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일본 정신과 임상에서 만난 동서양 통합의학 힘과 비전, 유멘탈 크리닉 임상실습기
상태바
[기고]일본 정신과 임상에서 만난 동서양 통합의학 힘과 비전, 유멘탈 크리닉 임상실습기
  • 승인 2023.08.17 04: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동욱

심동욱

mjmedi@mjmedi.com


심동욱부산대한의전 4년
심 동 욱
부산대한의전 4년

가야산이 보이는 넓은 평야에 서면 푸른 하늘이 파노라마처럼 눈에 들어오는 이토시마시는 어느새 저에게 일본에서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유 멘탈 크리닉에서 한 달 동안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과 경험들을 글로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지만, 제 마음 속에 자리잡은 소중한 시간들을 꺼내보려합니다.

먼저, 유 멘탈 크리닉에 오게 되었던 과정은 현재 재학 중인 부산대학교에서 마지막 4학년 여름에 '특성화 실습'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올 수 있었습니다.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한 글로벌 리더 양성을 위해 운영하는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어느 기관에서든지 실습을 다녀오는 기간이 있습니다. 4학년 1학기에 학교 한방병원에서 임상실습을 할 때, 한방신경정신과를 돌 때였습니다. 김보경 교수님께서 다미주이론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는데, 생물학적으로 실제 존재하는 미주 신경을 복측과 배측으로 나누어 인간의 진화에 따라 사회적 교류를 하는, 공감하는 신경이 있다는 내용이였는데, 강의가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이 이론에 대해서 많이 공부하셨고 임상에 활용하시는 분이 일본에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마침, 학교의 이남현 동기생이 먼저 일본의 유 멘탈 크리닉에 대해 파악하고, 실습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여 컨텍을 했고, 저에게도 제안을 해줘서 본 크리닉에서 임상실습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 멘탈 크리닉은 후쿠오카시에서 전철로 40분 정도 떨어진 이토시마시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본 크리닉은 유수양 원장님을 비롯해 소아과 전문의이시면서 현재 정신과 레지던트를 하고 계신 와다 선생님이 계시고, 그 밖에 스텝 7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스텝 중 5명은 모두 M&L 심리치료 세라피스트 자격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 2명은 현재 세라피스트 인증코스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즉, 모두가 같은 공부를 통해 같은 가치관과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 공통의 언어로 소통이 가능한 크리닉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M&L 심리치료]란 <Mindfulness&Loving beingness>라는 뜻으로, 먼저 'Mindfulness'는 자신의 내면의 감정이 일어나는 방식에 대한 관찰자로서 깨어있음이라는 '지혜'를 중요시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Loving beingness'는 존재에 대한 깊은 존중을 뜻하는 것으로 '사랑과 자비'라는 말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즉, 지혜, 사랑, 자비의 가치를 임상현장에서 치유개념으로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유멘탈크리닉을 운영하고 계시는 유수양 선생님은 일본 국립 가고시마대학 의학부 의학과를 졸업하고 연수의 및 사가현 국립 히젠 정신의료센터 근무를 거쳐 현재 유 멘탈크리닉을 개원했습니다. 특히, 의사가 되기 전에 심리치료 세라피스트로 활동한 적도 있으며, 원광대에서 한의학 박사도 취득하였습니다. 따라서, 유 멘탈크리닉은 동서양 의학과 심리치료라는 세가지 영역을 통합해서 치료하는 크리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인 스텝분들과 함께 일본 환자분들을 동서양 의학 및 심리치료를 통해서 치료하는 곳은 세계에서도 유일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본 크리닉에는 귀여운 세라피견인 라이안도 있습니다. 예쁜 얼굴로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 골든 리트리버로 처음 만난 순간 달려와서 안겨 주었던 장면이 아직 떠오릅니다. 환자 중에는 사람한테 쉽게 마음을 못 열고 말을 안 하는 어두운 표정의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 때, 라이안이 귀엽고 다정한 모습으로 다가오면 환자분도 금방 편안한 표정의 미소를 짓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점이 많은 크리닉이라서 저는 '기적의 크리닉'이라고 말하고 싶고, 여기서 연수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제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유 멘탈 크리닉에서 모두 '자신만의 서사'를 가지고 방문한 환자들을 진료하는 선생님의 생생한 현장을 그 자리에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선생님 뒤에 앉아서, 다양한 환자분의 상황에 공감해주시,고 때로는 품어주시고, 때로는 따끔한 조언도 적절하게 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환자들에게 이런 느낌의 한의사가 되고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여기 크리닉을 좋아하시고 계속 오고 싶어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서 이런 모습의 한의원이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면서, 크리닉의 벽지, 책상, 의자, 조명까지 주의깊게 살펴 보았습니다. 