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칼럼] 이별의 불시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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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이별의 불시착
  • 김영호
  • 승인 2020.02.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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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한의사
김영호
한의사

우리는 누구나 <이별>을 경험한다. 나의 의지로 이별을 결정하는 경우도 있고, 상대에 의해 혹은 어쩔 수 없는 계기로 이별하는 경우도 있다. 얕은 관계는 후유증이 길지 않겠지만 오랜 세월 맺어진 관계는 이별의 여파가 길고 힘들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절친한 친구나 선후배들과의 이별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별의 순간은 서서히 오기도 하고 갑자기 오기도 한다. 그 순간은 일상이 휘청거릴 만큼 엄청난 충격이다. 누구의 잘못인지, 어디서부터 잘못 된 것인지 시간과 관계에 대한 오랜 곱씹음이 반복된다. 추억과 애증이 뒤섞여 기분은 금세 나빠진다. 떠오르는 생각들과 맞서는 노력은 늘 패배하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된다. 모든 이별은 지금의 나를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가을에 잎이 떨어지지 않으면 긴 겨울을 견디기 어렵듯, 단 하나의 이별도 불필요한 것은 없다. 모든 이별은 인생의 다음 계절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내 삶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 꼭 거쳐야 하는 시험처럼.

다만 이별은 흔적을 남긴다. 동물들이 상처를 핥으며 치유를 하듯, 이별 후 마음에 남은 상처와 흔적은 두고두고 인생의 정수(精髓)가 된다. 사람은 관계를 통해서 스스로를 비춰볼 수 있기에 이별을 통해 발견하지 못했던 내면의 나와 만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나의 반응들이 이별을 통해 보인다. 이별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원인들이 결과로 확인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숙한다.

이별이 필요한 순간 애써 외면할 때도 있다. 아픔이 두려워서다. 하지만 이별의 고통을 피해 인연을 이어가면 상처는 더 깊어진다. 소독하지 않은 상처가 온 몸에 감염을 일으키듯 상처는 더 깊고 심각해진다. 이별이 필요할 때는 나를 위해서도, 상대를 위해서도 과감해야 한다. 연인이든, 친구든, 혹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이별해야 할 때를 놓치면 그 후의 삶은 더욱 고통스러워 진다.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느껴진다. 불편한 일이 잦아지고,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타협할 수 없는 생각의 격차가 벌어진다. 서로 이해하고 뜻을 모을 수 있는 한계 범위를 벗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용납할 수 없는 잘못을 반복하는 상대를 발견한다. 참고 견디며 인연을 이어가는 것은 고통의 연속이다. 상대가 이해를 바라거나 용서를 구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고 관계가 회복되는 경우는 드물다. 더 큰 이해와 용서가 요구되는 일이 반복된다.

이 순간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위해서 뿐 아니라 상대를 위해서도 인연은 정리하고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별이 꼭 아름답지 않아도 괜찮다. 이별까지 아름답고자 하는 것은 과욕이고 사치다. 헤어짐은 원래 아프니까 참고 견디며 이별을 선언해야 한다. 주저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처는 깊어지고 아픈 기억은 늘어갈 뿐이다. 용기만이 이 고통을 멈출 수 있다.

시간이 지나보면 피할 수 없는 이별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어질 인연은 온갖 장애물이 있어도 이어지지만, 헤어질 인연은 결국 헤어지게 마련이다. 이런 이별이 있기에 상처가 왕래하는 시간도 비로소 멈춘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의존을 벗어나 각자의 새로운 길을 찾아가면서 이별의 필연성을 수긍하게 된다. 절대 끊어지지 않을 것 같던 관계도 끊어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끊어져야 각자의 삶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고통스럽게 이어진 관계로 더 망가질 수 있었던 삶이 이별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이별은 새로운 시작이다. 그리고 자유와 기회로의 진입이다. 완전히 무너져야 새로 일어선다. 어정쩡한 겨울은 화창한 봄을 부르지 못 한다. 꽃샘추위가 매서워야 봄꽃이 아름답다.

과감한 결단(金)은 고요한 힘을 비축(水)하고, 그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와 인연(木)이 시작된다(金生水之 乃生木). 인연이 다 했는데(盡) 억지로 이어가면 상처의 시간만 계속될 뿐이다.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고통과 상처로 가득하다면 용기를 내야 한다. 이별해야 할 때, 이별해야 한다. 완벽한 이별 후에야 새로운 기회가 온다.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이별 후에야 상처는 회복되기 시작한다. 이별은 곧 시작이다.

초기 불교의 가르침을 기록한 언어인 팔리어(Pāḷi)로 아니카(Anicca 무상, 無常)라는 말이 있다. ‘영원하다’라는 뜻의 ‘nicca’에 부정어 ‘a’가 붙어 영원한 것은 없다는 뜻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의 전부라고 한다. 이별은 변화에 대한 순응이다. 내 삶이 가벼워지는 법, 그 시작은 이별이다. 사랑의 불시착보다는 이별의 불시착이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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