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204] 纂圖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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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204] 纂圖脈
  • 승인 2004.06.0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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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影 속에 비친 龜岩의 그림자

오늘은 좀 색다른 책 하나를 펼쳐보자. 이미 두 차례나 거듭 소개(23회, 130회)한 바 있는 『纂圖方論脈訣集成』은 『經國大典』을 비롯한 법전에서는 ‘纂圖脈’이라 약칭하고 있다. 이 책은 六朝시대 高陽生이 지었다고 전해지는 歌賦 형태의 맥결서로 여말선초에 전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조 내내 醫科取才 考講書로 쓰였지만 원판이 조잡한 元代 書肆本(서사본)인데다 僞作說이 제기돼 역대 의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던 책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명의 허준이 선조 14년(1581) 왕명을 받아 교정하여 편찬한 책으로 『宣祖實錄』에 등장함으로써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초간본은 전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1626년경 인출된 후쇄본이 현존 最古本으로써 보물 1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근래 발견된 한 가지 異本이 1581년의 初刊本이 아니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어 주목을 끌고 있다. 版心과 행자수, 글자체 등 현존본과는 인쇄양식과 서지 형태가 완연히 달라 한눈에 보기에도 가치 있는 판본임을 느낄 수 있다. 이번에 나온 것은 4권 2책 중 하나(下卷)로 아쉽게도 전체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앞쪽 표지와 본문 일부분이 훼손된 상태지만 본문을 판독하기에는 크게 지장이 없으며 뒤표지에는 ‘纂圖下’라고 되어 있고 본문은 12행 21자로 이루어져 있다.

『纂圖方論脈訣集成』은 허준이 펴낸 첫 번째 작품이며 직접 지은 발문이 남아 있어 편찬과정이 상세히 밝혀져 있다. 하지만 祖本이 된 元代의 刊本은 이미 망실되어 원형을 볼 수 없고 조선초기부터 사용해온 『찬도맥』의 조기 간본도 전해지지 않아 허준 선생이 교정했다는 내용을 정확히 헤아리기 어려웠다. 게다가 발문의 작성연대와 편찬완료 시점은 1581년인데 비해 처음 간행된 연대는 왜란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세월이 지난 뒤인 광해군 4년(1612)으로 무려 3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이다. 따라서 이번에 발견된 조기 간본이 허준의 알려지지 않은 初校本이냐 아니면 조선 전기에 사용해온 찬도맥의 朝鮮刻本이냐는 의문이 남는다. 이 문제는 허준 선생의 저술내용이 무엇이냐는 것으로 연계되어 서로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그럼 이제 발문에 기재된 내용과 비교 검토하여 원천적인 문제를 되짚어보기로 하자. 먼저 “…… 歌句簡捷, 易於領悟, 但字多桀錯, 註甚雜유, 學者病之……”라 하였는데 문자가 잘못된 곳이 많고 주석이 몹시 뒤섞여 있어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 판본에는 원주와 인용된 문헌 속에 등장하는 재인용 문구가 서로 섞여 있고 잘못 표기된 곳이 많이 눈에 띈다. 한걸음 더 나아가 “聖上 …… 一日敎臣, 曰纂圖脈訣, 文註謬誤, 汝宜校正, 且爲小跋, 以誌其後. 予欲改刊, 親覽焉.”라고하여 선조의 교시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여기서도 ‘文註謬誤’ 즉, 본문과 주석이 섞여 잘못된 것을 가장 큰 오류로 지적하였고 校正을 지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발문을 뒤에 붙여 경위를 밝히라고 말한 것은 당시 의관으로서는 대단히 영예스런 일로 중요한 사안인데 이번에 발견된 것에는 4권의 말미에 이 발문이 붙어 있지 않다. 아울러 ‘改刊’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애초부터 독자적인 집필을 기획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끝으로 교정 작업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 謹據諸本, 正其一二, 姓名難辨者, 著註以明之, 詞意有紊者, 爲圈以斷之, 湯丸之名, 以陰易陽, 豕亥(시해)之訛, 改안(안)爲眞, 總若干處, 皆付標以進.”라고 했다. 곧 여러 책을 참고하여 교정을 본 후 脈經註家를 밝혀놓았고 문의에 따라 圓圈 ‘○’으로 구분하여 문단을 정리했으며, 처방명의 표기와 오류를 바로잡아 고쳐 놓았다고 했으니 이 책의 등장으로 허준의 교정 내용을 확연하게 알아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연구자의 심도 있는 고찰 결과를 기대해 본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42)868-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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