정말 많은 환자분들의 진료를 참관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때로는 저도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진료 안으로 들어가보기도 했습니다. 패닉 증세로, 처음에는 진료실의 문을 열어두어야 할 정도로 밀폐된 공간에 대한 불안감이 심하셨던 분이나,  처음에는 심한 우울증으로 방문하셔서 삶에 대한 의욕도 없으셨던 분들이, 지금은 크리닉에 어떤 이유로 방문하셨을지 조차 모를 정도로 너무 좋아지신 케이스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케이스로는 20대 남자 대학생이였는데,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유 멘탈크리닉에서 치료받고 나서는  '하고 싶은 공부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서, 국립대에 진학하고 지금도 선생님께 찾아와서 조언도 얻고 치료도 받는 케이스였습니다. 또한, 이 환자분이 호소하는 머리 어지럼증이나 구토 증상을 반하백출천마탕으로 치료하는 것을 보면서 한약 처방에 대한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크리닉 실습을 하는 동안 주 1회 크리닉에서 차로 30분 거리의 케야 해변가에 사시는 70대 노부부 마쯔바라상 댁에 방문간호를 갈 때 함께 동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함께 방문해서 환자분을 직접 문진도 하고 불편한 부분 침치료도 해드릴 수 있었습니다. 침치료를 받으시고 금방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릅니다. 크리닉에서 지역의 거동이 불편하신 주민을 위해서 방문간호를 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이런 모습의 치료 하나하나 모여서 지역 커뮤니티의 소중한 마을 주치의 크리닉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또한, 실습 기간 중 [M&L 심리치료 기초코스] 수업이 있는 날이 있었는데, 본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습니다. 함께 참가한 분들에게 자기소개도 하고, M&L 심리치료의 기초 이론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기질과 성격에 대한 의미를 공부하고, 이것을 본인에게 적용해보고,  함께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이렇게 본격적으로 수업을 듣고 실습까지 참여해 보니,  앞으로도 꾸준히 이 공부를 해서 임상에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유 멘탈 크리닉에 와서 좋았던 점은 모든 스탭분들이 이 크리닉을 사랑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나도 나중에 이렇게 멋진 분들과 드림팀을 꾸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탭 중 한 분인 '스미 상'이 진행하는 카운셀링에 환자로 참여해서, 환자분들이 듣는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는데, 귀여운 그림과 함께 뇌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각각의 역할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해부학적 구조를 가지고 각각의 부분이 정신과적으로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정말 쉽게 설명해줘서, 어떤 환자분이라도 뇌의 구조와 기능에 대해 쉽게 이해하고 직접 치료를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았습니다.
이토시마와 근교 사가현, 그리고 오이타현의 유후인 등지에서 선생님과 그리고 소중한 분들과 함께 만든 추억의 장면들도 오래오래 마음 속에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선생님께서 진료와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주셔서 일본어 실력도 날로 향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일본과 일을 함께할 기회가 올 수 있기 때문에 꾸준히 일본어를 공부해서 그 날을 대비하고 싶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어느새 이번 실습도 끝이 찾아왔습니다. 마지막 실습 날 어느새 정들었던 선생님과 스탭분들, 그리고 라이안과 인사를 나누는데 그 동안 추억들이 떠오르면서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습니다. 실습을 더 뿌듯하게 만들어 준 수료증서와 함께했던 모든 분들의 사진과 코멘트로 예쁘게 꾸며준 롤링페이퍼는 방 한 켠에 늘 전시해두고 싶은 마음입니다. 이토시마의 유 멘탈 크리닉과의 인연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앞으로 정말 진심으로 환자를 위해 진료에 최선을 다하는 한의사가 되기 위해 꾸준히 교류하고 공부하고 싶습니다. 한 달 동안 여기서 함께 해 준 모든 인연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