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비평]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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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평]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
  • 승인 2005.01.2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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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통해 동양적 사고 자연스레 체득

불과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한자 배우기 열풍이 더욱 거세진 느낌입니다.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대학생, 아니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까지 모두들 한자 배우기에 여념이 없어 보일 만큼, 서점마다 한자 관련 책들이 아주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도 언급하였지만, 미국의 언어학자 사피어(Sapir)는 “사람들의 사고 과정이나 경험 양식은 언어에 의존하고 있으며, 언어가 다르면 그에 대응해서 사고와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논지가 타당하다면, 한자를 전공 언어 삼아 공부하는 우리들 입장에서는, 요즘의 한자 학습 열기를 무작정 쌍수 들어 환영해야 할 것입니다. 동양의 사상과 문화가 녹아 있는 한자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한의학에 대한 이해도 높아질 수 있어서, 속칭 ‘우군(友軍)’ 형성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중의 수많은 한자 교재들이 단순히 글자 풀이에 그치거나 흥미 위주로만 설명하고 있어서, 이러다 되려 ‘적군(敵軍)’만 늘어나는 게 아닌가 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살아있는 한자 교과서’는 이런 저의 쓸데없는 걱정을 단숨에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한양대 정민 교수님이 주축이 되어 네 분이 공동으로 펴낸 이 책은, 우리가 실생활에서 늘 사용하는 말에서 한자를 재발견하고 그 의미를 다시금 일깨워 줌으로써 한자를 부지불식간에 받아들이게끔 해주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말의 70% 가량을 차지하는 한자어를 ‘표의문자(表意文字)’라는 특성에 입각하여 쉽게 풀이하는 한편, 그 속에 깃든 선현들의 삶과 지혜를 고스란히 밝혀냄으로써 동양적 사고를 자연스레 체득하게끔 해주기 때문입니다.

책은 2권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생활과 한자’라는 부제의 1권은 우리네 일상에 한자어가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예를 제시하며, 언어·신체·마음·생로병사·가족 등과 관련된 한자어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습니다. 2권은 ‘문화와 한자’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기호와 상징을 필두로 동식물·의식주·제도와 예술 등과 연관된 한자어를 감칠맛 나게 다루고 있습니다. 다양하게 구성해놓은 덕택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다수의 컬러 도판이 제공되어 볼거리 또한 풍성하였는데, 특히 2권의 ‘옛 그림 읽기’, 곧 한자의 원리로 그림의 숨은 뜻을 파악하는 이른바 ‘독화법(讀畵法)’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신천지를 발견한 기분이었습니다.

갑자기 올해 칠순을 맞으신 고향의 부모님께 그림을 그려드리고 싶습니다. 책 속에 들어있는 김홍도의 ‘나비를 희롱하는 고양이’라는 제목의 그림처럼 나비와 고양이를 함께 배치한 뒤 패랭이꽃과 제비꽃이 한데 어우러진 그림 말이에요. 중국어 발음으로 접(蝶)은 질(질)에, 묘(猫)는 모(모)에 해당되어 노부부를 뜻하고, 패랭이꽃 석죽화(石竹花)는 축수(祝壽)를, 제비꽃 여의초(如意草)는 문자그대로 ‘뜻과 같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부모님께서는 모르실 지라도……. <값 각 권 1만5천원>

안 세 영 (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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