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28] 朝鮮採藥月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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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28] 朝鮮採藥月令
  • 승인 2004.12.29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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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에 간직한 우리 약초 달력

본란 100회(2002. 3. 4)분 기고를 앞두고 무엇을 쓰나 망설이다가 麗末鮮初 우리의학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鄕藥採取月令』을 선택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감을 앞두고 밤새워 고민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연말연시에 이 책을 다시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전하는 부분은 많지 않지만 세종시대의 鄕藥精神이 담겨져 있는 소중한 문헌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비록 조선판은 아니지만 공들여 옮겨 적은 등사본 하나를 구해서이다.

혹시라도 지금 보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抄寫本보다 나은 부분이 있나 해서 기대를 가져보았지만, 별다른 부분은 없었고 다시 베껴 쓴 異寫本에 불과했다. 이제껏 본 것으로는 中國中醫硏究院 도서관에 역시 일제강점기 시대에 옮겨진 것으로 보이는 毛筆 寫本을 보았을 뿐이다. 겉표지에는 필사자가 직접 서명을 적어 넣었고 본문은 종이를 반으로 접어 실끈으로 묶은 것이 상업출판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규장각에 소장된 필사본은 1931년 日人 학자가 필사한 것으로 『조선채약월령』이라는 표제를 달아놓았다. 원문을 옮겨 적으면서 고친 글자들이 그대로 나타나는 반면에 여기서는 고쳐진 글자로 써놓았기 때문에 대략 사본의 작성경위를 짐작할 수 있다. 발문도 역시 그대로 옮겨놓았는데, 1431년에 지은 尹淮의 발문에는 일본식 訓點이 달려 있다. 원문은 없어지고 1428년의 명문만 남은 글이 그 앞에 있는데, 원문에 ‘卞良’이라 되어있는 발문의 작성자를 조선 초기에 활약한 명문장가인 ‘卞季良’(1369~1430)으로 추정한 바 있다.

변계량은 호가 春亭으로 일찍이 開國初 조선이 諸侯國으로서 祭天禮를 행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檀君이 하늘에서 내려온 天子로서 당당히 하늘에 제사를 올릴 수 있다는 圓壇祭天論을 주장할 만큼 민족주체의식이 투철한 인물이었다. 그는 원래 圃隱 鄭夢周의 문도로 새 왕조가 千牛尉中郞將兼典醫監丞의 벼슬을 내려 불렀지만 병을 핑계로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太學에서 훈도를 받았던 陽村 權近의 권유로 뒤늦게 出仕하여 20년 대제학을 지낸 名臣이었다. 권근도 역시 1398년에 濟生院에서 『鄕藥濟生集成方』의 서문과 발문을 작성한 바 있고 『향약집성방』의 서발을 지은 權採는 거꾸로 변계량이 발탁한 인재였으니 이래저래 서로 우연치 않은 인과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기록대로라면 그가 발문을 작성한 시기는 1428년으로 예문관과 성균관의 제학을 겸한 문형을 맡은 지 20년, 그의 나이 60세 가장 완숙한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430년에 세상을 떴으니 말년에 남긴 명문 가운데 하나였겠지만 그의 글은 『春亭先生文集』이나 이 책에서 모두 흩어져 없어지고 그 흔적만 남은 셈이다.

太宗 15년(1415) 旱災가 있어 임금이 음식을 물리치고 자책하자 그는 五千言封事를 올렸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愼調攝’을 들어 건강에 유념해야 함을 지적하였다. “게으름을 피우고 안일에 빠지는 것은 調攝의 도가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혈기를 어지럽히지 않고 스스로 정신력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 목숨을 늘리는 방도라고 말했다. 또 섣불리 약을 먹어 해를 입느니 차라리 먹지 않는 것이 낫다고 당부하였다. 金石藥을 복용하는 것은 漢唐시대 君王들이 화를 불러들인 것이니 常服할 만한 약이라도 寒熱을 고려하여 氣血을 화평하게 하고 榮衛에 적합한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李鵬飛의 『三元參贊延壽書』와 孫眞人 『養生書』를 가려서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충언하였다. 그가 양생의학에 조예가 깊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는 또 1421년에는 성균관에 醫官 2인을 배치하여 서로 번갈아가면서 학업과 독서로 과로가 누적되어 부종병이 든 학생들을 구료하도록 주청했으니 요즘으로 말하자면 학교의나 공직의의 파견을 제안한 선구자였던 셈이다. 때마침 올해 의사학 학술대회가 ‘한국한의학의 정체성과 동아시아 의학교류’를 주제로 열리게 되었다. 중국이 고구려를 자국의 변방사로 편입하려 시도하는 것이나 오래 동안 일본과의 사이에 벌려온 동해와 독도의 영유권 시비가 아니라도 연말연시에 즈음하여 민족의학의 정체성을 재삼 돌이켜보아야 할 때이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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