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기] 2000년대 미국식 코미디를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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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기] 2000년대 미국식 코미디를 떠올리며
  • 승인 2023.07.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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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현 기자

박숙현 기자

sh8789@mjmedi.com


영화읽기┃범죄의 장인

처음 ‘범죄의 장인’ 이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아, 얼마나 범죄를 예술적으로 저지르면 장인이라는 표현까지 썼을까”라며 기대했다. 그리고 영어 제목을 확인하자마자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영화의 원제는 ‘The Out-laws’이다. 범죄를 한 땀 한 땀(?) 손수 정성스레 깎아 만든다는 의미의 장인이 아니라 아내의 아버지를 뜻하는 ‘장인’이다.

감독: 타일러 스핀델출연: 아담 드바인, 니나 도블브, 엘렌 바킨, 피어스 브로스넌 등
감독: 타일러 스핀델
출연: 아담 드바인, 니나 도블브, 엘렌 바킨, 피어스 브로스넌 등

이 영화는 은행 지점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오언이 결혼을 앞두고 처음으로 예비 장인, 장모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극중 오언은 사람은 좋으나 찌질하기 짝이 없는 너드남(nerd)으로 나온다. 보통 매체에서 잘생기고 머리도 좋고 몸은 근육질인데 성격이 좀 얌전하고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너드라고 부르면서 ‘진짜’ 너드를 기만한다는 우스개소리가 나오곤 하지만 이 영화 속 오언은 ‘진짜’ 너드의 정석을 보여준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손님의 자리배치를 고민하는데, 이를 엄청나게 섬세하고 뛰어난 솜씨의 캐릭터 피규어를 만들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미국인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너드이다. 오죽하면 오언의 직장동료들이 “네가 파커(여자친구)이야기를 할 때 상상여자친구를 의미하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겠나.

흔히 장인, 장모가 그렇듯이 이 영화 속 장인, 장모도 오언을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에야 사랑하는 약혼녀의 부모이니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보자며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짓궂은 장인, 장모의 괴롭힘에 학을 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어딘가 모르게 수상하다. 물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상식인으로서의 지성으로 결혼 직전까지 장인, 장모가 얼굴을 비추지 않고 살던 것부터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지만 오언도 파커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 것부터 기묘하다. 그리고 극이 진행될수록 오언은 이 두 사람이 은행 강도라고 의심하게 된다. 영화를 좀 보는 짬이 찬 관객 입장에서는 오언의 직장이 은행이라는 설정을 보자마자 “저 은행은 털리겠군”하고 직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미국식 킬링타임 코미디 영화다. 사람은 착한데 어딘지 괴상하고 헛소리를 늘어놓는 남자주인공(주로 백인이다)과 그의 아름다운 여자친구(역시 거의 백인인데, 유일한 단점은 완벽한 이 여자가 이 남자를 사랑할 정도의 독특한 취향을 지녔다는 점이다), 조금 더럽고 과장된 개그코드, 그리고 남자주인공보다도 더 이상해서 누구나 대놓고 질색하는 조연, 대결구도를 갖추고 있지만 진짜 빌런의 등장으로 임시동맹을 맺게 되는 적대적인 관계. 헐리우드 코미디를 봤다면 이 구도가 익숙할 것이다. 이 캐릭터 설정은 극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브루클린 나인-나인’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클리셰를 잘 따라간 코미디는 즐겁다. 모든 영화가 ‘스포트라이트’처럼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지니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머리가 복잡한 나머지 아무 생각 없이 깔깔거리면서 한바탕 신나게 웃으며 만족스러운 2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도 있다.

필자 역시 그런 마음으로 가볍게 넷플릭스를 켰으나 아무래도 필자는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이 영화는 클리셰를 따라가다 못해 20년 전에 만들어진 코미디영화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코미디영화는 사실 굉장히 어렵다. 꼼꼼하게 밑밥을 잘 깔아주고 확실하게 웃음 코드를 잘 살려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섬세한 구조는 없고, 냅다 토하고 엉덩이를 때린다. 2000년대에 나왔거나 미국인이었다면 감상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단언하건데 그런 영화는 이미 2000년대에 충분히 봤다. 2023년에 나온 영화는 달랐어야 했다. 단순히 “됐고, 그냥 토할테니까 웃어”라고 하는 영화를 보고 웃자니 “관객이 그렇게 쉬워 보이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조금 더 고민이 필요하다.

 

박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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