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이별 그 후, 내 마음 어떠한가 ‘영화 데몰리션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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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읽기] 이별 그 후, 내 마음 어떠한가 ‘영화 데몰리션 리뷰’
  • 승인 2023.10.13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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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범

김재범

mjmedi@mjmedi.com


영화읽기┃데몰리션
감독: 장 마크 발레출연: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등
감독: 장 마크 발레
출연: 제이크 질렌할, 나오미 왓츠 등

슬프게도 그녀가 죽었는데 괴롭거나 속상하지 않아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은 성공한 투자 분석가 데이비스는 아내와의 사별 직후에도 평소처럼 별일 없는 사람처럼 출근한다. 직장 사람들은 그런 데이비스를 보면서 수군거리고 데이비스는 내가 왜 그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갑자기 슬픔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회사는 장인어른이 대표로 있는 회사이고, 장인어른 역시도 그런 사위가 걱정스럽다. 뭔가를 고치려면 전부 분해한 다음 중요한 게 뭔지 알아야 한다는 장인의 조언에 꽂혀서 어느 날부터 데이비스는 집에 있는 가전부터 하나하나 모조리 분해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순전히 제이크 질렌할의 작품을 하나 더 늘리기 위한 것과 평점이 높아서였는데 영화의 전반적인 서사와 음악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 가 보도록 만들었다. 연인과의 이별은 늘 각기 다르게 남겨졌다. 후련한 이별도 있었고, 너무 오랜 시간 슬픔 속에 잠기는 이별도 있었고, 실감이 나지 않는 이별도 있었다. 주인공 데이비스는 아내와의 사별이후 아내와의 결혼당시 감정들을 다시 되새겨본다. 과연 우린 사랑이었을까? 난 널 좋아하고 있었을까? 난 너의 어떤 부분들을 좋아하고 있었을까? 네가 날 좋아하니까?

데이비스는 물건들을 분해하면서, 그리고 장인어른의 위선을 폭로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둘의 사랑의 의미는 어떠했는가 생각한다.

연애할 때 행복함을 느낄 때는 언제일까? 난 내가 충분히 상대방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였던 것 같다. 둘 사이에서 이런 저런 크고 작은 일들을 거치며 정이 깃들고 둘 사이가 따뜻한 애정의 기류로 감싸지는 순간 말이다.

이별을 어떤 식의 이별이든 여운을 남긴다. 가슴이 찢어지는 이별도, 유야무야 지나가듯 맞이한 이별도 그간의 만남이 하루아침에 마음에서 정리되는 건 어렵다. 스위치로 전류를 흘려보내고 흘려보내 않는 차원의 일이 아니니까. 주인공 데이비스는 아마 물건들을 분해하면서 물건들을 고치진 않지만 그런 행위를 통해 조금씩 자기가 감쳐두었던 자신의 가장 솔직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바쁜 척 그만하고 나를 좀 고쳐달라는 아내의 쪽지를 보면서 기다렸을 아내를 생각하고, 아내와 함께 했던 집마저 부수면서 아내를 기억하면서 아내를 마음에서 그제야 놓아주려고 하는 주인공을 보며 이별 그 후의 마음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갈수록 내 감정에 솔직하게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변에서 줄어든다. 나만이 아는 내 감정, 나만이 기억하는 어느 날의 어떤 순간들이 쌓이고 내 본연의 모습을 보일 사람이 없어서 내 본연의 모습이 원래 무엇이었나 헷갈리게 되기도 한다. 혼자 있으면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주로 무엇을 하는지,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스스로를 관찰하는 시간이 늘어간다. 그런 나의 모습과 주인공 데이비스의 모습을 교차해가면서 이 영화를 재밌게 봤다.

이제 공기가 더 이상 여름 같지 않고 일몰전의 땅으로 향하는 해처럼 절기의 급변을 피부로 체감하는 이 계절에 언젠가 혼자서 집에서 영화를 볼 일이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김재범 /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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