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대 한약학과’ 합의문에 또 굴욕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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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대 한약학과’ 합의문에 또 굴욕 서명
  • 승인 2004.07.0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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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 “통합약사 저지 물건너갔다” 탄식

약대 6년제 합의 파문을 겪은 한의협이 약대내 한약학과 유지를 전제로 약사법을 개정한다는 2차 합의문에 서명함으로써 통합약사 저지가 물건너갔다는 우려에 휩싸이고 있다.
한의협 안재규 회장과 원희목 대한약사회 회장은 지난달 24일 김화중 보건복지부장관 입회아래 약사법 제3조의2를 개정한다는 내용의 2차 합의문에 서명한 것이다. <합의문 전문 471호 종합란 참조>

이 합의문 1의 ①항은 한약사 면허 규정을 기존의 ‘대학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韓藥관련과목을 이수하고 졸업한 자로서 학사학위를 교육인적자원부에 등록하고 한약사국가시험에 합격한 자에게 부여한다’를 ‘대학에서 韓藥學科를 졸업한 자로서 韓藥學士의 학위를 교육인적자원부에 등록하고 韓藥師國家試驗에 합격한 자에게 부여한다’로 개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안이 현실화될 경우 한약학과의 설치대학이 굳이 약대일 필요가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고, 한약사응시자격도 한약학사학위를 받은 자에 한정하기 때문에 약대의 6년제 전환으로 복수전공이나 계열별 모집에 따른 통합약사 우려도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합의문 2의 규정으로 한약학과위 지위가 위협받게 됐다는 점에서 합의문은 한약학과를 독립시키기는커녕 오히려 통합약사로의 길을 재촉하는 독소조항으로 남게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합의문 2는 ‘상기 제2항(약사법 제3조의2)의 “대학”에 관한 사항은 1996년 5월 16일 정부가 발표한 한약관련종합대책(약대 한약학과)을 존중하여 유지키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 표현대로 하면 약사법 3조의2 2항은 실질적으로 “약대에서 한약학과를 졸업한 자”로 해석되어 한약학과의 독립은 물건너간 것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의협 안재규 회장은 “합의문 1에 한약학과가 ‘대학’에 설치되도록 규정된 것은 약사법 개정사항이지만 합의문 조항②에 표현된 ‘약대 한약학과 유지’는 법개정사항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일종의 수사이고 현실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안 회장은 “24일 합의로 한약학과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고, 반대로 넓어질 수도 있다”면서 “학과 독립은 대학에서 하는 것이므로 대학의 의지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한의협의 한 관계자도 “이번 2차 합의는 지난달 21일 1차 합의의 후속조치”라면서 “통합약사 저지가 핵심적 사항”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통합약사 저지의 근거로 ‘한약학사 학위’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합의안은 겉보기에는 1차 합의에서 법 개정이 될 수 있느냐는 의문을 해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한 관계자는 “약대 한약학과 유지 조항만 없었으면 한의계가 그런대로 유리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는데 이 조항 하나로 그간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고 탄식했다.

다른 한 관계자도 “약대 한약학과 유지 합의가 약사법 모법에 명시되지 않는다고 해도 일단 한의협 대표로서 정부 입회아래 합의해준 사안인 만큼 번복하기가 불가능해 결국 약사법 3조의2 개정의미를 무색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6월초 보건복지부가 약대 6년제 방침을 통보한 직후부터 한의협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한 결과 한약학과를 약대내에 설치하려던 보건복지부의 처음 기도를 좌절시키고 의대, 한의대, 약대, 수의대와 같이 한약학을 전공하는 대학은 아닐지언정 ‘대학’에서 한약학과를 졸업한 자로 약사법을 개정하는 방향으로 힘겹게 이끌어왔으나 막판에 협상력 부재로 뒷심을 발휘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와 했다.

더욱이 이 내용은 합의하기 전 실무진과 협의가 전혀 안돼 1차 합의 때와 마찬가지로 사전 검토가 전혀 안된 단독 서명으로 판명되어 정책라인에 있는 관계자들을 격앙시켰다.
1차 합의 직후에도 한의협 실무자들은 합의서의 내용이 부실하다고 보고 부랴부랴 보완책을 마련하는 등 진땀을 뺀적이 있다. 21일 열린 전국이사회 및 비상대책위원장 연석회의에서도 ‘차후 중요한 현안 문제를 결정할 때 사전에 정관에서 정한 회의기구의 의결을 거치도록 할 것’을 결의한 바 있다.

한 관계자는 “안 회장이 합의를 너무 좋아한다”면서 “앞 뒤 대책도 없이 너무 쉽게 도장을 찍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개인적 약속이면 몰라도 법과 합의문, 발표문 한 글자 한 글자에 의해 판도가 뒤바뀌는 현실에서 안 회장이 너무 순진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선 한의사들은 합의를 수용할 수도, 번복할 수도 없는 곤란한 처지에 빠져 한의계의 속앓이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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