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13] 食療纂要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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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13] 食療纂要②
  • 승인 2004.08.13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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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한글의서를 기다리며

현재 남아 있는 서문의 작성 시기(天順 4년)를 통해 이 책이 대략 1460년경에 편찬되었음을 전회에서 이미 말한바 있다. 특별히 저술연대를 다시 밝히는 것은 저자인 전순의가 남긴 서문에서 “各門物類之下, 或附以正音, 使人人見之了然用之無疑”라고 쓴 구절 때문이다. 병증 各門에 등장하는 약물 종류에 따라 약재이름 아래 때때로 正音으로 주석을 달아 모든 사람이 보기 쉽고 쓰기 좋게 하였다는 표현인데, 이 부분이 후대의 「海東文獻總錄」에서는 “各門物類之下, 或以諺釋, 使人易考而易曉”라 되어 있다. 서문의 正音이 諺釋으로 바뀐 것이다.

한편 조선 전기 문헌으로는 유일하게 中宗朝 崔世珍이 쓴 「訓蒙字會」에 이 책이 인용되어 있는데, ‘박나화박 탁나화탁 食療纂要 박- 나화’라 적혀 있다. 이로 보아 주석이 응당 한글로 표기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데, 아쉽게도 현재 전해지는 두 가지 판본 중에 하나는 아예 주석이 달려있지 않고 나머지 한 가지에는 이두식 한자표기만이 되어 있다. 모두 65종의 약물에 대한 설명 가운데, 용례에 따라서 한자음만 借音해 표기하거나 혹은 약재의 종류를 구별하여 풀이하였다. 또 단순히 異名을 표기하거나 용어의 의미를 풀어서 설명한 곳도 있다.

앞서 「訓蒙字會」에 인용된 ‘박탁(박탁)’에 대해서는 ‘羅花’로 표기되어 있다. 이를 두고 두 가지 판본을 모두 대조하여 연구한 발표문에 의하면 正音이나 諺釋의 의미가 한글로 적었다는 뜻이 아닌 우리 속말로 풀었다는 뜻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잠정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이와 좀 다르다. 이미 1466년(세조 12)경에 간행한 것으로 여겨지는 「救急方」이 현존해 있고 「救急簡易方」(1489년)이 원문과 한글 對譯으로 되어 있다.

또 본란 「구급방」편(105회/正音시대의 응급의료 지침서, 02. 4. 15)에서 밝힌 것처럼 한글로 번역된 의서의 경우, ‘飜以方言’, ‘譯以諺文’(救急簡易方)이라 표현하였고 ‘譯以諺字’(救急易解方), 혹은 ‘飜以俚語’, ‘詳加諺解’, ‘加諺解以刊’(벽瘟方, 瘡疹方)이란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책에 한글로 된 주석이 달려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 「구급이해방」의 경우도 현전본에는 원문만 남아있을 뿐 한글로 된 譯文이나 주석이 남아 있지 않아 원문본과 언해본이 별도로 간행된 경우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애써 서문의 ‘正音’이나 ‘諺釋’을 우리말의 이두식 표기로 해설할 필요가 없다. 아울러 더욱 중요한 것은 만일 한글본이 발견될 경우, 시기로 보아 최초의 한글표기 의서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제 내용 가운데 몇 가지 실례를 살펴보기로 하자. 風寒濕痺五緩六急에는 烏계 한 마리를 음식으로 먹을 때와 마찬가지로 푹 익혀 국으로 끓여 먹으라고 되어 있는데 烏骨鷄가 이미 오래 전부터 약용과 식용으로 모두 이용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心腹痛 조에는 수탉(烏雄鷄)과 암탉(烏雌鷄)을 구분하여 쓰기도 하였다. 咳嗽 조에는 맛이 좋은 배(味好梨 혹은 大雪梨)의 씨를 발라내고 즙을 내어 여기에 黑당(흑당;갱엿)을 넣고 삭혀 조금씩 삼키라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다. 요즘 두루 사용되는 梨硼膏의 원조 격이 아닌가 싶다. 음식 중에는 혼돈(혼돈)이라는 명칭이 있는데, 일명 片匙(편시)라고 하며, 납작한 모양을 가진 고기만두의 일종이다. 風寒濕痺나 濕脚氣에는 鰻여魚에 오미자와 쌀을 넣고 죽을 쑤어 먹는데, 이 물고기는 蛇長魚 곧 뱀장어를 말한다.

眼目 조에는 靑盲증에 토끼의 간을 잘게 잘라 죽을 끓여 먹는 방법이 실려 있다. 후대의 별주부전(판소리 兎鼈歌) 사설에도 이와 비슷한 대목이 나온다. 南海龍王이 대궐을 짓고 낙성식에 연일 과로하여 죽게 될 지경이었는데, 옥황상제가 보낸 名醫仙官이 진맥하고서 “眼彩가 영롱하되 돌과 바위 못 보시고 ......”하더니 토끼는 눈이 밝아 별호가 ‘明視’이고 目屬肝하니 千年兎肝을 써야 한다고 권했다. 자연산물을 이용한 식이치료법은 조선 민중들에게 보편화되어 있었고 문학작품과 예술 속에서도 그 흔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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