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 1083> - 『醫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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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 1083> - 『醫解』
  • 승인 2023.12.0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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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mjmedi@mjmedi.com


상해와 중독에서 아이를 구할 解法
◇ 『의해』
◇ 『의해』

  아직 단풍이 채 시들기 전인데, 어느덧 겨울로 접어들어서인지 찬바람이 옷섶을 매섭게 파고드는 날씨다. 추위가 성큼 다가서니 한해의 끝자락이 저만치 보이고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냈는가 싶어 가슴 한쪽에 후회가 몰려온다. 그래서 허전한 마음을 달래고자 지난 여름 땡볕 아래서 만난 소책자 하나를 펼쳐본다.

  휴대에 간편한 수진본의 특성상 너무 오래 손에 머무른 탓인지, 표장이 많이 닳아있다. 하지만 훗날 다시 표지를 덧발라 보강했기에 비교적 온전한 편이다. 이제면에 ‘醫解’라 적은 서명과 함께 ‘前三’이란 권차가 적힌 것으로 보아 아마 작성할 때부터 주제별로 작게 분책하여 휴대용으로 간편하게 제책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前三이란 전편의 3권 째임을 표시한 것으로 보이는데, 邪祟와 옹저문이 들어있다. 전체목록은 알 수 없으나 표지에 적힌 수록문목에 옹저 이후로 제창, 몽, 성음, 語言, 진액, 吐法, 下法, 부인문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9문이 열거되어 있어 대략 작자가 집필 당시 예정했던 병증문별로 개략적인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전장은 가로 7cm, 세로 13cm 내외로 손아귀에 쥐기 쉬운 크기이다. 작은 필사본임에도 불구하고 선장이 아닌 절첩본으로 제책하여 지면을 오롯이 사용할 수 있었기에 아주 작은 글씨로 앞뒷면을 모두 빼꼭하게 적어 넣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초 의도대로 해당 병증문의 다양한 내용 가운데 절맥과 대표 처방만을 간략하게 취사선택해 초출하여 적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옹저문 첫 문장을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글귀로 시작하고 있다. “六府蘊熱, 騰出於肥肉之間, 其發暴盛, 腫而光軟, 侵展廣大者, 謂之癰. 五藏蘊熱, 攻焮于筋骨之內, 其發停蓄, 狀如㾦, 皮厚以堅, 淡白焦枯者, 謂之疽.” 옹과 저의 발병원인을 비롯해 발증 양상과 부위, 형색, 예후 등을 상호 비교하여 양자를 구별해 놓은 것이다.

 『동의보감』의 옹저문을 찾아 대조해 보니 해당 조문과 유사한 문귀가 있지만 다소간 문자출입이 있다. 아마도 원출전으로 보이는 『직지방』에서 직접 채록했거나 작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내용만을 임의로 선별하여 취구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감별진단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령만을 간략하게 채록해 두었고 투약의 대표적인 적응증을 제시한 다음, 곧장 주치방을 적어 재빨리 원하는 방제를 검색해 찾아볼 수 있도록 고려한 것이 가장 큰 특색이라 할 수 있다. 鬢疽에 귀와 목, 젖가슴과 옆구리가 아픈 경우, 시호청간탕을 써야하고 폐옹으로 중부혈 부위가 은은하게 아픈 경우에는 삼소음을 쓰는 것이 좋다고 적어 놓았다.

  많은 수의 외과처방이 등장하고 단방과 외과적 처치법도 기재되어 있다. 눈에 띄는 것으로는 연교패독산, 길경탕, 사심탕, 십육미유기음, 내소옥설탕, 대황목단탕, 백지승마탕, 선방활명음, 국로고, 청초창백탕, 반담환, 유분탁리산, 십선산, 인동주, 생기장육고, 백납고 등이 있다. 요즘에야 임상에서 써볼 일이 많지 않겠지만 국가고시를 대비해 밤새 암기했던 추억이 새삼 되살아날 것이다.

  전면에는 대략 사수, 옹저로부터 성음, 언어문까지 수록되어 있고 후면에는 같은 방식으로 ‘小兒諸傷解毒’이란 별도 제목을 달고 이에 해당하는 갖가지 병증처방을 채록해 두었다. 각 병증문목과 처방명, 또 주요 상병마다 붉은 색으로 朱點을 찍어놓아 이 작은 책자가 실제 현장에서 자주 이용되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두창, 마진 같은 열성전염병을 제외하곤 소아 생존에 가장 절실했던 병증치법은 무엇보다도, 옹저와 상해, 해독법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이 소책자는 어린애를 살리는 구급방인 셈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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