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5년 전 직원 4명이 3대 1로 나뉘어 갈등이 심화된 끝에 모두 퇴사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진료와 직접적으로 관계된 발침, 전침, 소독 등은 부원장이 맡아주고 물품 관리 및 정리와 접수, 수납, 전화받기, 청소, 탕전 등은 내가 직접 했던 “고난의 행군”이었다.
“고난의 행군”은 정말이지 힘든 기간이었지만 한의원 운영원칙과 세부적인 부분들을 진지하게 돌이켜보면서 손질하는 무척 중요한 전환점이 되기도 하였다.
선임직원 3명은 내 생각에 정말 착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든 힘들고 지칠 것 같은 상황에서도 투덜거림 한 번 없이 척척 일을 해 냈다. 그리고 언제나 예의바르고 상냥하고 성실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은 자신들끼리만 똘똘 뭉쳐 있었고 새 직원이 들어올 때마다 일종의 “태움”을 했다. 새 직원이 피자를 쏘았는데 열어보지도 않고 박스째 쓰레기통에 넣었다던지 하는 등의 이야기는 지금도 믿기 어려울 정도다.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직접 사유를 들은 것이 아니라 지금도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나로서는 성과급제도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주5일제로 인해 하루 2명이 근무하는 날도 있고 3명이 하는 날도 있었는데 늘 직원증강을 염원하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4명이 해야 되는 업무량이었지만 직원이 잘 뽑히지 않았다. 항상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가득했고, 인적자원이 여유있는 상태가 되기 바랐지만 여의치 않았다. 뉴스에서는 매일매일 구직난이라고 아우성이어도 소기업에서는 늘 언제나 항상 구인난이다. 아무리 조건을 좋게 해도 이력서 자체가 많이 들어오질 않고 면접까지 성사되는 경우는 더더욱 적다.
우리 한의원은 급여와 복지가 상당히 윤택한 편이기에 일단 입사를 하면 만족하고 잘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본급 자체가 높을 뿐 아니라 당시에는 환자숫자에 따른 인센티브제도 있었다. 업무강도라는 것은 단순히 환자숫자만 가지고 따질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직원들의 노고에 대해 보상하는 “공정한 기준”을 마련하고 싶었고, 매출이나 환자숫자 같이 객관적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적합했다.
성과급 부여의 제1원칙은 “공정”이었기 때문에 기준을 명확하게 공개했다. 1일 내원숫자 N명 초과시 그 날 근무자들에게 초과인원*A원을 나누어 지급했고, A원은 고정이었지만 기준선인 N은 그 날 근무자 숫자가 적으면 내려가고 많으면 올라갔다.
‘통상보다 할 일이 많아지면 공정한 기준 아래 성과급이 지급되므로 힘들어도 보상이 될 것이고, 통상업무보다 한가해도 넉넉한 기본급은 보장이 되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가 있을 것이다. 기준 또한 공개되어 있으므로 공정하고 배려하는 회사라는 만족감이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오로지 사장님 혼자만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그들은 업무로딩이 많다고 힘들다 하면서도 4명이 되면 인센티브 기준선이 올라가므로 추가로 받는 돈이 적어지기 때문에 신규직원이 들어오면 심기가 언짢았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다. 하지만 아마 본인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인식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기본급 자체가 높다는 것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들은 이미 성과급이 최대로 지급되는 달의 급여가 자신들 마음속의 “당연한 월급”이 되어 버렸다.
마음 저미게 아픈 분석이었지만 이를 바탕으로 급여체계와 업무분장상황을 대대적으로 손보았다. 성과급은 아예 삭제를 하고 기본급을 조금 더 올렸다. 그리고 간호조무사 자격증 소지자(이하 간조)만을 채용하던 방식에서 비자격자도 채용하기로 했다. 모두가 협업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간조만을 뽑았었는데, 그로 인해 구인풀이 더 협소했었다. 비자격자에게도 문을 여니 구인이 한결 수월해졌다. 자격증만 없다뿐이지 훨씬 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도 입사지원을 하는 기쁜 상황이 되었다.
접수실과 치료실을 양분하여 비간조와 간조를 따로 배치하여 각각의 특성에 맞게 좀 더 전문적인 업무능력을 발휘하도록 했다. 대신 MOT(Moment of Truth, 고객접점)을 위해 접수실과 치료실의 의사소통과 고객동선관리가 원활할 수 있도록 조금 더 상세한 업무지시와 피드백관리를 했다.
이러한 부분들은 직원들의 자긍심과 애사심에도 도움이 된 것 같다. 새 직원들에게 회사가 현재 왜 어려운 상황인지 설명을 했고, 공감대가 형성되었는지 이들은 회사에 각별한 애정을 쌓아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담당한 업무가 치료실 혹은 접수실 “집중”이라는 점으로 인해 자부심이 생기면서도, 한 분야에 몰입하면 된다는 느낌이라 마음의 부담이 덜해지는 듯 했다. 이런 부분들은 환자분들께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에도 당연히 영향을 주었고 추가적으로 합류하는 직원들이 잘 정착하는데도 도움이 되어 우리 한의원은 조금씩 더 성장하게 되었다.
“고난의 행군”은 참으로 힘든 시기였지만, 덕분에 한의원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로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이 지나가고는 하지만 “고난의 행군”을 생각하면 내가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한의원에 “고난의 행군”만큼 어려운 일이 생긴 적도 없다. 참 다행이다.
남지영 / 경희미르애한의원 대표원장, 대한여한의사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