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학캠페인] 한약 문화를 바꾸자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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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학캠페인] 한약 문화를 바꾸자⑦
  • 승인 2004.10.22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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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체 영세성이 불법 낳는다
개선책 나와도 실행 어려워

■ 한약시장 규모와 구조① ■

지난 8월 25일 TV 추적60분을 통해 한약재 문제가 보도되고 얼마 있지 않아 복지부는 ‘좋은 한약 공급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언론의 질타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관련 업계 사람을 불러모아 위원회를 꾸린 것이라고 판단하고 싶지는 않지만 위원회가 과연 얼마만큼 역할을 해 낼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관계자들 모두 자신의 업종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뻔한 말만 반복하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원론적인 이야기만 맴돌지 모른다는 우려에서이다.

관념적으로는 말할 수 있어도 ‘좋은 한약’이 무엇인지 문서상으로 정확히 규정을 내리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판단기준은 제멋대로 이고 ‘값싸고 품질 좋은 한약재’를 찾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발로 산지를 찾아다니며 능력에 따라 물건을 사고 팔았던 시절에나 있을만한 일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의계와 정부의 노력으로 좋은 한약의 기준이 마련됐다 손치더라도 현 한약 시장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 업소 유지도 어려운 수익

2003년도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가 발표한 한약재의 수입실적을 보면 2만9600여톤, 돈으로는 670억원에 이른다.
국산 약재가 빠져있고, 식품으로 수입돼 한약재로 유통되거나 보따리상에 의해 국내로 들어온 양을 합칠 경우 1천억원 가량 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제세공과금과 유통마진은 포함되지 않은 금액이다.

현재 전국의 한약재 도매상은 약 1천 곳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800곳 정도는 한약유통보다는 탕제원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 나머지 200개 약업사가 유통업을 하고 있다면 한 약업사 당 5억원 수준이다. 사들인 금액에 30%를 붙여 한의원에 판매 하다고 하면 1억5천만원, 한 달에 1250만원이다. 이것으로 집세에 종업원 급여와 한약재를 판매하기 위한 각종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또 자신의 몫도 챙겨야 한다. 평균을 가지고 계산한 내용이다. 그러나 규모가 큰 몇 개의 업체가 있어 대부분의 약업사들은 이 수준에도 훨씬 못 미친다는 계산이 나온다.

제조업소도 마찬가지다.
현재 가동 중인 제조업소를 100곳으로 치고, 2003년도에 수입된 한약재가 전부 이들 업소에서 제조됐다고 가정하면 한 제조업소 당 6억7천만원이다. 월 평균 5천600만원꼴이다.
마진을 30%붙여 판매한다면 1680만원이다. 규모를 최하로 한다고 해도 공장부지에 대한 임대비용, 절단기 건조기 등 장비를 합치면 최하 1억원은 있어야 제조업체를 설립할 수 있다. 정식으로 채용을 했든 아니면 명의만 빌렸든 한·양약사의 임금을 비롯해 종업원의 급여가 매달 지급돼야 한다.
몇 몇 큰 제조업체를 고려하면 대부분의 제조업체는 이 규모에도 턱없이 모자란다는 계산이 나오고 이 금액으로는 공장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들 업체가 영업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차례다.

□ 영세한 업계, 생존만이 관건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좋은 약재가 공급되도록 하겠다는 것에 대해 “길거리에 물건을 파는 노점상에게 품질관리를 하라고 말하는 꼴”이라며 “백화점 규모는 못 돼도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편의점 수준은 돼야 관리를 하고 말 것 아니냐”고 말했다.

한 달에 1200만원에도 못 미치는 유통마진을 가지고 각종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약업사에서 어떻게 의약품에 대한 관리를 기대하겠냐는 것이다. 더구나 무허가 한약 도매상들도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개선책이 나와도 말에 그치고 말뿐이다.

무허가 한약 도매상은 정식으로 허가를 받은 약업사에서 세금계산서 등 관련 서류를 공급받고, 독자적으로 영업을 하는 형태를 말한다. 업계의 관계자는 “지금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5년 전 만해도 전체의 80% 이상이 이런 형태로 영업을 해왔다”고 털어놓았다. 과연 이들이 무슨 의약품 관리를 해 왔고 할 수 있겠는가?

서울 제기동에서 약업사를 운영하고 있는 모씨는 “지금 업계에게 중요한 것은 생존의 문제지 그 이외에는 어떠한 것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얼마 전에도 식품원료로 수입돼 온 것을 국산과 섞어 국산 한약재로 팔았다고 실토했다.

또 다른 수입업자는 글리시리진산이 거의 나오지 않는 감초를 중국에서 들여와 국내에 유통시켰다고 말했다. 제조업체가 수입하는 것으로 통관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수입이 가능했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장기적인 전망을 보고 우수한 제품을 수입해 올 수도 있었지만 이 것을 빨리 팔아 다른 약재를 구입해야하는 회사 실정에서 그럴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업계의 영세성이 약재가 바로 설 길을 막고 있는 것이다.

□ 정부 정책도 한 몫

서울 제기동에서 약업사를 운영하고 있는 박 모씨는 “소분업에 불과한 한약제조업체가 한약재의 품질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단순 세척·절단·포장하는 행위는 제조라고 볼 수 없으니 판매자가 규격품으로 제조하도록 제도를 바꾸자는 주장이다. 대신 실명제를 채택해 불량한약재를 제조·판매한 업자는 중벌에 취하자고 주장했다.

업체가 영세해 길이 있어도 가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더 영세한 판매업자에게도 한약재를 제조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금 한약 업계는 이러한 비상식이 설득력을 얻을 정도로 낙후돼 있다.
이 근저에는 업계의 절대 다수가 영세하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보호하자는 차원에서 정책을 집행해 온 정부가 있다. <계속>

이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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