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재의 임상8체질]‘醫者理也’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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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의 임상8체질]‘醫者理也’의 시대
  • 승인 2023.09.0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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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재

이강재

mjmedi@mjmedi.com


8체질의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_81

발굴

보제연설普濟演說은 필사본으로 보제연설마진신방麻疹神方을 함께 묶어서 제본한 책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 근무했던 안상우 박사가, 2001년에 청계천 고서점을 통해서 발굴했다. 안 박사는 당시에 새로 발견된 자료들을 모아서 한국의학자료집성Ⅱ』1)를 발간했다. 이 책을 통해서 보제연설의 전체 내용이 공개되었다.

안 박사는 보제연설의 필사자를, 동무 공이 한성 묘동에 있던 이원긍의 집에서 수세보원을 집필2)하던 때에 동무 공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이라고 추정했다.3)

 

번역

보제연설, 상지대학교 한의과대학의 사상체질의학과 교수였던 김달래가 번역했고4) 2002년에 출간했다. 번역본의 제목은 동의수세보원보편5)이다. 그는 운암(芸菴) 한석지의 명선록을 번역해서 출간6)한 적이 있다. 명선록은 동무 공이 정평(定平)을 지나던 중 여사(旅舍)에서 발견했고, 동무 공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7) 보제연설에 정평과 관련한 구절이 나온다. 김 교수는 명선록을 번역할 때 정평지역의 특징과 함흥의 관계를 찾느라 많은 시간을 들이며 고생을 해서, 이 필사본이 분명히 사상의학과 관련되었을 거라고 느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안상우 박사와 다른 의견이었다. 보제연설내가 정평 땅에서(余於定平地)”8)라는 구절에서 나()를 필사자로 추측했는데, ‘정평 지방에 살던 한의라고 본 것이다.9)

 

연구

2001년 이후에 사상의학계에서는, 보제연설에 들어 있는 사상인의 용모관격(關格) 치료약물을 연구과제로 포함한 논문들이 있었다.10) 또한 2016년에 한국철학회의 허훈은 사상의학의 철학적 배경으로서의 오행론11)에서 보제연설을 언급했다.

 

보제연설서普濟演說序

보제연설, 普濟演說序, 普濟演說, 人生日用說, 天地運氣, 臟腑總圖, 觀形察色圖及其說, 王叔和觀病生死候歌, 四象六經歌, 四象人相貌及藥種, 四象應用藥方, 經驗方, 附錄의 순서로 정리되고 편집되어 있다. 편집자나 필사자의 이름은 나타나 있지 않고 서두에 보제연설서(普濟演說序)가 있다. 이 서()가 필사자의 솜씨라면 이 필사본에 남은 편집자의 정보는 필체와 서(), 그리고 제목이다.

()는 전체적으로 '사상(四象)'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리고 아주 간결하게 꼭 필요한 것을 표현했다. 글은 차라리 길게 쓰는 게 쉽지, 쓰고자 하는 내용을 모두 담아 함축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이 서문은 평범하지 않다. ‘무릇 의는 이치이다(夫醫者理也)’라고 연 도입이 아주 강렬하다.

 

나는 202010월경부터 동무 공의 친필에 대하여 관심이 많았다.12)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친필에 관한 내용은 아닌데, 보제연설에 사상인의 비율을 언급한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래의 내용이다.

若以一郡之萬人論之, 少陽人 三千人, 太陰人 五千人, 少陰人 二千人, 太陽人 不過四五人也.”

이것은 이전에 공개된 자료와 다른 부분이 있다. 동무 공은 사상초본권수세보원에서 사상인의 비율을 말할 때는 인구 1만 명의 기준이 되는 범위를 현()으로 삼았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군()이다. 나는 왜 군()인가를 궁리했다.13) 동무 공은 최문환의 난을 평정한 공로로 고원군수로 임명되어 18974월부터 18984월까지 재임했다. 위 기록은 동무 공의 고원군수 경험이 반영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니까 동무 공의 말년에 가까운 기록인 것이다. 서문 말미에 표기된 경자윤추(庚子閏秋)14)와도 어울린다.

 

보물

나는 필사본 보제연설이 필사자의 원고(原稿)이기에, 필사의 저본(底本)이 된 원본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보제연설이 그 자체로 유일본이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내용 중에 세 번 등장하는 나()15)는 당연히 동일한 사람이고 물론 보제연설서를 직접 쓴 당사자이다. 보제연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한 사람의 작업이고 한 사람의 작품인 것이다.

중요한 단서는 동의수세보원보편이라는 이름이다. 첫 머리에는 보제연설서라고 썼는데, 마지막에는 동의수세보원보편완(東醫壽世保元補編完)’이라고 넣었다. ‘동의수세보원보편완은 뒤에 합해진 마진신방과 구분하기 위한 표식일 것이다. 책 중간에 동의수세보원보편완이란 표식이 들어간 것은 보제연설의 처음과 끝이 계획된 필사였다는 증거이다.

필사자는 동의수세보원보편이라고 적은 후에 밑에 ()’이라고 종결하였다. 이미 성립되어 있던 원본을 단순하게 필사하는 경우라면 ()이라고 쓰는 게 보통이다. 완은 완성하다는 의미로 완료, 완공과 같이 일이 완결되어 끝난 것을 뜻한다. 종은 이미 있던 것의 끝이고, 완은 전에 없었던 것이 새로 완성되었다는 의미인 것이다. 베껴서 쓰고 있는 단순한 필사자가 완이라고 쓸 수는 없다. 그가 이 동의수세보원보편을 완성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제연설의 기획자이고 편집자이며 필사자는 동의수세보원보편으로서 보제연설을 완성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는 과연 누구인가. 길게 생각할 거리도 아니다. 당신이 지금 떠올린 그가 맞다. 그래서 보제연설은 보물이다.

