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계 일처리 시스템 문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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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계 일처리 시스템 문제 있다”
  • 승인 2004.05.2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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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결정 땐 침묵, 결정후 이러쿵저러쿵
뒷북치기 한계, ‘기획단계부터 참여’ 여론

최근 굵직굵직한 한의학 현안이 뚜렷하게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자 한의계의 일추진 방식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한의약육성법 시행령 제정, 간호조무사의 한방요법 보조행위의 위법성, 국립대 한의대 설치 문제 등 각종 현안이 한의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지만 논란만 거듭될 뿐 용두사미되는 경향을 보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보건복지부가 공모한 용역과제인 한방임상센터 운영·지원방안 연구, 국립한의대 설치방안 연구, 중장기 한의학 발전전략 연구 등을 공모했지만 적임자가 없어 두 차례나 연기해야 했다.

정부가 중요한 한의학 정책 연구과제 공모를 두 차례나 연기했다는 사실은 한의계의 관심이 그만큼 적거나 아니면 역량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로 지적된다. 통상 용역과제는 정부 공고를 본 뒤 응모여부를 결정하기보다 사전에 기획단계에서부터 꾸준한 접촉을 통해서 연구자가 결정되는 게 일반적이라는 점에서 지원자가 적다는 것은 한의계가 기획단계에서부터 준비가 미흡했거나 연구능력을 가진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추론을 가능케한다는 것이다.

한의계내 연구지원자가 없을 경우 양방 의·약 단체가 연구과제를 수주하게 된다. 양방의 한의학정책 연구는 용역수행과정에서 한의학 관련 정보를 방대하게 축적하고 용역수행 실적을 바탕으로 이후의 용역과제에 대비하는 선순환 관계를 구축하게 하는 반면 한의계 입장에서는 해당사업의 한의학적 정체성을 앗아가는 첫 단추가 되기도 한다.

설령 해당 연구과제를 한의계가 수주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이후 진행과정에서 해당연구자에게 필요한 정책적 자료를 얼마나 적절하게 제공할 것인지, 중간발표시 검토위원이나 심의위원으로 참여해서 의견을 어떻게 개진할 것인지, 연구가 끝난 뒤 사업추진위원회에 참여해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등도 고민해야 할 사항들인데 한의계는 일이 다 끝난 다음에 뒷북이나 치지 않았는지 뒤돌아볼 필요가 있다.

근거법의 부재를 이유로 군전공의수련기관 이수자의 무효 여부가 문제됐을 때 한의사전문의제를 허겁지겁 도입한 것이나, 전문의 경과규정 제정시 한의대생의 한의협 점거농성을 계기로 기존한의사의 기득권을 전면 부정한 것, 한약관리법을 포기하고 한의약육성법을 선택한 것, 한의약육성법의 알맹이가 빠진 채 졸속으로 제정된 일 등은 하나같이 한의계의 의지에 반해 이루어져 한의계내의 분란은 물론 책임소재를 놓고 정부와 갈등이 불거지곤 했다.

이렇듯 한의계는 정책 결정 땐 가만히 있다가 결정 후에는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다. 반면 타 의·약단체는 교수가 제안하고 이것이 정부의 연구과제로 확정되면 과제제안자인 교수가 연구과제를 수주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한의계가 정부의 정책사업으로 만들고 싶은 사항이 있으면 정부에 공문 한 장 달랑 보내놓고 여론으로 압박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근거가 담긴 제안서를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출하면 된다”면서 “과제 제출 전후로 가급적 정부의 정책결정시스템을 존중하는 한편 담당 공무원과 심도있는 대화를 선행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한의협의 한 지방지부장은 “한약분쟁을 통해 뭔가 달라지는가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면서 “한의계도 이제는 비전과 방향성을 갖고 일을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한의협 전 부회장 모씨는 “한의계가 정부정책에 담겨야 할 사항을 얼마나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정리해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사태가 이렇게 돌아가자 한의계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지면서 지금까지 방치됐던 한의계내 정책연구시스템 전반을 다시 짜려는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한의협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이응세)는 응급처방식의 운영 구조에서 탈피해 중장기 정책팀, 현안정책팀, 정책자문단으로 세분화하는 한편 ‘한방보건의료 정책고위과정(가칭)’을 운영해 정책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 정책기획국에서 기획업무를 분리 독립시키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한의협과 별도로 한의대와 한의학회, 한의분과학회의 정책연구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잇따르고 있다. 박왕용 한의협 학술이사는 “정부의 사업구상단계에서부터 제안서를 낼 수 있도록 학회의 운영시스템을 확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처럼 천편일률적으로 학회를 운영할 게 아니라 분과학회마다 정책과제 하나씩을 수행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직을 재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에 요구하기 이전에 한의계 자체내에서 워크샵, 정책세미나, 혹은 공청회를 통한 정책과제 도출이 시급하다는 견해도 제기됐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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