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다양한 인간, 그리고 다름과의 화해
상태바
[한의사 박히준의 도서비평] 다양한 인간, 그리고 다름과의 화해
  • 승인 2023.08.25 05: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히준

박히준

mjmedi@mjmedi.com


도서비평┃사이코패스 뇌과학자

자신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네 자신을 알라.’라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소크라테스의 말이 아직도 중요한 철학적 화두가 되고 있는 것처럼,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이야 두말할 것도 없이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더퀘스트 펴냄
제임스 팰런 지음, 김미선 옮김, 더퀘스트 펴냄

공동생활을 하며 진화해 온 인간으로서, 나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어찌보면 생존과도 직접 연관이 되어 있는 일일 것입니다. 아마도 최근,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MBTI 성격유형검사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관심과 인기는 이러한 맥락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어느 대학생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에 들릴 기회가 있었는데요, 다른 무엇보다 우선해서 딱 이름과 MBTI 유형을 먼저 소개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다른 기회에 만나는 학생들과의 대화자리에서도 자주 MBTI가 중요한 대화소재가 되곤하는데요, 자신과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고 소통의 다리를 놓는 좋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혹시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범위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만약 주변에 가까운 사람이 사이코패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지금 소개하는 책, ‘사이코패스 뇌과학자’는 뇌신경과학자인 저자, 제임스 팰런이 연구주제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자신이 사이코패스와 생물학적 특성을 같이한다는 것을 알게된 뒤, 과학적인 성찰을 통해서 자기자신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담은 책입니다.

저자는 알츠하이머병을 연구하기 위해 환자 뿐 아니라 대조군으로 정상인 뇌영상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도 참여 시켜 뇌영상 사진을 확보하였습니다. 이 연구 바로 직전에는 사이코패스 살인자들의 뇌영상 사진 분석을 의뢰받아, 그들의 뇌영상 사진에서 사이코패스 살인자들 뇌의 공통 패턴을 찾아내는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연구결과,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에서 복내측전전두엽피질(ventromedial prefrontal cortex)을 거쳐 전측대상회(anterior cingulate cortex, 앞띠피질)로 연결되고 대상피질(cingulate cortex, 띠피질)을 따라 뇌의 뒤쪽에 이른 다음 측두엽(temporal lobe, 관자엽)과 편도체(amygdaloid body)로 연결되는 영역들에서 특이적인 뇌활성의 저하가 관찰되었고, 이는 전반적인 감정조절 뇌영역의 활성과 기능이 매우 낮아져 있고,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져 있어 공감능력이 매우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논문으로 제출하였습니다.

다시 알츠하이머병 연구로 돌아와 환자/건강인 이름을 눈가림 처리하고, 뇌영상을 분석하고 있었는데, 아주 우연히 아주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뇌영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뇌영상의 주인공은....놀랍게도.... 본인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저자도 인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계보학을 연구하는 친척이 쓴 자신 가족의 역사(일종의 족보)와 관련된 책을 읽어보게 되었는데요, 자신의 조상 중에 가족을 살인한 조상이 여러 명이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먼 조상으로는 유대인 수백 명을 처형한 에드워드 1세 등의 폭군도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뇌기능영상이 사이코패스와 유사한데다 가족력까지 있으니, 저자는 이번에는 유전자를 살펴보기로 결심합니다. 검사 결과는....저자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전사(warrior)의 유전자로 대표되는 고위험 변이 유전자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저자는 공감능력이 낮은 사이코패스 유형의 뇌패턴과 공격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는데, 왜 그는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되지 않았을까 질문을 하게 됩니다.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자신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이번에는 사이코범죄자의 가정환경을 조사해 보게 됩니다. 예상하시겠지만, 그들 중 대다수는 어린 시절 아동학대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사이코패스가 아닌 범죄자들의 경우도 환경의 문제가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기는 합니다.)

저자는 사이코패스 범죄자들과 자신의 유일한 차이는 가정환경이었던 것을 인지하고 자신의 성장 과정을 되돌아봅니다. 아마도 부모님은 공감능력이 부족했던 팰런의 성향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공감에는 타인이 어떤 감정을 왜 느끼는지 이해하는 인지적 공감과 타인의 감정을 느끼고 공감하는 감정적 공감이 있는데요, 저자의 경우 선천적으로 감정적 공감능력이 낮지만, 부모님의 노력과 따뜻한 가정환경 속에서 인지적 공감능력을 배워서 익히게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일련의 자기 성찰 과정을 통해 저자는 그 동안 자기 자신에 대해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왜 그랬는지, 자기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저자는 진화론적으로 사이코패스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사이코패스의 비율은 대략 인구의 2%정도 된다고 합니다. 50명이 있는 공간에 한 명 정도는 사이코패스가 있다는 뜻이니 꽤 높은 빈도라고 생각됩니다. 저자는 아마도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존재한 이유는 인류가 살아오면서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예를 들어, 전쟁의 상황에서 유능한 군인이 되려면 감정과 행동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하고, 목표물이 정해지면 감정 없이 그 목표물에 달려들 수 있어야 할 테지요. 이러한 경우, 사이코패스는 전투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고 외상후스트레스를 겪을 위험도도 낮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까지 존재한 이유는 어쩌면 역사적 난관에서 사이코패스의 기질이 필요했기 때문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합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사이코패스와 그 유전자를 사회에서 제거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들을 사회에 해약을 끼치는 괴물로 낙인찍고 이 사회에서 제거해야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생애 초기에 확인하고 미리 그들이 어려움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다면, 거시적 수준에서 사회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뜻하지 않게 알게 된 자신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과학적인 성찰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이해해 나가는 저자의 노력과 방법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어찌보면 감추고 싶을 수 있는 자신의 단점을 오히려 책이나 언론을 통해 널리 알림으로써,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자신과 닮아있는 사람들이 서로 이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다름과 다양성을 인지하되,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고 어디부터는 인정하지 말아야 할까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요?

어찌보면, 요즘 MBTI에 관심이 많은 MZ세대들 마음의 기저에는, 무수히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마주하며 자신과 화해하고, 나와는 다른 유형의 사람들에 대해 분노하기보다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요?

살다보면 나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아 힘들어지는 경우들도 종종 있습니다. 만약 어떻게 자신의 문제를 대면해야하는가, 또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포용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이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박히준 / 경희대 한의대 교수, 침구경락융합연구센터 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