 

의자의야醫者意也

의자의야는 전통한의학의 역사에서 많은 의가들이 입에 달고 있던 말이다. 이 문구의 출전은 후한서곽옥전으로, 침석(鍼石)을 쓰는 의사의 주의력에 관하여 언급한 것16)이었다. 그러다가 후대에 이것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출전의 원뜻과는 별 관계없이 다양한 함의를 가지고 이용하였다. 특히 송대(宋代) 이후에 의가들이 적극적으로 의자의야를 외쳤다.

의학 이론은 심오하고, 진맥과 용약은 난해하며, 의학의 깨달음이란 말로 전하기 어려우니 의가는 스스로 늘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의 낡은 틀에 얽매이지 말고 자신의 지혜를 발휘하라는 독려이기도 하고, 치료를 하는 사람마다 사용하는 방법과 방식에 융통성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확장되기도 하였다. 일단 의자는 의야라하고 말을 던지면 그 말을 던진 사람의 책임은 회피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였다. ‘의자는 의야라라고 한 순간 그 말을 전해들은 사람의 과제가 된 셈이니 말이다.17)

 

의자리야醫者理也

의자리야의학이란 이치이다라는 뜻이다. 이 때 리()는 원리와 이론의 리()이며, 주기론과 주리론의 리()이고, 이공계와 인문계의 리()이기도 하고, 동무 공이 수세보원의원론에서 말한 장부성리(臟腑性理)18)의 바로 그 리()이다.

보제연설서를 직접 쓴 사람이 첫 머리에 의자리야라고 외친 배경에는 의자의야가 있다. 이것은 마치 의자의야의 시대에서 의자리야의 시대로 전환되었다.’는 선언과도 같다. 그럼 그 의학의 이치란 무엇인가. 바로 사상(四象)이다. 의사의 생각(醫者意也) 이전의 이치 말이다.

이강재 / 임상8체질연구회

 
 
각주

1) 안상우, 『한국의학자료집성Ⅱ』 한국한의학연구원 2001. 7. 

2) 1893년 7월 13일부터 1894년 4월 13일까지 〈수세보원〉 초고를 집필했다. 갑오본이다. 

3) 100년 만에 꽃피운 이제마의 사상의학, 『주간동아』 〈312호〉 2001. 11. 30. 

4) 당시에 한국한의학연구원의 고병희 원장은 사상의학 전공이다. 그리고 안상우 박사와 전주고 동문이다. 이런 인연을 통해서 김달래 교수는 안상우 박사에게서 원본을 빌릴 수 있었다고 한다. 

5)김달래, 『東醫壽世保元補編』 대성의학사 2002. 5. 30.
   〈보제연설〉은 ‘普濟演說序’로 시작해서 ‘東醫壽世保元補編完’으로 종결된다. 김달래의 번역본 제목은 〈수세보원〉과의 연관성을 중요하게 본 것이다.  

6) 김달래, 『(사상의학의 뿌리)명선록 상.중.하』 정담 1998.

7) 한두정은 1941년에 발간한 『상교현토 동의수세보원』에서, 동무 공을 소개하면서 운암연원(芸菴淵源)이라고 썼다. 

8) “余於定平地 曾見少陽人外感 誤服小柴胡湯 不一則死也”

9) 생각은 늘 변한다. 당시로부터 20년이 더 넘었으므로 〈보제연설〉의 필사자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와 관련한 자료를 보지는 못했다. 

10) 이의주, 「사상인의 용모에 관한 문헌적 연구」 『사상체질의학회지』 2005.
    박은아, 「사상체질별 안면부 전체적 형태의 특징에 관한 연구」 『사상체질의학회지』 2008.
    주종천, 「사상체질별 關格 치료 약물인 巴豆, 甘遂, 瓜蒂의 문헌 고찰」 『사상체질의학회지』 2008.

11) 허훈, 「사상의학의 철학적 배경으로서의 오행론」 『철학』 제128집 2016. 8.

12) 동무 공의 친필, 『민족의학신문』 〈1257호〉 2020. 10. 29.

13) 이강재, 『수세보원 들춰보기』 행림서원 2021. 7. 27. p.63~66

14) 안상우 박사는 윤가을이 있는 경자년은 동무 공이 별세한 1900년이어야 어울린다고 보았다. 

15) 〈보제연설〉에서 보제연설서에 이어서 나오는 제일 첫 편인 ‘보제연설’에 나 余가 세 번 나온다. 1) 余於定平地, 2) 余 公道世間有壽命, 3) 以余所見이다. 

16) 곽옥(郭玉)은 ‘귀인(貴人)을 치료함에 있어서 때로는 낫지 않는 원인은 심리적인 공포로 먼저 보신(保身)을 생각하니 일심(一心)으로 병을 치료할 수 없다.’고 보았다.

17) ‘醫者意也’에 관한 내용은 아래 논문에서 참고하여 기술한 것이다. 
    김기욱.박현국, 「“醫者意也”에 관한 小考」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2007. 11.

18 “余生於醫藥經驗五六千載後 因前人之述偶得四象人臟腑性理 著得一書名曰壽世保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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