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학캠페인] 한약 문화를 바꾸자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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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학캠페인] 한약 문화를 바꾸자④
  • 승인 2004.09.1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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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따로’ ‘현실 따로’식 한약재 시장
정보 따르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문화 만들어야

□□□ 한약 정보와 한의약계 □□□

현대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하나에 정보의 공유가 포함된다. 정보를 먼저 취득하고, 취득한 정보를 산업현장에 접목시키려 부단히 노력했던 것이 산업의 발전을 이끌었다.
현대 사회는 산업계뿐만이 아니라 일반 가정이나 개인에게도 정보를 얼마나 빨리 얻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차이 나게 만들고 있다. 정보는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아니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한 수단이 됐다.

■ 무의미한 한약재 정보

최근 모 TV프로에서 한약재의 유통문제가 보도됐다. 이후 한의계는 “의약품 유통이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정부는 무엇했으며, 한의협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냐”라며 원망과 한탄의 목소리를 냈다.
한약재 생산·유통 업계에도 “불법·불량한약재는 사지도 팔지도 말자”는 자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나 한약재 시장은 기대했던 변화의 조짐이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보가 제공됐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다.
서울 제기동에서 약업사를 운영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약재 속에서 비닐 끈이 나오거나 육안으로 확인되는 이상한 물질이 섞여 있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라서 업자들이 콧방귀도 뀌지 않았으나 시장에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며 “그러나 약재 판매량은 우려했던 것 만큼 줄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 수입업체 관계자도 “문제가 됐던 백강잠이나 전충의 주문량이 뚝 떨어질 줄 알았는데 주문이 줄지 않았다”고 말했다.
염전 전충과 무염 전충을 모두 수입하는 또 다른 업체도 “방송 보도가 있은 후 무염 전충의 판매량이 증가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염전한 것이 훨씬 더 많이 팔리던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 강남구에 개원하고 있는 한 한의사는 “문제가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당장 환자를 진료해야하고, 다른 대책이 없는 상황이 아니냐”며 “다만 주문한 한약재가 들어오면 일일이 살펴보고 세척하고, 특히 전충과 같은 것은 수침해 염분을 제거한 후 환자에게 투약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잘못이 알려져도 꿈적 않는 시장

원광대 한의대 신민교 교수는 “요즘은 많이 나아졌으나 아직도 더덕이 사삼으로 쓰이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우리나라 원전 일부에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잔대가 사삼이라는 것이 확인됐는데도 말입니다”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또 “진짜 사삼인 잔대를 구하려면 모시대 뿌리인 ‘제니’를 주문하면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의대 한의대 김인락 교수도 “제대로 된 사삼(잔대)이 수입돼 들어와도 잘못된 국내 사삼(더덕) 시장은 꿈적도 안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그간 수입금지 품목에 해당돼 문제가 있는 품종을 사용해 왔던 강활이나 방풍이 2002년 수입규제가 풀린 이후에 제자리를 잡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과거의 관행이 사라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문제점이 알려졌는데 개선되지 않는 것은 한약재 품종에만 그치지 않는다.
제조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삼이나 작약과 같은 한약재는 거피를 하면 유효 성분이 손실된다는 연구결과에도 시장은 무관심하다.
부자를 그냥 말리면 시중에 유통되는 흰색을 낼 수 없는 데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누구나 먹어보면 맛을 아는 대추가 단맛이나 독특한 향은 거의 없어진 채 돌아다닌다.
자신의 독특한 향을 지니고 있어야 할 풀약들도 누렇게 변한 채 미미한 향만을 남기고 유통된다.

■ ‘옛날부터’가 문제

이제가지의 관행이 잘못됐으며 올바른 정보가 제공됐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알 수 있는 일인데도 시장이 변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것은 고쳐지지 않아도 사회적 파장이나 시장에 영향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그렇게 해왔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라는 관념을 낳게 했고 문제가 발생해도 전체 한약관련 업계를 무디게 만들었다.

한의계가 한약재와 관련한 연구내용을 학회 차원에서만 공유할 뿐 전체 한약재 관련업계에 알려 한약시장을 바르게 이끌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다. 또 연구자나 정보를 갖고 있는 자도 변화되는 모습이 부족해 문제를 알리려는 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새로 밝혀진 정보에 따라 시장이 발빠르게 움직여만 준다면 한약재 시장 문화는 순식간에 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 관념적으로 운영돼 왔던 시장에 이것을 기대하기란 힘들다. 또 정부 탓으로 돌리고 정부만 바라보고 있을 경우 한약시장은 더욱 침체의 늪에 빠질 우려가 높다.

결국 한의계를 비롯한 한약 관련 업계 스스로 정보를 공개하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길만이 단기적으로는 유일한 해결책이다.
문제가 될 수 있는 약재를 한의계와 업계가 공동으로 선정해 기준을 정하는 방법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기준에 맞게 한약재를 들여오고 취급하는 업체 명단과 취급량을 한방의료계에 공개한다. 또 상시적 감시 체계를 구축한다. 이것은 법이나 규칙으로 강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합의에 따르지 않고는 업체가 생존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많은 수의 약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매번 5가지의 약재만 정리된다고 해도 한의계에는 어떠한 약재이어야만 된다는 기준이 마련될 수 있다.
한약 문화는 업계와 소비자인 한의사 그리고 학계가 공동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계속>

이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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