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비등했던 첩약건보 투표…수가개선‧상병명 확대는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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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 비등했던 첩약건보 투표…수가개선‧상병명 확대는 과제
  • 승인 2023.11.2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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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한의계 경영 악화 투표 영향…위축된 비급여 시장 활기 기대감 등

협회장 찬성 독려 문자 등 투표과정 불합리성 지적…진료특성 훼손 우려

 

[민족의학신문=박숙현 기자] 첩약건보 전회원 투표가 근소한 차이로 찬성으로 마감됐다. 이는 한의계 경영 악화와 비급여시장 위축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찬반 양측 의견이 치열하게 엇갈렸지만 양측 모두 향후 시범사업에서 수가와 상병명 확대 등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또한 투표 과정과 내용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첩약건보 2차 시범사업 진행 여부를 묻는 전회원 투표가 지난 22일부터 24일까지 진행됐다. 총 총 2만5026명의 투표권자 중 1만 7068명에 참여해 찬성이 8845표(51.82%), 반대 8223표(48.18%)의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라 향후 첩약건보는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첩약건보 결과에 대해서는 향후 한의계와 대중의 거리를 줄이고, 위축된 비급여시장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A 한의사는 “한의계 내부의 정치적인 논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한약 시장의 규모가 작아진 것은 이미 어느 정도 통계로 나와 있다. 임상 저년차 입장에선 경험의 부재가 크다. 아무리 비싸도 먹는 사람은 먹는다고 하기에는 그 시장이 좁은 만큼 대중과의 접점이 줄어든 것 역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통치방만 뿌리느라 하향평준화 될 것이라고 걱정하지만 환자가 낫지 않으면 가장 스트레스 받는 건 치료자 본인이다. 낫게 하겠다는 진심을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한의사들은 또 다시 방법을 찾을 것”이라며 “치료실력은 책만 봐서 늘지 않는다. 환자를 마주할 기회가 늘고 다양한 환자군을 경험해야 스스로의 부족함을 느끼고 그만큼 성장한다. 그런 점에서 일부 질환에 대한 첩약보험시범사업은 한의학에서 멀어진 대중들에게 교두보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첩약건보가 한의학만의 진료 특성을 훼손할 수 있으며, 한의계 비급여 시장의 위축은 첩약건보로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B 한의사는 “첩약건보 사업은 한의학의 진료 특성을 훼손할 수 있다. 현 협회장은 첩약 비급여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 비용의 문제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환자들이 복용하는 다양한 건강기능식품의 경우, 현대 임상 현장에서 처방되는 한약의 가격에 비해 저렴하지 않다.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국민들이 첩약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한약을 복용해야 할 타당한 이유를 한의계가 충분히 제공해 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첩약건보 사업으로 한약이 환자별 맞춤 처방의 의미를 잃고 대량의 원외탕전과 같은 산업화의 대상으로 잘못 활용될까 우려된다”는 목소리를 남겼다.

찬성과 반대의 차이가 극소수였던 이번 투표에 대해 찬성측과 반대측 투표자 모두 “찬성으로 결론이 났지만 반대의 목소리 역시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C 한의사는 “투표는 52대 48로 찬성이 반대를 이겼지만 620표차이의 근소한 차이였다”며 “찬성은 하되, 기존의 첩약건보안과 같은 식으로 할 것이라면 갈아엎어 버리자고 하는 여론도 비등함을 확인할 수 있는 선거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첩약건보는 기존안에 왜 48%의 회원들이 반대했는지를 잘 복기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본다. 나도 찬성했지만, 기존안을 가다듬어 더 나은 방향과 조건에서 시범사업을 하자는 의미였지 기존안대로 하자는 것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번 투표는 첩약건보와 관련해 바로 직전이었던 지난해 3월 14일의 첩약건보 현안 찬반투표에서는 반대의견이 69.97%였던 것에 비해 이번 투표는 찬성 의견이 부쩍 증가했다. 이에 대해서는 한의계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여론이 변한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

D 한의사는 “원래 첩약건보에 반대했던 주변 한의사들이 이번에 바뀌는 조항을 보고 찬성 쪽으로 바뀐 분들이 많아서 찬성으로 나올 것을 예상했다”며 “(시범사업을 시작한)2년 전과는 달리 한의계의 전반적인 매출 하락도 원인으로 보인다. 지금 동네 한의원은 환자도 줄고 매출도 줄어서 폐업위기에 있는 곳이 많다. 한의계에 긍정적인 시너지를 가져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한 이번 투표에서 홍주의 한의협 회장이 ‘찬성’표를 독려하는 등의 과정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C 한의사는 “투표 진행 과정이 너무나도 급박하게 추진됐다. 부산시한의사회의 지적처럼 공청회 등의 의견수렴절차는 부족했고, 추진경과와 사전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표가 발의되었다”며 “투표내용이 적절하다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브렉시트를 보라.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유럽과 분리된 후 갈라파고스처럼 고립된 채 말라가고 있다. 굳이 찬반을 가릴 사안도 아니었고, 시점도 적절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D 한의사 역시 “홍주의 협회장의 거취를 조건으로 건 투표는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바뀌는 조항에 대한 찬반, 첩건 자체에 대한 찬반 정도로 회원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나았을 것이라고 본다”며 “만약 회원들이 이번 첩약건보 개선안에 찬성하지 않는다면 어느 부분이 마음에 안 드는지 심도 있게 물어봐야 한다. 한방병원의 참여, 수가, 상병명 확대 등을 여론조사를 통해 의견을 모아서 복지부에 전달해서 협상 카드로 삼아야한다”고 지적했다.

B 한의사는 “투표 진행 과정 중 홍주의 협회장이 회원들에게 발송한 문자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홍주의 협회장은 투표 이전 첩약건보개선안에 ‘찬성’을 독려하는 장문의 문자를 회원들에게 발송했다. 이는 회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하는 자세이기보다는 본인의 목표대로 투표 결과를 얻으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실제 투표결과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반면 A 한의사는 “1차와 달리 개선된 사안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 것이 좋았다. 덕분에 투표가 어떤 것을 위한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며 “협회장이 투표독려를 했다고 지적는 분들도 간혹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 때문에 내 선택에 크게 영향을 받진 않았다. 오히려 이 사업을 처음에는 숙고하던 협회장이 끝맺음 해 보이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같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렇듯, 여러 의견이 치열하게 엇갈렸지만 찬성측과 반대측 모두 향후 첩약건보 시범사업에 있어 상병명 확대와 수가개선 등이 시급하다는 점에 동의했다.

D 한의사는 “최저시급이 올랐기 때문에 월급을 210만 원 이상 줘야 탕전실 직원을 구할 수 있다. 하루에 한약을 한 건 하면 건당 탕전비는 10만 원 정도다. 만약 두 건을 하면 5만 원 정도 인건비로 들어간다. 주변에서 첩약건보를 한 달에 20건 이상 하는 곳을 못 봤다. 이런 저수가로는 원내 탕전이 힘들다”며 “상병명도 지난번에는 동네 한의원에서 통 볼 수 없는 월경통을 상병명으로 하더니 이번에는 디스크라는 상병명이 들어갔지만 조건이 있다. 근골격계 질환이나 관절통으로 상병명이 확대되어야한다”고 주장했다.

A 한의사는 “앞으로 난임과 같은 여성질환, 근감소증 등 고령자 대상 질환, 그리고 당뇨 등 만성질환에 대한 상병 등 확대되면 좋겠다. 물론 수가 문제는 앞으로도 차차 개선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혈액검사 결과 등을 반영한 수가개선, 첩약건보 대중 홍보 및 매뉴얼 배포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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