이 일정부분이상 넘어가는 봉사를 하게 되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나는 이런 현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정해진 금액을 넘어가는 치료를 통상적으로 무료제공할 때, 나는 “의례히 그렇게 하니까”라는 생각으로 쿨하게 넘어가는 것이 잘 되지 않았다. 흔쾌한 마음이 되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때때로 자괴감을 느끼곤 했는데, 간혹 생각해보면 이건 제도적 문제가 초래한 것 아닌가 싶어서 해당제도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그나마 필자의 한의원에는 노인환자분이 10% 남짓이셔서 죄책감을 느끼는 괴로운 상황이 하루종일 이어지는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2017년 8월 중순 “불합리한 건강보험정책 개선을 위한 전국비상대책위원회(이하 전국비대위)”가 출범하여 함께 하게 되었다. 그 때 나는 중앙비상대책위원회(이하 중앙비대위)의 7명 중 하나였는데, 회원들의 의견을 여러 루트에서 모아 비대위에 전달하고 회의 과정을 숙지하고 결과를 전달받아 회원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했다. 국가에서 알아서 해 주지 않는 이 일을 위해 당시 연임 중이던 제43대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님은 단식투쟁을 하셨고, 비대위원장인 김용환 원장님은 부산, 오송, 서울을 종횡무진하며 몇 달을 24시간 내내 이 일에 매진했다. 중앙비대위는 물론 전국비대위의 많은 분들 역시 정말 많은 고생과 노력을 함께 했다. 나도 9-10월간 일주일에도 2-3번씩 제주에서 서울을 왔다 갔다 하며 밤을 새우고 일을 했지만 그 분들 앞에서는 힘들다고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드디어 2017년 11월 1일 건강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노인외래정액제 개선안이 보고안건으로 통과되었다. 상세내용을 요약하자면, 현재 통상적으로 많이 처방되고 있는 치료조합인 비투약시 1900/20000원, 투약시 2400/25000원으로 대표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와 한의계의 협의체를 통해 조율된 세부항목안대로 확정이 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었고, 필자는 노인외래정액제 개선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역사적 현장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기쁜 마음으로 진료를 재개할 수 있었다.

비급여위주 한의원을 할 때는 국민건강보험제도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가 없었는데, 우연히 건강보험치료를 많이 하게 되면서 또 우연히 한의사협회 일에 참여하게 되면서 제도적인 부분이 나와 동료와 선후배들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정말 말그대로 몸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위한 제도는 국가가 알아서 해 주지 않고, 내가 참여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뻔하디 뻔한 사실도 다시금 몸으로 느껴보게 되었다.

무려 18년 만에 1500원이 1900원으로 변경된 것인데 그게 벌써 6-7년 전이다. 그간 최저임금은 30% 이상 상승되었지만 노인외래정액제 내용은 그 때 그대로 멈춰있다. 나날이 늘어가는 한의원 운영경비 상황을 보면서, 코로나 이후에도 길어지는 한의계의 불경기 상황을 보면서, 제도적 보완이 내 살림살이를 조금이나마 숨통 트이게 해 주면 좋겠다고 희망해본다.

 

남지영 / 경희미르애한의원 대표원장, 대한여한의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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