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학캠페인] 한약 문화를 바꾸자(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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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학캠페인] 한약 문화를 바꾸자(11)
  • 승인 2004.12.03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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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검사 방식 등 구체적 일정 제시 필요

▶ 한약 관리 마스터플랜 있어야 ◀

한약 제조업을 하는 김모씨는 요즘 고민에 빠져있다.
비교적 눈속임을 하지 않았고,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 덕분인지 고정적으로 거래하는 한의원 수도 늘어 이제는 제조시설을 한 번 갖춰볼까 하는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김씨가 지방 외진 곳에 차려놓은 업소는 사실상 원료의약품 제조업소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시험시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제조시설도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최근에 구입한 자동으로 무게를 달아 포장하는 기계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기계도 일손을 구하기 힘들어 큰 맘 먹고 구입한 것이다.

공장에는 건조기와 절단기가 있지만 국산이나 수입품이나 모두 건조해서 절단돼 들어오기 때문에 이들 기계는 제조업 허가를 받기 위한 형식에 불과한 것이었다. 굳이 가동되는 시설을 들라면 가스 버너에 초하기 위한 솥 정도다.
김씨는 일부품목이라도 자신의 손으로 제품을 생산해 낸다는 생각으로 시설을 보완하려는 것이다.

□ 이름만 ‘제조 업소’

우리나라에 있는 한약제조업체 중 자신이 직접 세척하고 건조해 절단하는 업체가 과연 몇 곳이나 있을까?
국내는 산지를 돌아다니며 한약재를 수집하고 절단해 한약제조업체나 도매상에 판매하는 조직이 있다. 이들은 전문적으로 약재를 처리하고 규모가 크기 때문에 당연히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일반 제조업체가 산지에서 직접 약재를 구입하고 자신의 업체로 가져와 작업하는 데 드는 비용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수입한약재 역시 마찬가지다. 건조된 약재를 국내로 가지고 들어와 물에 불려 절단하고 다시 말린다는 것은 말로나 가능한 것이다.
결국 제조업체가 직접 작업을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김씨는 수입은 어쩔 수 없더라도 국내에서 생산되는 약재 중 일부라도 직접 작업을 해볼까 하는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작약을 예로 들면 산지에서 채취할 때 세척한 다음 양건은 못할망정 원적외선 건조기로 말릴 요량이다.
그렇게 하려면 시설비도 문제고, 감량도 많이 나 현재 자신이 팔고 있는 가격보다 30% 이상은 비쌀 것인데 과연 팔릴 수 있겠냐는 고민에 휩싸인 것이다.

□ 난립하는 ‘본부’, ‘위원회’

우리한약되살리기운동본부, 한약발전추진위원회 그리고 최근에는 좋은 한약공급추진위원회가 구성된 데 이어 국무조정실에서 정부부처와 생산, 유통, 제조 및 소비자 등 관련단체, 기타 전문가가 참여하는 ‘한약재대책협의체’까지 구성한다고 한다.

그러나 관련업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각 위원회에 파견된 대표자는 자신의 업권을 보호하려는 필사적인 발버둥이 되풀이 될 것이 뻔하고, 현실적인 대책이 마련되기 어렵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나 생산자나 유통업자 그리고 소비자인 한의사도 한약이 어떻게 생산·제조돼야 하는지 알고 있다. 단지 관행이 돼버린 현 상황을 인위적으로 바꾸려 할 경우 자신에게 나쁜 영향이 미칠 것을 우려할 뿐이다.

농민은 양질의 약을 생산해 값을 더 받으면 된다. 수입업자나 제조·유통업자도 원가에 일정비율의 이윤만 챙기면 된다. 한의사도 양질의 약을 환자에게 투약해 치료 효과가 올라간다면 원가 부담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공식에 불과하다. 어느 한 부분이 혁명적으로 바뀌기 이전에는 구호에 불과한 말일뿐이다.

□ 계기가 마련되지 않았을 뿐

중국은 한약재와 관련해서는 우리보다 20년은 앞섰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한약부분에 있어서는 중앙집권적으로 관리를 한 덕분인지 자국에서 의약용으로 사용되는 한약재는 GAP, GMP, GSP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최근에는 이들 약재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더욱 명확히 하기 위해 약리성분이나 지표물질 등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사회주의적인 계획경제에 의해 이루어진 성과물일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강제적인 계획경제로만 한약재 관리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다만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계기란 한약재를 의약품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한 구체적 마스터플랜을 말한다. 마스터플랜은 구체적 일정까지 제시해야 하고 업계나 소비자 모두 무리 없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또 그것은 철저하게 지켜져야 한다.

이는 업계가 시장을 예측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라는 말이다. 규격화 품목을 확대하는 것도 미리 예측이 가능하도록 하고, 제조·검사 방식 역시 예측이 가능하도록 미리 마스터플랜을 만들어 제시하라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진 업체도 이러한 것이 만들어지지 않은 채 개별적인 의지만 가지고 사업을 행할 경우 피해가 발생할 뿐이다.

몇 해 전 국내에서 생산된 약재는 채취 즉시 세척할 것을 주문했던 한 업체는 자금압박에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또 많은 돈을 들여 현대식 시설을 꾸며 약재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안전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 업체 역시 지금 자금 압박에 허덕이고 있다.
바르게 가려고 해도 시장이 이를 막고 있는 것이다.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담당자가 있어 업무의 지속성은 있겠지만 담당부서장이 교체됐을 때 업무 파악에만 수개월이 걸린다. 마스터플랜이 마련돼 있으면 업무의 연속성은 공백기간 없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 한약발전을 위해서는 관련 부서나 업계의 협의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일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마스터플랜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계속>

이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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