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은 나의 삶25·下] 한송 정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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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나의 삶25·下] 한송 정우열
  • 승인 2004.04.30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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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의학은 ‘절충’ 아닌 ‘융합’으로 가야”

한송 정우열
서울 서초구 한송한의원장

대학 졸업 후 개원의 생활을 하면서 그가 ‘동의보감’을 통해 터득한 것이 한의학의 ‘양생사상’이었다. 즉 한의학이 서양의학과 다른 것은 ‘병이 나서 치료하지 말고 병이 나기 전에 미리 치료하라’는 ‘未病’의 정신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에 나타난 양생사상을 연구하고 이를 정리한 ‘현대인을 위한 한방양생법(의약사, 1979)’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선생은 한의대에 들어가면서 접한 ‘동의보감’에서 허준을 만난 뒤 지금까지 연구의 대부분을 ‘동의보감’과 허준 의학사상이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 허준의학사상에 심취

78년 원광대 한의대와 인연을 맺은 그는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25년 간 ‘한방병리학’을 강의했다. 지난해에는 원광대 한의대 병리학교실 동문회 제자들이 그동안 정 교수가 발표해 온 연구논문과 사회적 활동을 한데 모은 ‘한송논총’을 퇴임기념으로 그에게 헌정했다.

이 논문집 축사에서 안규석 전 경희대한의대학장은 “일본, 중국 등 해외 많은 학회를 참석하면서 한국한의학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노력과 눈길을 끄는 복장으로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고 기억했고, 강병수 동국대한의대교수는 “한방병리학뿐만 아니라 과학철학·과학사 등 인접학문분야와 폭넓은 시야를 갖고 남달리 열정적으로 주옥같은 많은 연구논문들을 발표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정우열선생은 “나를 거쳐간 제자들이 학교와 임상계, 협회 등에서 각자 제몫을 하고 있는 것이 가장 보람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많은 학자들이 얘기해 왔지만 그는 서양의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동서의학의 낙차가 많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두 의학이 만나 부닥치고, 충돌하게 됐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이 들어온 지 100년이 됐는데 이제는 대립이 아닌 화합으로 가는 것이 역사적인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時·空의 차가 컸으나 지금은 사이버가 생기면서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생겼고, 의학에도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논의되고 있는 일원화문제나 협진의 문제도 동서의학자들이 함께 해결해야 할 몫이라고 강조했다.

◇ 의학도 어울려야

그는 “미래 의학은 절충으로 가서는 안되며 ‘융합’, ‘대립의 통일’ 또는 ‘모순의 합’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로를 부셔서 합치는 것이 아니라 둘이 가지고 있는 효용가치를 그대로 두되, 남녀가 만나 화합하듯 동양의학의 음양론처럼 조화롭게 어울리는 의학이 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선생은 서양의학은 투쟁의 논리가 강해 세균이 들어오면 항생제로 균을 죽여 낫게 한다는 논리인데 반해 한의학은 우리 몸을 일종의 놀이터로 보는 개념이라고 했다.
이를테면 균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땀이 나게 해서 나가게 하고, 깊숙이 들어가 있으면 대소변으로 빠져나가게 하며, 어중간하게 있으면 같이 어울리게 한다는 논리다. 즉 우리 몸의 정기를 돋아주면서 병은 있지만 작용하거나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는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도 ‘투병의 의미’가 아닌 ‘어울린다는 개념’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중에도 병에 대해 ‘투쟁의 개념’들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까지는 병을 중심으로 한 의학이 많았다면 이제부터는 인간전체를 생각하는 ‘인간의학’을 해야 한다고 했다. 몸과 마음을 어울리게 해서 함께 다스리는 의학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은 “요즘 가장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문제는 ‘윤리문제’”라며 “의학은 인술이고, 의사는 어짐을 베풀어야 하므로 윤리적인 부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인술은 한의학의 생활적인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며 아쉬운 내색을 비쳤다. 그는 서양의학은 20세기에 와서 단순한 치료의학이 아닌 과학이나 공학과 접목하게 됐다고 했다.

과거에는 ‘생명’을 부모가 자식을 낳는다는 개념으로 생각했는데 지금은 ‘창조’, ‘제조’라는 개념이 들어오면서 최근 ‘복제’나 ‘유전자 조작’같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도덕적 윤리를 중요시했지만 지금은 생명윤리를 중요시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때문에 양방 의과대학에는 이미 ‘의료윤리학’이 필수과목으로 지정돼 있지만 한의대에는 이런 과목이 없고 있더라도 필수과목이 아닌 교양과목정도로 개설되어 있는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의료형태가 다양화되고 변화되면서 의료사고의 문제도 우려되는 이때 한의학도 생명윤리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好學’에서 ‘樂學’으로

한의학은 ‘사랑의 의학’이라는 정우열 선생은 앞으로 겸손과 친절로 봉사하는 ‘사랑의 의학’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을 다 할 것이란다.

선생은 “朱子는 ‘老而歸 歸而樂’이라고 해서 늙으면 돌아가고 돌아가서는 즐기라고 했다”며 “그동안 대학에서 ‘好學’을 했다면 이제는 정년퇴임도 했으니 ‘樂學’을 해야할 때인 것 같다”고 했다. 따라서 ‘화합의 상생’이라는 말처럼 사람들 속에서 동락하며 진정한 인술을 베풀기 위해 노력중이다.

그 일환으로 현재 한의원 한 켠에는 연구실겸 강의실을 마련해 놓고 매주 금요일마다 주민들을 위한 건강강좌도 열고 있으며, 방학 때면 원광대 제자들을 대상으로 ‘동의보감’도 강의하고 있다. 또 그가 현재 임원을 맡고 있는 학회인 ‘제3의학회’의 정규모임을 통해 학술토론도 갖는 등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봄학기부터 상지대 한의대에서 ‘의료윤리’ 강의를 맡고 있는 정 교수는 의료윤리학 책도 내고 싶다고 밝혔다. 또 의학사상 연구는 평생 작업으로 진행할 것이라는 다짐도 보였다. 선생은 이러한 과제들을 수행하기 위해 시간이 나면 산을 찾거나 걷기 운동을 하는 등 건강관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한편 정우열 선생은 “협회나 정책이 일부 목소리 높은 사람들에게만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 앞으로는 한의계 원로들에게도 귀를 기울여 보다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강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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