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콩쥐와 밑빠진 독과 한방 의료행위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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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콩쥐와 밑빠진 독과 한방 의료행위의 상관관계
  • 승인 2023.09.0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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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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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규법무법인 반우​​​​​​​파트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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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에 물을 채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독 자체를 새 것으로 바꾸는 것이겠지만, 콩쥐가 밑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던 이유가 그 방법을 몰라서는 아닐 것이다. 무거운 독을 옮길 힘도 없었을 테고, 새 독을 살 돈이 없었을 수도 있고, 독을 바꿔서 채웠다가는 새어머니의 화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돌려막기 식으로 돌을 괴어보다가 두꺼비가 나타나기를 기대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제도와 법령을 다루는 입장에서 보면, 명확해 보이는 근원적 해결책을 두고 왜 매번 엄한 곳에 힘을 쓰고 있나 싶은 사안들이 있다. 보건의료 분야만 해도 치솟는 건강보험 재정 지출 문제는 행위별 수가제를 바꾸지 않는 한 해결이 요원해 보이고, 리베이트는 지금처럼 제네릭 위주의 의약품 공급 체계에 실거래가 상환제를 두고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문제는 결코 무 자르듯 해결하기가 어렵다. 제도는 한 번 시행되면 그에 맞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나타나고, 신뢰와 관행도 쌓인다. 또한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력과 재정이 필요하다. 이상적인 대안이란 결국 이상에만 있을 뿐, 현실에서는 조금씩 살아가며 제도에 살을 붙여 나가는 방법으로 발전해 나갈 수 밖에 없다.

한의사의 면허 범위가 어디까지냐의 문제 역시 마찬가지라고 보인다.

국가는 의료법을 통해 의사와 한의사의 업무를 각각 의료행위와 한방 의료행위로 구분해 두었지만, 무엇이 의료행위가 무엇이 한방 의료행위인지는 전혀 정해놓지 않았다. 가장 좋은 해결책은 국회든 보건복지부든 어떤 행위가 한의사가 자신의 면허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행위인지 할 수 없는 행위인지를 명확히 정하는 것이겠지만, 기술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한방 의료행위를 일일이 규정에 담아두기도, 뻔히 보이는 의료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한방 의료행위의 영역을 법령으로 보장해주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결국 보건 당국도 실제 사례를 통해 점차 살을 붙여 나가는 방법 밖에 취하기가 어려운데, 문제는 살을 붙여 나가는 과정이 법원의 재판, 그것도 형사(처벌) 또는 행정(자격정지처분) 재판이라는 점이다.

구조적으로 모험심이 강한 프론티어 한의사 1명이 그동안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의료행위를 한방원리에 기초해 실시해 보다가,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로 기소되거나 보건복지부로부터 면허정지 처분을 받고, 그에 대해 형사처벌을 받거나 자신의 면허가 정지될 리스크를 부담해 가며 법원에서 소송을 하여 이기면 그 의료행위는 모든 한의사가 적법하게 할 수 있는 한방 의료행위가 된다. 주사로부터 약침이 독립하였을 때도, 초음파도, 뇌파계도 그래 왔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개인에게, 그것도 개인이 형사처벌과 자신의 생업을 걸어가며 하도록 맡겨둔 것이다. 누가 봐도 부당하지만, 모순과 정의가 얽히고 섥혀 있다가 또 그대로 굳어서 관행이 되곤 하는 현실이 비단 한의계에만 있겠나 싶은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현실을 사는 한의사라면, 지금까지 나온 판결들을 통해 어느 것이 해도 되는 한방 의료행위이고 어느 것이 하면 안되는 한방 의료행위인지를 숙지해 둘 필요도 있을 것 같다.

한의사는 일반적인 주사를 놓을 수 없다(대법원 1987. 12. 8. 선고 87도2108).

한의학의 침구요법과 약물요법을 접목하여 적은 양의 약물을 경혈 등에 주입하여 치료효과를 극대화시키는 약침술, 즉 침구요법을 전제로 약물요법을 가미한 일반적인 약침은 허용되지만(대법원 2019. 6. 27. 선고 2016두34585)

주사든 약침이든 히알루론산을 피부로 주입할 수는 없고(대법원 2014. 1. 16., 선고, 2011도16649),

혈맥약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더라도 약침을 통해 정맥에 의약품 성분을 직접 투여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대법원 2023. 4. 13.선고 2022도15478,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1. 10. 선고 2020노4003).

그리고 피부에 직접 조사하는 IPL 레이저 역시 사용이 어렵다(대법원 2014. 2. 13. 선고 2010도10352).

그러나 초음파기기를 사용한 진단은 합법적인 한방 의료행위에 포함되며(대법원 2022. 12. 22. 선고 2016도21314),

뇌파계를 사용하여 환자를 진단하는 경우도 허용된다(2023. 8. 18.선고 2016두51405).

판례 사안들을 살펴보면 어느 행위가 한방 의료행위로서 허용되고 어느 행위가 불허되는지 확실한 기준을 찾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일응 파악해 볼 수 있는 기준은 침습의 수준과 의료기기 사용의 목적이 되겠다.

오랜 기간의 임상례로서 그 안전성과 유효성을 인정받은 침술의 경우, 기존의 침술 허용범위인 근피까지는 약물을 전달하는 행위(약침술)가 허용되지만, 근피를 넘어 혈관이나 장기에 이르는 침술은 그것이 비교적 한방 원리에 기초하고 근거를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의료기기는 직접 처치를 하는 경우는 허용되기 어렵지만, 진단을 보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의료기기는 허용의 폭이 비교적 크다.

대법원은 지난 초음파기기 사건에서, "한의사가 의료공학 및 그 근간이 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개발․제작된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사의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관련 법령에 한의사의 해당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는지, 해당 진단용 의료기기의 특성과 그 사용에 필요한 기본적․전문적 지식과 기술 수준에 비추어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게 되면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지, 전체 의료행위의 경위․목적․태양에 비추어 한의사가 그 진단용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것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에 입각하여 이를 적용 내지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앞서 본 사안들과 위 판례 법리를 기초로 한다면, 한방 의료행위라는 어두운 동굴에서 등잔불 정도는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한방 의료행위에 도전하는 한의사라면, 그 행위의 침습 정도가 어디까지인지, 행위의 목적이 진단에 있는지 처치 그 자체에 있는지, 그 행위로 인하여 보건위생상의 위해가 발생할 여지가 있는지, 근거되는 한방 원리가 충분한지 등을 충분히 고민하고 새로운 의료행위에 나아갈 수 있겠다. 물론, 고민이 된다면 좋은 변호사를 찾으라는 말을 덧붙인다. 의료인이 환자의 건강에 관한 등불이 될 수 있듯, 변호사는 의뢰인의 미래에 대한 등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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