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이현효의 도서비평] ‘모네’의 그림에서 비주류의 신념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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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이현효의 도서비평] ‘모네’의 그림에서 비주류의 신념을 보다
  • 승인 2023.09.15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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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효

이현효

mjmedi@mjmedi.com


도서비평┃방구석 미술관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인간은 3단계로 정신이 진화한다고 한다. 1단계는 고통이라는 짐을 지고 사막을 걷는 끈기를 지닌 낙타, 2단계는 고통의 인내를 넘어 세상의 문제와 맞서 싸우는 사자, 3단계는 1~2단계의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규범을 만드는 창조성을 가진 어린아이이다. 클림트가 그랬다. 과거를 답습하고 변화를 거부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주류미술계와 줄기차게 싸웠다. 주류미술계와 분리되겠다며 분리주의 전시관을 세우고 건물의 정면에 “시대에는 예술을, 예술에는 자유를”이라는 메시지를 새겼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국보급 대우를 받는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식사>는 왜 발칙한 그림이었는가? 라이몬디의 <파리스의 심판>을 오마주했으나 그림속 인물이 신화, 성서, 역사속 인물이 아니라 마네의 동생과 매제, 누드여인은 빅토린 뫼랑이라는 모델을 그린 것이다. 당시 방탕한 남성들의 일상을 비춘 것이다. <올랭피아>는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오마주했으면서도 매춘부를 그렸고, 그녀뒤 흑인 하녀가 들고온 꽃다발은 스폰서가 선물한 것임을 암시했다. 매춘의 현장을 포착한 것이다. 거기다 일본 우키요에에서 차용한 완전평면. 원근법을 폐기한 파격이었다.

조원재 지음, 블랙피쉬 펴냄

카메라는 광학과 화학의 발전산물이다. 광학의 발전은 빛을 모아주는 렌즈를 낳았고, 화학의 발전은 그 빛을 담는 감광판을 낳았다. 카메라가 빛을 모아 피사체를 정확하게 찍어내는 것이라는데 주목한 화가가 있었다. 모네였다. 사물이 지닌 고유의 색은 없다. 빛에 의해 변한다. 사물이 지닌 고유의 형도 없다. 빛에 의해 변한다. 빛을 어디에서 어떻게 보고 그릴 수 있는지만을 평생 고민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날씨가 변하고 빛의 변화로 이어짐을 발견한 모네는 ‘연작’을 그렸다. 인상주의의 탄생이었다.

세잔은 모네의 그림에서 부족한 점을 발견한다. 빛에 집중해 그리다 보니 사물이 파편화되었다. 자연의 겉모습만 보다 보니, 자연의 속살을 놓친다. 자연의 본질은 도형이다. 세잔은 모든 대상이 지닌 색상과 형태의 엑기스만을 추출하려 애썼다. 모든 감각을 빛에 집중시킨 나머지 화면자체가 불안정해지는 점을 거장들의 회화에서 계승시켜 조화와 균형을 찾았다. 구성적 회화의 탄생이었다. 때문에 세잔의 그림은 마치 건축물과 같은 견고함이 느껴진다. 세잔의 다시점 회화를 응용해 발전시킨 사람은 피카소였다. 수십 개의 시점으로 본 인물의 파편일부를 가져와 캔버스를 구성한 것. 20세기 미술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지난 몇 개월 대법원의 초음파 판결이후 지부는 매우 바빴다. 초음파 강의를 유치해서 회원들과 공유해야 했고, 어떤 회사의 초음파가 ‘가성고’가 좋은지 알아보느라 여러 회사의 사람들을 만났다.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대가들은 불편한 신체의 악조건을 극복하면서, 혹은 시대의 관념에 저항하면서 혹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탄압을 이겨내면서 창의적인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내었다. 1868년 친구 바지유에게 보낸 편지에서 모네는 ‘여전히 나는 빈털터리야. 좌절과 치욕, 기대 그리고 더 큰 좌절’이라 적었다. 이 땅에서 한의사로 산다는 것이 가끔 ‘게토’에서 산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제도의 변방에 서서, 주류의 한국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채. 거칠고 거친 항해 끝에 다다른 미술의 신대륙. 모네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빛이 선사하는 황홀함과 함께 그의 올곧은 신념이 전해져 온다. 모네의 그림을 진료실 한 켠에 걸어놓고 다시 열심히 살아보아야겠다.

 

이현효 / 활천경희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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