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변해야산다③ - 회무를 전문화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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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변해야산다③ - 회무를 전문화하자
  • 승인 2004.07.2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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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 중심으로 갈 때가 됐다
주도층, 중심적 의료패턴 교체 진행중
한의단체 운영방식 이전방식 답습
한약분쟁 당시 일체감 전문화로 계승 못해


연재순서
① 프롤로그 - 왜 변해야 하는가?
②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자
③ 회무를 전문화하자
④ 다양성 있는 한의계를 만들자
⑤ 한의사의 길을 가자


어느 조직이건 그 조직이 추구하는 목표와 가치가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집단목표라기도 하고, 좀더 구체화되면 정책목표라고도 부른다.
사회는 이런 목표와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이 많아질 때 중심이 형성되고, 국가는 자연스럽게 강해진다. 거꾸로 이런 목표의식이 뚜렷하지 않으면 사회와 국가는 혼란스러워진다.

■ 한의계, 집단목표 공유하고 있나?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스티글리츠는 목표의식 대신 ‘합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정부가 할 일에 대한 명확한 합의가 존재한다고 단언했다.
정부는 안정적인 물가와 고용을 유지하고, 환경을 보호하고, 교육을 지원하고, 국방을 튼튼히 할 책임이 있다면서 국민의 행복 추구를 방해하는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정치인의 제1차적 의무라고 주장했다. (문화일보 7월 3일자 신중섭 교수 칼럼 ‘위기 제대로 읽어야’ 중에서)

한 단체에 합의가 있어야 한다면 한의계내에도 일정한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발전에 대한 합의, 발전을 바라보는 가치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고, 나아가서는 발전단계와 과정에 대한 합의가 있으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한 집단의 목표를 정하고 밀고나가는 법은 없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환경이 변화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집단의 목표를 수정해나가야 한다.
때로는 급격한 변화를 요구받기도 한다. 이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한 단체는 시대 조류에 낙오되거나 존재 자체가 사라지기도 한다.

■ 중심세대는 변하는데…

한의사 평균연령은 31.7세 시대라고 한다. 40대 이상이 한약의존도가 높다면 그 이하세대는 의료행위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다. 한의계를 이끄는 중심 세대가 바뀌고, 중심적인 의료패턴이 교체되는 과정에 있다는 증거들이다. 불행히 통계자료가 부족하여 수치화하기 어렵지만 큰 흐름은 변화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런 변화는 진단과 치료목적의 표준화, 대화의 표준화, 교육의 표준화, 진료의 표준화, 연구방향의 설정 등을 시급한 과제로 부상시켰다.
이에 따라 한의계의 주요 현안과제는 한약과 침 등의 수호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표준질병사인분류, 용어의 표준화, 의료행위의 표준화, 교육·연구분야의 개선 등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회무는 여전히 40대이상이 주도하고 있다. 회무의 중심적인 내용도, 한의사단체의 운영방식도, 지도자의 사고도 모두 이전 시대의 가치에 맞춰져 있다는 추정이 무리는 아니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2004년 현재 다수 한의사의 가치공유도는 높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 사람에서 시스템으로 전환기회 놓쳐

2000년 의약분업을 계기로 양의계와 양약계의 갈등은 시대변화에 의약단체가 어떻게 적응해나가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캐치프레이즈로 40여년간 홍보해온 양약계는 의약분업에 대비해 치밀한 준비를 해온 반면 양의계는 한약분쟁으로 인한 약사법이 개정되면서 시한이 정해져 준비안된 채 의약분업을 맞이했다.

채 전열이 정비되지 않은 양의계는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하여 정책개발과 대국민홍보를 수행하고, 내부적으로는 의협 개혁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낡은 의협조직을 쇄신하여 회무수행력을 획기적으로 증대시켰다.
그 결과 의협은 양방의료의 특성을 고려한 분업으로 정부정책을 수정하는 데 성공해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한의계도 유사한 경험을 안고 있다. 93년 한약분쟁 당시 한의협조직은 총직원이 13명밖에 되지 않은 영세한 조직이었다.
그후 한약분쟁이 터지면서 비상상황이긴 하지만 예산을 두배로 늘리면서 사무국직원의 숫자를 30여명 선으로 증가시켰다. 사무국직원뿐만 아니라 일선한의사들도 한의협 회무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한의협 공식조직 외에도 비상대책위원회와 국한위, 정책대책위회의 등을 운영하면서 다수한의사의 회무참가를 이끌어내 약체로 간주된 한의계가 거대 약사회에 대항해 위기를 모면했다.

이 당시만큼 한의계가 일체감을 가진 때가 없을 정도로 한의계의 회무생산성은 높았다.
그러나 한의협은 한약분쟁당시 거둔 성과를 지속시키는 데 한계를 보였다. 한약분쟁당시의 높은 참여도와 생산성은 회무가 본업이 아닌 한의사가 하나둘 빠져나가면서 현저하게 저하되었다.

일부 뛰어난 정책능력을 가진 회장이 회무에 활력을 불어넣었지만 생산성 하락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람이 해오던 일을 시스템으로 전환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시에서 평시로 전환되었으면 일하는 시스템도 비상대책에서 항구적인 정책중심으로 시스템을 짜야 했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 당시 기획이사로 참여했던 김석(서울 나라한의원) 원장은 “한의사들이 한의협을 빠져나오면서 사무국을 전문화시키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결과 한의협은 일은 많아진 대신 직원의 전문성이 향상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회무일선에 나선 담당이사가 직원의 자율성을 침해함으로써 직장의 안정성을 떨어뜨려 직원의 잦은 이직현상이 고착화되었다. 직원의 이직은 이사들의 개입 여지를 더욱 넓혀 직원의 전문성을 정체시켰다. <계속>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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