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의학 이제 디지털 전환을 준비해야 할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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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한의학 이제 디지털 전환을 준비해야 할때 (2)
  • 승인 2024.01.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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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이상훈

mjmedi@mjmedi.com


이상훈 한국한의학연구원 박사
이상훈
한국한의학연구원 박사

“곤경에 빠지는 것은 무언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무언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2022년 다보스 포럼 북클럽 도서이며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책중 하나인 질리언 테드의 [알고있다는 착각]에 나오는 문장이다.
 
‘AI 한의사 개발을 위한 임상 빅데이터 수집 및 서비스 플랫폼 구축 사업’이라는 다소 길고 장황한 이름의 과제를 수행하면서, 또한 그동안 한방의료기기 개발 과제들을 추진하면서 만난 한의사 동료들과의 만남에서 가장 필자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내가 안다, 또는 내가 맞다”라고 주장하는 한의사들이었다. 그리고 한방의료기기의 보급사업에 가장 장애가 되는 것 또한 ‘그런 건 기기가 필요없다, 나도 알수 있다.’ 라는 관념의 장벽이었다. 

2022년 12월 한의사 초음파 사용이 합법 판결이 난 이후 임상 현장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초음파가 보급되고 있다. 초음파 합법화를 위해 노력해온 필자 또한 이러한 변화가 매우 반갑고, 또 한편으로는 신기하기까지 한 것이 사실이다. 어느새 한의사의 침 시술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해부학과 결합이 되고 있다. 단지 우리에게 실시간 영상장비가 하나 주어졌을 뿐인데 말이다. 

이러한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변화를 바라보며 한편 안타까운 것은 정작 한방의료기기라고 불릴만한 것은 그다지 한의원에 보급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한방의료기기 사업이 지지부진하던 이유로 많은 이들은 ‘수가의 부재'를 이야기해왔다. 수가가 없어서 의료기기의 구매에 그만큼의 돈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있는 초음파의 이 같은 선풍적인 인기는 그간의 이러한 주장을 무색하게 한다.
 
단지 그동안 사용하지 못했던 양방의료기기라서 초음파의 인기가 이토록 높지는 않을 것이다. 초음파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의 진료 역량이 향상되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아직 초음파 구입 비용이 직접 수가로 되돌아오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초음파를 구매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출시되어온 설진기, 맥진기 등은 왜 초음파와 같은 인기를 끌지 못했을까? 심지어 맥진기의 경우 수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의사에게 외면 당해왔으며 최근에 3차원 맥영상검사의 수가가 신설되고 1만원이 넘는 수가가 책정된 이후에야 맥진기의 보급율이 증가하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즉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면 굳이 구매할 의지를 느끼지 못해온 것이다. 

여기에는 ‘맥진'이나 ‘설진'은 ‘나도 할 수 있다', 즉 ‘내가 안다.’ 라고 하는 생각이 깔려있다. 맥진기나 설진기를 개발하고 소개하는 과정에서 임상 한의사들에게 해당 기기를 소개할 때마다 한의사 동료들에게 들었던 질문은 ‘28맥이 나옵니까?’, ‘설진 데이터를 분석해서 어떤 변증인지 결과를 분석해주나요?’와 같은 것들이다. 다시 말해 ‘내가 아는 것 말고, 내가 모르는것을 해준다면 구매할 의사가 있지만 내가 봐도 담홍설인줄 아는데 그냥 색상만 분석해주는 설진기라면 구매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다. 

2023년 한의학연구원에서는 8명의 각 과별 한의사 전문의와 한의 진단학 전공자 2인 총 10인을 대상으로 2000장의 혀 사진을 제공하고 각 5회 대상 무작위로 반복하여 제공하면서 담백설,담홍설,홍설,홍강설 총 4가지중 하나를 고르도록 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 결과 각 한의사가 동일한 사진을 보고 동일한 응답을 하였던 ‘평가자 내 신뢰도' 결과는 최저 0.32에서 최대 0.62로 평균 0.47이었다. 이는 우연이 아닌 순수 실력으로 맞출 가능성을 통계적으로 계산한 값(Intraclass Correlation Coefficient)으로 Fleis(1986)의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moderate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Portney and Watkins (2009)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적어도 0.75 이상이 되어야 양호하다고 평가하며 실제 임상적 신뢰성을 고려할 때는 0.9는 넘어야 합리적인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를 고려할때 단순히 혀를 보고 4개중에 하나의 색상을 고르는 시험조차도 육안검사에 의한 주관적 판단은 정확한 기록으로 신뢰하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위테이블에 제공된 0.47은 반복 일치도가 47%라는 뜻이 아니라 우연히 반복해서 맞춘것이 아닌 확률에 비해 실제 반복해서 맞춘 확률을 계산한 값임)


디지털로 기록된 혀 사진은 수십 번, 수백 번 그 색상을 포토샵으로 추출해도 동일한 결과를 제공한다. 하지만 주관적으로 관찰된 혀 색상에 대한 기록은 동일한 사진에서도 반복성을 갖지 못한다. 믿기 어렵다면 스스로 테스트해도 좋다. 자신이 찍어둔 설진 사진을 색상별로 5~10장씩 다양하게. 고른 뒤 5부 정도를 출력해서 무작위로 섞어서 5세트의 설진 사진을 만들어놓고 봉투에 보관해둔 다음 5일에 걸쳐서 반복해서 테스트해보자. 필자가 수행했던 2000장에 대한 반복실험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본인의 설진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일관된 지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자문을 해보자 . ‘내 차트의 설진 기록은 믿을만한가?’,’나의 주관적 판단은 충분히 객관적인가?’

최근 AI를 개발하기 위한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우리가 당연시 여겨온 정의가 여러 분야에서 의심받고 재정의 되고 있다. 실제 엄밀한 잣대를 들이대며 디지털 데이터로 전화하려고 했더니 생각보다 그동안 측정해온 값들이 너무나 오차투성이었던 것이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니 너무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제 알았으니 바꿔나가야 한다. 알고도 바꾸지 않는다면 그 댓가는 우리가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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