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상태바
[영화읽기] 태어나고자 하는 자는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 승인 2023.11.24 07: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고 역작을 꼽아보라고 말하면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지브리스튜디오는 그만큼의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누군가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언급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지브리 하면 떠오르는 ‘이웃집 토토로’가 생각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색채가 뚜렷하게 담긴 작품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언급하는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노장의 은퇴작인 만큼 작품 정서와 캐릭터디자인, 음악, 모든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 스럽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목소리: 산토키 소마, 스다 마사키, 시바사키 코우 등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목소리: 산토키 소마, 스다 마사키, 시바사키 코우 등

이 작품은 프로모션 때부터 정보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었다. 프로모션 초반 정보라고는 왜가리 그림의 포스터 뿐이었는데, 성우 캐스팅은 당대 최고의 배우들로 구성되어 있으니, 미야자키 하야오라 가능한 배짱마케팅이다 싶었다. 시놉시스조차 제공하지 않던 프로모션처럼 이 영화 자체는 그리 친절하지 못하다. 사실 시놉시스를 이야기해도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오죽하면 영화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필자의 뒷자리에서는 웅성웅성하며 당황하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이게 무슨 내용이야 대체? 이게 맞아? 아니......재밌긴 한데......”라는 여성분의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사실 필자의 감상도 이 여성분의 감상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야기는 11살 소년 마히토가 화재로 엄마를 잃으면서 시작한다. 소년은 아직 엄마를 잃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아빠는 나츠코 새엄마를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동생도 태어날 예정이다. 이런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마히토는 정체불명의 왜가리를 만나 이세계로 빠져 들어간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더해져 혼란이 가중된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엄마를 잃고 새로운 가정과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해야 하는 소년 개인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전쟁으로 일상을 잃어버린 암울한 사회의 이야기다.

왜가리를 따라 넘어 간 이세계에서 마히토는 나츠코 새엄마를 찾는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마음의 문을 열고 성장한다. 이 대목에서 제법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떠오른다. 이세계에 등장하는 탑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생각나기도 하는 부분이다. 일본에서도 통하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에게 어린아이들에게 “너는 다리 밑에서 왜가리가 물고 왔다”고 하던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왜가리의 도움을 받아 아이는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던 이세계는 무너진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는 문구처럼, 하나의 파괴가 또 다른 생명을 낳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죽음 역시 마냥 슬프기만 한 일은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상처와 슬픔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슬픔을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줄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즐거워할 만한 이스터에그가 많지만 분명 기묘한 이야기다. 영화마니아나 평론가라면 모를까 일반 대중으로서는 이해가 쉽지 않다. 그러나 노장의 자전적 이야기임을 상기하며 이해하기보다는 받아들이는 마음으로 바라본다면 이 작품만의 독특한 정서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박숙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